<크리에이터> 한 줄기 빛이 이끄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창작의 세계 삶이 예술이며 예술이 삶인 크리에이터 12명의 하루 이야기 “문득, 어둠 속에서 흰빛이 다가왔다. 흰빛이 일렁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흰빛이 닿자 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사라짐의 기분 좋은 공포를 잘 알고 있었다.”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세 권의 소설집과 네 권의 장편소설을 쓰고, ‘서울’ ‘독신’ ‘자전’ 등을 소재로 한 테마 소설집을 엮으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 이신조의 조금 색다른 책 『크리에이터』가 출간되었다. 도시생활자의 고독과 거친 감수성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세밀하게 묘사해온 작가의 시선이 12명의 실존 예술가들에게로 가 닿았다. 12명의 크리에이터를 모티프로 한 이 소설은 편편 전혀 다른 삶을 담아내 개별적 완성도를 이루는 한편, 일상 속에서 스치는 창작의 기미, 그들 삶 속을 가로지르는 ‘흰빛’이라는 하나의 조건을 꿰어 연작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한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하루를 소재로 하는 한 편의 장편소설로도 읽힌다. 고단하고 스린 하루 중 문득,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흰빛, 그 빛의 닿음이 남기는 공포!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영감이 들어 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작가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삶의 한 순간을 담고자 애쓴다. 독보적인 세계를 갖는 ‘아티스트’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느 날들 가운데 하루는 삶과 분리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가 아닌 삶 속에서 살아내며 작품을 남기는 ‘크리에이터’가 되는 순간을 드러낸다. 어떤 하루도 전 생애와 무관하지 않은 날은 없기에 역설적으로 그 하루는 그들의 전 생애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데뷔 18년차 작가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영감의 세계, 그 신비로운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글을 쓰는 동안, 아니 작가가 되기 그 이전부터 영향을 준 예술가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전적 색채를 띠기도 하지만, 그러나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작가가 상상해낸 소설적인 하루이다. 화가, 사진가, 시인, 팝아티스트, 영화감독, 삽화가, 배우, 철학자로서의 창조적인 업적만큼이나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사는 상이용사, 어떤 죽음을 경험한 이후 빈 공간을 사진에 담는 몽상에 시달리는 사진가, 쉰 살 아들이 용변 보는 일을 도와주는 칠십대의 아버지,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포탄에서 도망친 포로, 체제와 관념을 여성의 정체성으로 극복한 화가, 가족을 사랑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노래하는 소년, 숫자로 남은 이름―인간이 되기 어려웠기에 어떤 비인간도 되지 않은 이름들, 더 이상 천재일 수 없는 잊힌 우상, 할퀴고 밀치며 사랑하는 198센티미터의 남편과 152센티미터의 아내, 기꺼이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남은 배우, 그리고 모두에게 어머니가 되어주는 아버지이자 선생님. 이들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빛나는 한 순간, 한 인간이 특별하고 소중한 크리에이터가 되는 순간을 생각하면서 작가는 작품을 쓰는 내내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신비한 주문을 외는 일과 같았다고 고백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 크리에이터들이 보내는 신비로운 느낌과 영감의 세계가 자신에게 눈처럼 내리는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이다. 평범이 던지는 현실의 무게 12명을 묶는 단 하나의 “배경” 소설 속 12명의 크리에이터가 가진 공통점은 그들이 디디고 있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숙명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끈끈하게 이어지는 삶을 받아들이고 명확히 응시하는 크리에이터의 모습은 우리가 경험했을 어느 하루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와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흔히 시련을 넘어선 “기적이나 승리”로 요약되곤 하지만 이신조는 이 부자가 겪는 생활에 주목한다. 발달 장애, 정신지체, 시각 손상, 자폐, 간질 등의 장애를 안고 있는 아들과 그에게서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아버지의 하루는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할 압도적인 현실이다. 소설은 이들이 짊어진 무게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모든 통증과 설움과 분노를 바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파괴된 인간이기에 더욱.” 귀를 찢을 듯한 소음과 쏟아지는 총알 세례, 창도 없는 좁은 방 그 안에 흙탕물에 절어버린 옷을 걸친 시인이 있다. 종군작가단이라는 이름으로 의용군에 끌려간 김수영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환멸을 토해낸다. 그의 주변엔 온통 외면하고 싶은 것들뿐이다. 의용군에서 탈출을 시도한 시인은 흐르는 계곡물의 수면에서 자신의 “추하고 흉하고 끔찍한” 얼굴을 대면한다. 전쟁의 폐허에서 파괴되어버린 얼굴은 어쩌면 시인이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다. 작가는 시인이 파괴된 자신의 얼굴을 명확히 마주보도록 한다. 파괴된 삶 위에 서서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얻는 데까지 나아가는 장면은 쉽지 않은 인생을 견디는 독자의 삶에 대한 작가의 독려처럼 느껴진다. 벗을 수 없는 수갑으로 묶인 삶, 그 삶 속으로 직진하는 작가의 “시선” 유명인에게 붙는 수식어는 단번에 유명인들의 삶을 대변한다. 이 책은 유명인에게 씌워진 편견을 한 겹 벗겨내고, 그 아래 숨은 결을 입체적으로 조형한다. “흐릿해지는 문신으로 인해 과거는 더욱 강화되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매일 새롭게 세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172364의 말은 옳은 것일지 몰랐다.” 작가는 사람들이 쉽게 확신하는 관념을 가볍게 깨고 그 안으로 직접 발을 디딘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를 두고 우리는 그들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갔음을 확신하고, 살아남은 자라고 칭송한다. 소설은 그들이 정말 고향으로 돌아간 것인지, 진짜 살아남은 것인지 의문을 던지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에 주목한다. 수인 번호 ‘174517’.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씻어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이다. 작가는 ‘174517’과 또 다른 생존자 ‘172364’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아우슈비츠 생존자’라는 같은 수식어 안에서 두 사람이 느끼는 서로 다른 감정들을 밝혀낸다. ‘살아남은 자’라는 단일의 규정을 벗기자 보이는 각자의 이야기들은 이 책이 가지는 핵심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제 그림은 어떠어떠한 그림이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또 결정적으로 ‘여자가 그린 그림’으로 규정됩니다.” 직업인으로서의 여성 앞에 붙는 수식어 중 가장 흔한 말은 역시 ‘여(女)-’라는 단어일 것이다. 장르를 초월하고 ‘무엇하는 여자’라는 간편한 정리와 편견은 크리에이터에게도 적용된다. 소설은 비현실적이라도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을 거부했던 화가 수잔 발라동을 다룬다. 그녀에게 붙었던 ‘여자’ 화가라는 타이틀을 제거하고, 그 아래 웅크리고 있는 삶을 어루만진다. 어쩌면 여자라는 타이틀에 갇혀버릴 수도 있던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작가는 누군가의 삶에 다가가는 가장 확실한 길을 알려준다. 때로는 주고 때로는 받는 창작의 영감(靈感) 서로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사람들” 크리에이터는 또한 영감을 주는 이들이다. 이 책은 보통의 삶 속에 다가오는 오묘한 영감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넘어 영감을 전하는 모습으로 나아가며,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의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 틸다 스윈턴은 1995년에 이어 2013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스스로 작품으로서 참여한다. 작품명은 「The Maybe」. 유리관 속 침대에 들어가 하루 일곱 시간씩 잠을 자는 것이 그 내용으로 사람들은 배우가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미술관으로 몰려들었다. The Maybe, ‘아마도’라는 말처럼 소설은 ‘아마도’ 배우가 유리관 속에서 꾸었을 꿈에 관한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이 책은 유리관을 다른 사람이 꾸는 꿈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로로 설정하며, 타인의 꿈을 여행하는 몽상가, 즉 타인의 꿈이자 배우 자신의 꿈에 관해 서술한다. 꿈속을 여행하며 배우는 때로는 비버, 만돌린 연주자, 거미할머니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꿈속에서 ‘꿈의 주인’과 영감을 주고받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유리관 속을 관람하는 인물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영감을 주고받는 셈이다. 언어로 그려지는 생생한 화폭 세밀한 “문장”과 감각적 “이미지”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평범한 하루에 관한 소설로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는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적 이미지를 묘사하며 독자를 크리에이터의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노란색, 흰색 튤립과 파스텔화가 어울리는 수선화, 연보랏빛 물망초에 관한 서술은 노파의 아름다운 정원을 떠올리게 하고, 달큰한 향을 풍기는 나무딸기 잼은 선생의 평화로운 아침을 연상케 하며, 또 아버지가 휘두르는 벨트에 관한 비유는 폭력이 일상이 된 천재 소년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성기완(시인, 음악가)은 추천사에서 이 책을 “새로운 사진”이자 “선명한 만화경” 같다고 말하는데, 소설 전반에 걸친 풍성한 이미지들은 마치 사진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더불어 작가는 각 장마다 계절감을 느낄 만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시간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단 하루의 이야기일지라도 계절이라는 객관적 지표를 던져놓음으로써 크리에이터의 삶 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새소리와 꽃 피는 기운은 봄, 땀의 찐득한 느낌은 여름, 떨어지는 나뭇잎은 가을, 두꺼운 복장과 캐럴은 겨울을 상기시키며 단번에 명확한 시공간을 확보한다. 감각을 자극하는 서술 방식과 계절감에 관한 충분한 묘사는 누군가의 하루를 온전히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우선권은 밤에게> L은 love, M은 mommy, N은 night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 같은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뜨겁고, 아프고, 무서운 그러나 따뜻한 치유 이야기 1999년 제4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기대어 앉은 오후』를 비롯해『감각의 시절』『21세 라운지』등을 통해 섬세한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 영상적인 표현력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안정된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온 작가 이신조가 작가정신 소설락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우선권은 밤에게』를 내놓았다. 이 작품에는 스물두 살, 어린 여자 '나' 가 등장한다. '나'는 계부가 운영하는 서울 어느 동네의 작은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소개해주며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아직은 많은 것들이 낯설고 서툴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집을 남다르게 느낄 수 있는 재능이 있다.'나'는 어느 날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찾고 있는 남학생을 만난다. 또 어느 날은 나이트룸과 함께 집을 옮겨 다니며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님들을 만난다. 그리고 나이트룸 속으로 들어가 온전한 밤을 경험하게 된다. 이신조의『우선권은 밤에게』는 '밤(나이트룸=모성)' 이라는 상징을 통해 도시 공간 속에서 결핍된 모성을 채우고자, 상처를 치유하고자, 안식을 갈구하고자 하는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성장 이야기를 섬세한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 소설이다. 이신조가 묻는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집을 찾는다. 편안히 몸을 누이고 마음을 쉬게 할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는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너의 집은 어디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깃들어 있는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집이 되어줄 수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집이 한 사람의 재력을 보여 주는 표상이 되었을까. 집을 사고팔면서 우리는 집(또는 방)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한 사람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고된 육신을 누이는 곳,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새로운 삶의 의미를 공유하는 곳, 일생의 땀과 눈물과 손때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그래서 평안히 눈 감을 수 있는 곳. 이 소박하지만 중요한 무형의 가치는 집 또는 방이라는 유형의 공간을 통해 의미화된다. 때로 집 또는 방의 개념은 이러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기도 한다. 한 공동체가 개인에게 집이 되고, 개인이 한 공동체의 방이 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집이 되고, 한 마음이 다른 한 마음에게 방이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이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다양한 의미를 소설 속에 부리면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공간을 제시한다. 그것은 공간이면서 시간이고, 물질이면서 비물질이다. 그것은 있으면서 없고, 없음으로 있다. 꽉 차 있으면서 비어 있어서, 그것 안에 있는 대상을 정화시킨다. 그게 뭘까? 그것은 밤의 방, '나이트룸'이다. 나이트룸을 만나려면, 우선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집과 방의 의미를 하나씩 '느껴야'한다. 그 느낌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궁극의 공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밤, 그리고 필요한 것은 나이트룸 나이트룸에서, 나는 길고 긴 잠을 잤다. 온밤 내내 잤다. 빛과 무관한 어둠처럼, 깨어 있음과 무관한 잠. 내 몸의 털 한 올, 피 한 방울, 세포 하나하나까지 모두 동의하고 받아들여진 잠. 그런 잠이었다. 쌍둥이 여사님들의 말대로 나는 밤의 일부가 된 것이다. 도시와 인간의 성장에 관심을 보여 온 이신조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주인공 '나'를 통해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처럼 변해가는 도시인에게 인큐베이터와 같은 집과 방을 보여 준다.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의 스물두 살 어린 여자, '나'는 계부의 부동산중개소를 관리한다. 집을 구하는 고객들에게 제각각의 공간들을 보여 주면서 '나'는 그들의 삶에 접촉을 시도한다. 사람의 삶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가 보여 주는 집들과 방들의 이력도 그 공간이 가진 특유의 인상에서 드러난다. '나'는 그렇게 집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본다. '나'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 쉬는 공간의 의미를 몸으로 알아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리고 어두운 밤에 소곤소곤 들려주는 집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집에게 들려주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나'는 거의 매일 밤을 배회한다. 먼저는 부동산중개소를 찾은 손님들에게 낮에 보여 주었던 집들을 밤이 되어 다시 찾아가 집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그리고 '밤의 집'과 공감하고 소통한다. 때로는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 들러 음식을 사고, 찜질방에 들르기도 한다. 또 때로는 한 남학생의 일상을 추적한다. '나'는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인근 전문대 신입생에게 관심이 있다. '나'는 그가 찾는 방을 하나씩 보여 주면서 그를 읽어 나간다. 살기 좋고 쾌적하지만 그의 여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복층 원룸부터, 그의 여력이 미칠 법하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다소 불편한 지하방까지, 스무고개를 풀어나가듯 그 공간들의 차이를 통해 그를 추측한다. 그는 결국 그날 '나'를 통해서 어떤 방도 계약하지 못하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후에 '나'는 우연히 인근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그를 본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의 생활 반경을 배회하다, 어느 깊은 밤에 그를 다시 만난다. 그는 방을 얻을 보증금이 없지만 그때 보았던 지하방이 나갔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에게 매일 조금씩 청소했던 그 방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나'와 그는 서로의 처음을 나누고, 그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나는 "춥고 뜨겁고 아프고 무섭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이트룸. 당신도, 밤의 일부가 되어 보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제 온밤 내내 잘 수 있어요. 밤이 되었으니 그럴 수 있어요. 아주 오래전의 그때처럼요. '나'는 맞춤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들을 통해 나이트룸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기 전에 중년의 두 자매에게 집 한 채를 소개하는데, 집 임자가 쉬이 나타나지 않아 오래 비워져 있었던 그 집은 '나'에게는 비밀스럽고 소중한 공간이다. 장독대가 많아서 '장독대집'이라고 부르면서 혼자서 집을 청소하고, 가끔 그곳에서 잠을 자며 쉬다오는 곳. 모성 결핍의 '나'에게 그 집은 일종의 '품'과 같은 곳이었다. 쌍둥이 여사들은 장독대집을 보자 흔쾌히 계약하기로 한다. 중년의 두 자매가 장독대집을 계약한 이유는 나이트룸 때문이다. 작은 골방에 들어가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하면서 잠시 잠을 자면, '나'는 온 밤을 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온전히 밤이 된다. 빛 이전에 어둠이 있었다. 우리가 최초로 경험한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우리는 오롯한 어둠을 누렸고, 완전했고, 깊은 잠을 잤다. 완벽한 평안 속에서 어떠한 두려움도, 아픔도, 상실도 없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 어둠이 내려앉아 세상을 덮는 밤이 따뜻한 이유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그 온전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주와 밀착되어 있었다. 어쩌면 우주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스물두 살, 성년도 미성년도 아닌,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 같은 어린 여자, '나'는 그 나이트룸 속에서 결핍된 모성을 채운다. 다시 한 번 자궁을 경험하면서, 온전히 밤이 되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에서 누락된 모성을 나이트룸을 통해 체험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차고 단단한 도시 속에서 밤을 만난다. 이제 그녀는 그 밤 속에서 세포 하나하나 올올이 다시 태어난다. '나'는 신입생과의 처음 이후 나이트룸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때 나이트룸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직후인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나'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이제 자신만의 모성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모성이란 전 생애를 또 하나의 인격체에게 비추는 것. '나'가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것은 어쩌면 독자 자신이 만들어 나갈 삶의 그림자와도 같을 것이므로.
<다른 소년> 같은 채로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 달라진 모습으로 시간을 통과한다는 것, 아니 달라져야만 시간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소설가 이신조의 네번째 소설집 『다른 소년』이 출간되었다. 리듬감이 느껴지는 감각적인 문체와 현실에 대한 첨예한 사유가 돋보였던 『감각의 시절』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이신조는 1998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 「오징어」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로 현실을 바라보는 긍정의 시선과 작가적 성실함을 한순간도 늦추지 않은 채 세 권의 소설집과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그리고 등단 20년을 맞아 펴내는 신작 소설집 『다른 소년』을 통해 불운한 현실에 에너지가 소진돼버린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인과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어떠한 삶도 "다른" 방향으로 또다시 나아가볼 수 있다는 희망과 그 실현의 가능성을 작가 특유의 탄탄하고 시적인 문장들로 그려내고 있다.
<기대어 앉은 오후> 가볍지 않은 생의 무게를 겸허하게 감싸안고자 하는 신인작가의 특별한 도전 [기대어 앉은 오후]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대중소비사회의 상징인 백화점 공간 속에서 우연하게 만나는 두 고독한 여인의 상처와 상실을 통해 소외된 존재들간의 소통 가능성이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신인다운 문제의식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이 새로운 방식의 질문이 섬세한 내면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 그리고 영상적인 표현력과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다의적 진실을 꿰뚫어보는 섬세한 감성, 연민과 관용, 정밀한 심리 묘사 등과 같은 여성적 미학으로 현대 사회에서 훼손된 영혼들 사이의 교신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90년대 여성주의 문학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사적이고 독백적이며, 특히 소통 가능성에 관한 한 부정적인 기촌의 여성소설들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도전의식이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온 평가를 받았다 [기대어 앉은 오후]는 과잉과 결핍의 무한 반복으로 사막화하고 있는 거대도시의 그늘을 진지하게 주목한다. 소설에서 지구 온난화로 은유되는 도시의 사막화는 상처받은 두 여성의 내면에서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