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술>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과 용장 선거이의 무장으로서의 의리와 벗으로서의 우정을 그린 소설 『칼과 술』은 임진왜란을 함께 치르며 신뢰와 정리를 나눈 이순신과 선거이 장수의 이야기이다. 두 장수는 백성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심전심이었다. 이십 세에 보성 군수 추천으로 선전관이 된 무장 선거이는, 이십일 세 때 무과 급제한 뒤 삼십칠 세에 함경도 북병사 이일의 계청 군관으로 경성 읍성에 부임한다. 그리고 이순신은 조산보 만호로 이일 북병사에게 부임 신고를 하기 위해 읍성으로 온다. 선거이는 멀리 영강령을 넘어 눈 쌓인 길을, 말을 끌며 오고 있는 이순신을 한눈에 알아본다. 두 사람의 의리와 오랜 우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순신과 선거이는 만나자마자 활쏘기를 겨루며 장수로서의 기개를 서로 알아본다. 선거이는 함경도 조산보 만호 이순신이 녹둔도 전투에서 패전의 누명을 쓰고 하옥될 때 위로주를 권하고 적극적으로 변호해서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돕는다. 유성룡은 선거이에게 “일찍이 이순신을 만났고, 지금 선거이 군관을 보니 마치 범장이 조선 땅에 나타난 것 같이 든든하구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선거이는 거제 현령, 성주 목사, 전라 우수사를 거쳐 전라 병사가 되어 행주대첩에서 권율만큼 전공을 세웠으며 충청 수사가 된 뒤에는 이순신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산도로 내려가 왜적을 격퇴하는 데 일조한다. 당시 장수들은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선거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두 장수는 술잔을 기울이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임진왜란의 팍팍한 병영생활을 견디기도 했던 만큼 이순신은 극비리에 건조 중인 거북선을 선거이에게는 보여준다. 이때 선거이는 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었던 목수들의 요미(급여 쌀)를 대서 이순신에게 큰 힘이 된다. 선거이는 이순신에게 마음의 증표로 칼을 선물받고(난중일기 1595. 7. 21.) 헤어지면서는 「증별선수사거이贈別宣水使居怡」라는 시를 받는다(난중일기 1595. 9. 14.). 한편 이순신은 선거이가 중병이 들어 고향 보성에 누워 있을 때 이례적으로 직접 문병 가서 위로한다(난중일기 1596. 9. 24.). 1598년 9월 선거이가 먼저 적탄에 전사하고 이어 두 달여 뒤에 이순신이 적탄에 전사함으로써 이 두 장수는 죽음의 때를 거의 같이하고 있다. 작가는 명량해전의 김억추, 진주성 전투의 최경회 등 임진왜란의 장수들을 미시사적으로 접근,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에서 미처 세세히 조명하지 못했던 용장들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단군의 아들> 홍암 나철 선생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민족의 역사다” 이국 만리 만주 땅에서 우리 동포들은 어떻게 하나로 뭉칠 수 있었을까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어떻게 항일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단군의 자손이라는 자주민족의 정통성을 어떻게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 선생의 일대기이면서 일제강점기 동안 단군조선을 부정, 말살하는 식민사관에 의해 민간 전승 신화로 묻혀간 단군을 우리 역사 속으로 이끌어낸 역사교양소설입니다. 나철 선생과 선생이 살았던 한일합병 전후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단군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단군조선시대 또한 우리 역사에 어떠한 표상이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나철 선생은 민족의 실존에 관한 뿌리, 민족혼의 바탕을 우리의 역사 시작인 단군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고려 때까지 이어져 오던 신교(神敎, 단군교)를 7백 년 만에 겨레의 얼을 담은 민족 종교로 중광(重光, 부활)했습니다. 이에 역사 주권을 지키는 것이 곧 자주민족의 길임을 깨달은 많은 애국지사들이 선생이 중광한 대종교에 동참하였습니다. 김교헌, 윤세복, 이회영, 서일, 김좌진, 박은식, 신채호, 주시경, 신규식, 정인보 선생 등 학자와 언론인, 독립투사들이 대종교 교도로서 국내에서는 우리글과 말을 지키고 만주에서는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한국 민족의 역사이며 단군조선은 허구가 아니라 한국 민족의 역사 시작이라는 점에서 일제는 국내와 만주에서 30만 대종교 교도를 탄압하고 간부들을 처형했습니다. 나철 선생은 스러지는 민족정기와 교단을 지키기 위해 구국의 심정으로 순교하기에 이릅니다. 만주의 청산리 대첩은 선생의 죽음에 자극받은 서일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에 거둔 승리입니다. 대부분이 대종교 교도였습니다. 다가오는 10월 3일 개천절은 나철 선생이 단군의 개극 입도(나라를 열고 도를 세움)를 기리는 명절인 개천절을 경축일로 정하고 상해임시정부가 국경일로 정한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항일 투사와 지식인들이 단군조선을 민족의 역사 시작으로 보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음입니다. 이는 홍암 나철 선생이 지금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의 대부, 단군 사상의 실천자 홍암 나철 선생 이야기가 담긴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단군의 아들』에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순신의 7년 1권>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삶과 불굴의 민족혼으로 시대를 떠받들어온 조선 백성의 삶을 재조명하다! 전남도청 홈페이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 『천강에 비친 달』, 『인연 1, 2』 등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온 작가 정찬주가 이번에는 이순신에 관한 대하역사소설을 펴냈다. 이미 소설이나 영화 등 임진왜란을 무대로 하고,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많다. 임진왜란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특별한 시기였고, 이순신은 그 안에서 빛나는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정찬주 작가가 그려낸 이순신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용맹함 이면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결정 앞에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에 주목한다. 이순신을 이순신이게 한 당시의 선비, 장수, 승려, 천민 들의 의기와 충절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소설은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 군사 문화, 의식주 문화, 여러 지방의 사투리, 풍속 등을 가늠케 할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작가는 10여 년의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하고 있으며, 소설은 국난을 극복하고야마는 불굴의 민족혼과 오늘을 사는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참모습인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2016년 4월 28일은 이순신 탄신 471주년으로, 이 소설은 전남도청 홈페이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이며, 작가는 독자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이순신이 1591년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1598년 노량 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인간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나는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말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다. 임금과 대신들은 부끄럽게도 의주로 도망쳤지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당시 백성들의 분투를 복원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헌정하는 소설이 되게 하고 싶다.” _작가의 말 중에서
<개정판ㅣ인연 1> 『인연』은 불교계의 큰스님이자 이 시대의 참 스승이었던 일타 스님의 일생을 다룬 장편소설로, 『산은 산 물은 물』을 비롯해 『암자로 가는 길』『선방 가는 길』 등 많은 불교 관련 소설, 에세이 등을 집필해온 작가 정찬주가 철저한 취재와 고증, 1년 5개월간의 집필로 완성했습니다. 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전무후무한 41명 일가친척이 출가한 집안에서 출생해 14세의 어린 나이에 불문에 귀의했고, 26세 때 오른 손가락 네 개를 불에 태워 소신공양할 정도로 치열하게 구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후 세존염화라는 화두를 들고 태백산 도솔암에서 6년 동안 한순간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와 선방을 떠나지 않는 동구불출 수행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소설은 일가친척 41명 출가의 기록이나 연비한 오른손에서 생사리가 나오는 이적, 7일 기도 중 빛을 발하는 방광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타 스님의 진정한 구도자이자 자유인으로서의 면모를 생생히 다루고 있습니다. 아울러 작가가 인도하는 일타 스님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성철 스님, 경봉 스님, 전강 스님 등 한국 불교계의 큰 산맥으로 우뚝 솟은 청정한 수행자들과의 아름다운 인연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과 마주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짜인 일타 스님의 삶은 ‘자비’ 그 자체였습니다. “경봉 스님은 멋들어지게 사신 지장보살이셨고, 성철 스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 문수보살, 일타 스님은 한없이 자비로웠던 관음보살이셨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는 오늘날 필요한 자비로움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파계한 제자를 용서하고 그 승적을 끝까지 지켜 주거나 5계를 범한 제자를 올바른 길로 제도하고 자신에게 보시한 산삼을 아픈 제자에게 돌려보내는 모습 등 대자 대비한 스님의 행적은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유와 이해, 용서의 미덕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자비롭게 대했던 일타 스님은 자신에게는 매우 혹독했습니다. 스님은 고승으로서 많은 제자와 불자들에게 존경받았지만 큰스님에 걸맞은 대우를 받기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일타 스님이 상좌들이나 여러 고승들, 불자들과 맺은 아름다운 인연은 바로 타인을 자비로 대하고 자신은 경책으로 다스렸던 스님의 삶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아울러 『인연』에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찰, 암자 등의 사진을 각 장에 수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소설의 느낌이 보다 생생히 전달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스승 일타 큰스님의 삶을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인연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값진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천강에 비친 달> “『대장경』을 무지렁이 백성들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우리 글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바로 세종과 신미가 꿈꾸는 조선의 글자였다.” 천 개의 강에 달빛이 비치듯 부처의 가르침이 온 백성에게 드리우길 바랐던 세종과 신미 대사가 이룬 한글 창제의 진실! 조선 왕조 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구가한 왕으로 평가받는 세종. 그리고 그가 이룩한 찬란한 업적, 한글 창제. 하지만 한글 창제에 세종 외에 공을 세운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지울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고승’ 신미 대사다. 이번 한글날에 맞춰 출간 예정인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한글 창제에 얽힌 비밀을 밝힌 작품으로, 조선 초 최고의 범어(산스크리트 어) 전문가이자 학승(學僧)이었던 신미 대사가 한글 창제의 숨은 주역이었음을 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글은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창제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실제로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 창제에 주도적으로 기여했다는 기록은 『세종왕조실록』어디에도 없다. 이 소설에 따르면 집현전이 사실은 한글 창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훈민정음 해례 서문을 쓴 정인지조차 “집현전 학사들 중에 어느 누구도 훈민정음의 오묘한 원리를 알지 못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글 창제는 세종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일까?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8년 전에 이미 훈민정음 언해본 『원각선종석보』가 발간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세종은 왜 문종에게 ‘우국이세(祐國利世) 혜각존자(慧覺尊者)’란 존호를 신미 대사에게 내리도록 유언했을까? 정찬주 작가는 이 모든 의문들이 “신미 대사의 훈민정음 창제라는 공을 빼버리면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범어를 통달한 신미 대사가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탄생시켰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수수께끼로 가득 찬 한글 창제의 진실을 야사가 아닌 정사, 즉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낱낱이 풀어나간다. 이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의 재미를 넘어, 역사적 진실에 새롭게 눈뜨게 하는 놀라운 지적 감동을 선사해준다. 소설가 조정래는 “『천강에 비친 달』은 소설적 허구가 아닌 역사적 진실의 올곧은 복원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는 정찬주 작가가 “소설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확대시키는 동시에 지적 감동에 취하는 큰일을 해냈다.”고 평하고 있다. 『천강에 비친 달』은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유불(儒彿) 갈등과 왕권과 신권(臣權)의 대결을 비롯해 한글 창제를 둘러싼 갈등 양상과 시대상을 생생하게 구현해낸다. 특히 한글 창제에 영향을 끼친 불교 사상은 특정 종교의 한 분파가 아닌 민족정신의 중심 사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한국 불교가 훈민정음에 나타난 자주정신과 평등사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과 신미가 배불숭유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의기투합해 한글을 창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모든 백성이 인간다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이룩하고자 한 뜻이 통했던 까닭이었다.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가엾이 여겼던 두 사람은 우리 글자를 만들어, 천 개의 강에 비치는 달빛과 같이 만백성의 고통을 어루만져 낫게 해주고 싶었고, 백성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랐던 것이다. 그들이 품었던 민본 애민 사상의 대의(大意)는 오늘날 우리들이 한마음으로 바라는 서원(誓願)이기도 하다. 600년 전에 품었던 세종과 신미의 염원이 이토록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 국가의 정통성과 위신을 바로세우는 한글을 다시금 환하게 비춰줄 횃불 하나가 밝았다. 『천강에 비친 달』이 밝혀주는 한글 창제의 진실을 통해 혼탁한 시대에 역사의 주체로서 다시금 삶을 밀고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천불탑의 비밀> 정찬주 신작 장편소설 <천불탑의 비밀>은 이미 역사에서 사라진 신라시대의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하고자 시작된 ‘천불탑’의 조성과정에서 탑 속에 봉안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찾아 나서면서 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탑의 조성과 부처님 진신사리의 봉안’이라는 사실을 앞에 두고 생각이 다른 두 수행자 지웅과 법상, 그 수행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천불탑의 설계사 최림, 수행을 점검받기 위해 법상을 찾아 헤매는 또 한 명의 수행자 적음, 사리를 찾아 떠난 인도에서 만난 유키코라는 인물을 통해 출가 수도승의 고뇌와 번뇌, 깨달음을 향한 방법 등에 물음표를 던지는 소설이다.
<광주 아리랑1>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회심작 80년 5월, 따뜻한 가슴들이 살고 있었네 《광주 아리랑》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4일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다큐소설이다. 그때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그 안에 얽힌 수많은 인물은 40년이 지난 오늘날 리얼리티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부활하여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때린다.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하지 않은 광주시민 개개인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이 계엄당국 측에서 줄곧 몰아간 폭도가 아니었음을, 그저 안식을 찾지 못한 채 고달프게 살아간, 그러나 따뜻한 가슴을 가진 민초일 뿐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재발견할 것이다. 정말 광주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였음을……. 그렇다. 80년 5월, 광주에는 따뜻한 가슴들이 살고 있었다.
<소설 정약용> 정약용의 삶과 내면의 슬픔을 그리다! 『소설 정약용』은 실학자 정약용이 아닌 인간 정약용을 다룬 작품으로, 정약용의 눈부신 업적이 아니라 정약용의 내면에 숨겨진 눈물, 회한, 고독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약용의 유배시절을 샅샅이 다루고 있으며, 정약용이 애타게 기다리던 읍중제자 황상과 해후한 뒤 75세 부부 회혼일에 질곡의 삶을 내려놓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이번 소설에서 저자는 전라도 사람이 등장할 때의 대화에서 전라도와 강진 향토언어를 살려냈는데, 독자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향토언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어준다.
<시간이 없다> “온몸으로 의심하라! 7일 안에 체험하리라!” 수행자의 삶과 정신세계를 탐구해 온 정찬주 작가가 10여 년의 세월을 응축해 써 내린 또 한 편의 역작 간화선(看話禪) 현대화의 선구자, 이 시대 최고의 선지식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의 삶과 수행을 소설로 만나다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을 이루려면 마치 천 길 우물에 빠졌을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한낱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큰 망어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_ 고봉원묘 선사 고봉원묘 선사의 말은 간화선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간화선이 얼마나 신속하고 핵심을 파고드는 수행법인지를 설명한다. 간화선은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된 선(禪) 불교에 뿌리를 둔 한국불교의 정통 수행법이자 최상승의 수행법이라 불린다. 하지만 지도 방식과 수행 과정의 난해함으로 인해 보통 사람은 접근하기 힘든 것, 평생 참선에 몰두한 스님조차 쉽사리 하지 못하는 수행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이러한 선입관을 180도 뒤바꾸어 놓은 선지식이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이다. 현대 간화선의 선구자라 불리는 수불 스님은 출가자든 재가자든 마음을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 7일이면 체험할 수 있는 수행으로서 간화선을 지도하고 알려 왔다. 지난 30여 년간 수만 명의 사람이 스님의 가르침 아래 돈오(頓悟)를 체험했다. 이 책 『시간이 없다』는 수불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부터 출가 후 의심을 타파하는 과정, 그리고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진력해 온 과정을 주요 일화를 중심으로 묘사한다.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줄기는 간화선이 어떤 수행법이며, 왜 이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수불’이라는 한 출가 수행자의 삶을 읽어 나가면서, 또 간화선이라는 한국불교 전통 수행법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더 강하게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는 의문과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은 그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개정판|소설 무소유> 법정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을 책으로 읽는다! 30만 부 기념 개정판 출간 특유의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작품과 산문을 써온 작가 정찬주가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시며 수많은 이들에게 무소유의 삶을 가르친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써내려갔다. 법정스님 사유의 핵심이랄 수 있는 ‘무소유’ 사상의 단초를 스님이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되었으며, 이를 또한 어떻게 자신만의 ‘법’으로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이를 상좌 혹은 속가대중들과 어떻게 나누고 실천했는지 소설 특유의 설득력과 적확한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법정스님께서 살아계실 때 작가에게 ‘세상에서 살되 물들지 말라’는 의미의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지어주실 만큼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곁에서 스님의 삶을 지켜봐온 작가는 소설 곳곳에서, 쌓아두지 말고 비울 것을 설파했던 스님의 모습, 그리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자연 속으로 은둔하려 했던 스님의 모습을 더 집중하여 묘사했다. 법정스님은 뛰어난 작가로, 또한 엄청난 법력을 지녀 만물의 흐름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생불’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다른 모습보다도 법정스님의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에 주목한다. 청년 박재철이 어떻게 해서 큰스님이라 불리는 법정이 되었는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스님의 삶을 차근차근 좇아간다.
<산은 산 물은 물>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고 죽어도 산 사람이 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밤하늘의 별처럼 오롯이 빛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 「하이네 시집」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며 자유를 갈망하던 청년. 8년 동안 한순간도 잠을 자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 누더기 장삼으로 평생을 보낸 불멸의 수행자.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성인(聖人) ‘성철 큰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정찬주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성철 큰스님 이야기」가 열림원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산은 산 물은 물」은 1998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 우리나라 고승소설의 대표작이자 정신주의 소설의 고전으로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소설이다. 올해 11월로써 성철 큰스님(性澈, 1912~1993.11.4.) 14주기를 맞아, 초판이 출간된 지 9년 만에 새 장정을 입은 「산은 산 물은 물」이 독자들을 새롭게 만나게 된 것이다. 성철 큰스님은 한국 불교계에 지금까지도 타오르는 거대한 횃불이며, 종교를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밝혀주어온 이 시대의 진정한 정신적 스승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성철 큰스님은 1912년 지리산 산봉우리가 보이는 경호강변에서 태어나, 청년이 되어서는 「하이네 시집」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으며 ‘영원한 자유’를 갈망하게 되는데, 어느 날 탁발승에게 건네받은 영가 스님의 「증도가」를 보고 가슴 깊이 마음을 낸다. 출가는 헌헌장부의 모습으로 25세에 하고 성철이란 법명을 받아 치열한 참선 정진 끝에 마침내 29세에 부처를 이루어 깨침의 노래를 부른다. 이후 8년 동안 단 한순간도 잠을 자지 않고 앉아서 수행하는 인간 정신의 극점을 보여주는 장좌불와 수행을 하였다. 스님은 평생 동안 누더기 장삼을 입고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라고 법문하여, 한편으로는 새벽마다 법당으로 올라가 세상 사람들의 죄업을 대신 참회하는 삶을 살다가 열반의 노래를 한 수 남기고 이승의 옷을 벗으시었다. 이때가 1993년 11월 4일 아침 7시였다. 세상 나이 82세, 스님이 된 지 59년째의 아침이었다……. 어째서 이러한 성인이 우리 시대에 왔다 간 것일까? 험난하고 혼탁한 이 시대, 산중에서 흘러 내려오는 청명한 바람 한 줄기처럼 성철 스님은 우리와 함께했던,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분이다. 스님은 자신이 머물던 수행처에 철조망을 침으로써 속세와 엄격하게 거리를 두었지만, 그 동구불출(洞口不出)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 때문에 도리어 더 진한 향기와 기운을 세상 한가운데 뿜어낸 종교인이다. 오늘날까지 위대한 정신적 스승이자 불멸의 수행자로 불리는 성철 큰스님은, 우리가 세속에서 오욕의 시비에 사로잡혀 있을 때, 계곡의 청정한 물이 하류의 더러운 물을 정화시키듯 진리의 사자후를 터뜨리고 있었다. 성철 스님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매번 새롭게 읽혀져야 할 작품인 것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은, 주인공 정익진 검사가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는 행각(行脚)이라는 소설적 요소와 성철 스님이 출가 이전부터 입적 당시까지 실제로 걸어간 행장기라는 일대기적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된 장편소설이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하여 혹은 삶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찾아 방황하는 속인들을 대변하는 인물인 정익진 검사는 독자들을 성철 스님 수행기라는 낯선 시간과 공간 속으로 안내하는 일종의 로드무비의 주인공이다. 그와 함께 밟아가는 소설 속 이야기, 수행기 속 이야기와 더불어 달마·혜가 등이 등장하는 오래된 선가의 일화들, 선시(禪詩)들, 가르침들이 「산은 산 물은 물」을 구성하고 있다. 이 같은 구성은 오래전부터 구도(求道), 명상과 관련한 작품들을 다수 발표해온 작가 정찬주의 성실한 취재와 자료 조사, 글쓰기의 연륜으로 이루어졌으며, 구도소설 \\\"교양소설\\\" 정신주의 소설의 탁월한 본보기가 될 만한 틀을 형상화하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에는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일화들, 출가 이전과 이후의 주변 인물들, 도반·스승·제자들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어 성철 스님의 다양한 면모와 미덕을, 즉 삶 전반을 이해하게 해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성인에 대한 귀한 자료가 문학작품으로 체화되었다는 의미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성철 스님께서 법정 스님에게 얘기했다는 “내가 장(늘) 생각하는 쇠말뚝이 있는기라. 쇠말뚝을 박아놓았는데 그것이 아직도 꽂혀 있고, 거기에는 패(牌)가 하나 붙어 있는기라.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는 패인기라”라는 말씀은 지금도 우리의 뇌리를 치는 말씀이다. 우리는 자신의 가슴에 목숨을 걸 만한 무슨 쇠말뚝을 박고 사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오늘날, 왜 우리가 지금 불멸의 수행자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하는지 그 의의가 여기에 있다. 성철 스님은 종교를 뛰어넘어 우리가 마음의 탑으로 세워야 할 엄하고도 따뜻한 스승인 것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을 쓴 나의 바람이 있다면 성철 스님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자리, 즉 불성(佛性)을 만나도록 뗏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눈을 뜨고 보면 자신의 마음자리가 곧 성철 스님이자 부처이다. 우리는 밤마다 부처를 껴안고 잠을 자고 있으며, 아침마다 함께 눈을 뜨고 있는데도 자신의 부처를 발견하지 못하고 밖에서만 찾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성철 스님을 소설화시킨 속뜻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바로 이 점이다. 성철 스님을 통하여 본래 구원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보고 만남을 이루라는 것이다. 그런 만남이 이루어질 때 자신만의 남대문으로 쑥 들어가 진정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리라. -작가 후기 중에서 --차 례 ■ 줄거리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갈 길을 잃고 또한 건강을 잃고 방황하던 정익진 검사는 어느 날 성철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길을 떠난다. “여기 길이 있다. 아무도 그 비결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는. 그러나 그 길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길 자체도 없다.” 성철 스님은 스승인 동산 스님의 이 같은 말씀을 따라 홀연히 어느 날 출가를 단행한다. 정 검사는 세상의 시비를 떠나기는커녕 얽히고설킨 그 가운데서 정의라는 이름하에 고생고생 판단을 내려야 하는 소모적인 인생을 살아온 자신을 바라보며 성철 스님의 자취를 좇아간다. 그리고 그 길에서 원암이란 사내를 만난다. 원암은 과거에 해인사 백련암 스님으로 성철의 제자였으나 속세로 다시 돌아간 이로, 불문에 있을 당시 성철에게서 받은 친필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물려줄 성철의 진정한 상좌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자연스레 동행이 되어 성철 스님이 머물다 간 수행처들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철 스님의 수행의 역사를 간접체험한다. 이렇게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점차 가까이 가던 중 정 검사는 간월암 근방에서 서효라는 소리하는 여자를 만난다. 출가하여 스님이 된 아버지의 행적을 좇고자 하는 그녀 역시 정 검사의 또 다른 동행이 된다. 그들이 ‘길 없는 길’에서 길을 만들며 행각을 계속하던 끝에 마주치는 진실은 무엇일까……?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1월. 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된 성철 스님의 법문은 이러했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것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구절은 확철히 깨친 스님의 법어라고는 하지만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알쏭달쏭한 말일 뿐이었다. 성철 스님이 독창적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화두를 남긴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중국의 선사들이 자신의 개성에 따라 각각 다르게 설명하고 있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화두를 최초로 말한 중국의 선사는 황벽이었다. 황벽은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법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으면 산은 산, 물은 물, 중은 중, 속인은 속인일 뿐이다.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너의 본래면목인 것이다.” 백여 년이 흐른 뒤, 중국에서 운문종을 개창한 운문은 이렇게 말한다. “화상들이여, 망상을 부리지 말라.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중은 중이고, 속인은 속인이다.” 이로부터 2백여 년이 흐른 뒤, 청원은 이렇게 상당법어를 한다. “이 노승이 30년 전 아직 참선을 하기 전엔 ‘산을 보면 곧 산이고 물을 보면 곧 물이었다.’ 그후 어진 스님을 만나 선법을 깨치고 나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더욱 정진해 불법 도리를 확철대오하고 난 지금은 ‘그전처럼 역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대중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서로 같은 것이냐, 각기 다른 것이냐. 만약 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으면 이 노승은 그에게 엎드려 절하겠노라.” 청원으로부터 870여 년이 흐른 뒤, 1981년 1월 한반도의 가야산 해인사에서 한 노승이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것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중국의 선사들보다 훨씬 더 시적인 운율로 노래하듯 법어를 내렸다. 그가 바로 성철 스님이다. 이제 스님은 허공을 얻은 바람처럼 자유인이 되어 어디든지 마음대로 다니고 있는 것일까……? 스님이 출가를 위해 처음 찾았던 가야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산은 무심히 높고, 계곡물은 아무런 번뇌 망상 없이 천년을 하루같이 흐르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 ■ 본문 발췌 “성철 스님.” “큰시님, 송구합니더.” “다른 중들은 스님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어.” “그래도 큰시님 우째 지한테만 그랍니꺼.” “너를 대하니 스님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것이야.” 성철이 당대의 선지식인 용성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자, 다시 한 번 용성이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성철 스님.” “네.” 할 말이 있어 성철을 부른 것은 아니었다. “됐다, 방금 대답한 그 주인공을 놓지 말거라.” 용성은 암자 마당까지 내려와 모이를 쪼는 참새 떼가 놀랄 만큼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풋풋한 성철이 마음에 쏙 들어서였다. (1권, 78~79쪽) 운부암 시절부터 시작된 성철의 산짐승 사랑은 그의 수행력과도 비례하는지도 몰랐다. 대원사 시절에 이룬 동정일여에서는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운부암 시절에 이룬 몽중일여(夢中一如)에서는 노루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성전암 시절에 이룬 오매일여(寤寐一如)에서는 산비둘기와 한방에 살면서 마음을 나누곤 하였던 것이다. […] “태백산 도솔암이나 동암 호랑이하고도 맞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수좌는 철 수좌뿐일 걸세.” 성철은 수좌들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산짐승들이 그를 따르는 것은 그에게 해칠 마음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선방 수좌들이 무어라 부추기든 간에 성철은 대원사 시절부터 들었던 ‘무’자 화두를 눈을 부릅뜨고 다잡았다. (1권, 106~107쬭) “어쨌든 휴직원은 잘 냈다는 생각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성철 스님을 알고 싶으니까요.” “이제는 성철 스님의 상좌 같습니다. 마치 스승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화두를 알고 싶다는 얘기 같군요.” “돌아가신 성철 스님의 육신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는 성철 스님의 혼을 만나고 싶습니다.” (1권, 127쪽) 초승달은 아직도 어두운 중천에 떠 있었다. 하늘의 외눈처럼 실눈을 하고 밤바다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갯바위에 오른 그녀의 정수리에 희미한 빛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갯바위에서 외투자락을 펄럭거렸다.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악귀를 물리치듯 목을 틔우고 있었다. 아흐아 아흐아아. 성악가가 음을 고르기 위해 터뜨리는 아아아아 하는 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성악가의 소리는 공명의 기교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는데, 여자의 소리는 기교를 떠나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처럼 폐부를 뜨끔하게 찌르는 무엇이 있었다. […] 정 검사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파도 소리와 또렷이 구분이 되는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였던 것이다. (1권, 176~177쪽) “인간의 성품은 평등한기야. 빈부귀천이 없다, 이 말이야. 그런데 현세의 사람들은 차별심을 갖고 살고 있어. 아침 도량 청소도 차별심인기라. 무릇 수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져야지 권력자라고 해서 다른 마음을 내어 되겠는가, 이 말이야.” (1권, 202~203쪽) “이 당근 누가 버렸노?” 시자는 당황하여 더듬거렸다. “써, 썩은 것 같아서 버렸습니다.” 성철은 기가 막힌 얼굴을 하였다. “이 녀석아, 이 당근은 너의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것이여. 밥알 하나가 버려지면 그 밥알이 다 썩어 흙이 될 때까지 불보살님이 합장하고 있는 것이여. 당장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나머지는 찬으로 쓰도록 해.” […] “당근 뿌리 썩은 것 하나 버렸는데 무얼 그리 야단이십니까?” […] “썩은 배춧잎 하나도 이리저리 발겨서 쓰는 게 불가의 법도인 줄 안즉 몰랐더냐?” 아무 말도 못 하고 쩔쩔매고 있는 시자가 안쓰러웠던지 성철은 한마디를 던지며 그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도인의 마음은 넓기로 하면 허공과 같고, 좁기로 한다면 바늘 하나 꽂을 틈이 없는기라.” (1권, 215-216쪽) 정 검사님. 마침내 저의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이었지요. 어머니가 드디어 사실을 털어놓으신 것이지요. […] 아버지는 세상을 버리고 출가하신 스님이기 때문에 찾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설령 찾아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아버지를 숨긴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는 이미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사람이기에 찾아도 부질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 검사님. 그래도 저는 아버지라는 그 남자를 찾고 싶습니다. 아버지든 스님이든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고 난 후, 제가 목말라한 실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1권, 281쪽) 정 검사가 어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화두를 알 것인가. 아직도 그에게는 알쏭달쏭 안개 속에 가려진 화두일 뿐이었다. 1+1=2라는 말일까. 아니면 그런 가설이 아니라, 가설 이전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0(空)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일까. 정 검사는 재떨이가 없었으므로 담배에 침을 뱉어 불을 껐다. 그러고는 자신의 생각들이 한낱 망상 같은 것임을 깨닫고는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머릿속에서 변조해 낸 관념의 찌꺼기인 것이었다. (1권, 298~299쪽) 봉암사에 사는 대중의 숫자는 예닐곱 명밖에 안 되었다. 낮에 떡을 사준 우봉 외에 청안, 보문, 일도, 자운 등이었다. 모두가 얼굴이 맑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할 때는 소리가 너무 작아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였다. 웬만한 의사표시는 미소로 주고받곤 할 뿐이었다. […] 청담이 온 뒤로는 봉암사도 총림의 기틀이 빠르게 잡혀갔다. 청담과 성철이 손을 잡으니 거침없는 추진력이 생긴 것이었다. 수좌들도 더 모여들었다. 월산, 성수, 종수, 응산, 만성, 보경, 법전 등이 총림의 소문을 듣고 깃을 접는 보라매처럼 봉암사로 찾아왔다. 어느새 대중의 수가 이미 와 있던 청안, 보문, 일도, 자운, 도우, 보안 등에다 비구니 묘엄 등까지 합하여 30여 명으로 불어났다. 비로소 청담과 성철은 중국 총림을 참고로 하여 당시 봉암사 대중의 실정에 맞는 규칙, 즉 함께 생활하는 수행자들의 약속인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이 규약은 부처님 법대로 살려는 엄혹한 실천궁행이었다. (1권, 331~332쪽) “밥값 내놓그래이.” 고함뿐만이 아니었다. 스님들이 아무 말도 못 하자, 손찌검과 멱살잡이가 시작되었다. “곰새끼들아, 밥값 내놓그래이.” 선방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향로를 던져 재를 뒤집어쓴 스님이 있는가 하면, 다기물이 엎어지는 등 선방은 엉망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성철은 계속 도망치는 스님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공짜로 묵었던 밥값 내놓그래이. 희양산 곰새끼들아.” (1권, 345쪽) “불교 정화는 밖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하는 것이며, 타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서울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산중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2권, 85쪽) 나무를 하러 가면서도 성철은 진 행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스님, 신도들이 가지고 오는 물건들을 왜 물리치는지 궁금합니다.” “신도들이 준다고 다 받아서는 안 되는기라.” “스님이 좋아서 갖다드리는 건데요.” “앞으로 니도 스님이 되거든 받는 물건을 화살처럼 여겨야 된다.” “스님, 화살을 맞으면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그럼. 무섭게 여기라는 말인기라.” (2권, 94쪽) “절에는 기도하러 오는 것이다. 비싼 옷을 입고 다니며 누구를 꼬드길라꼬 그러느냐?” “큰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여기는 부처님밖에 없다.” 그러더니 성철은 들고 있던 낫으로 원명화의 비로드 치마를 찢어버렸다. 예리한 낫에 원명화의 검은 치마가 두 자락으로 갈린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원명화가 기가 질려 움찔하자 성철은 속사포 같은 말로 쏘아댔다. “내 시킨 대로 안 하면 니 집 망하고, 니는 거지 되어 길거리에 나앉을끼다. 니 집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 “시킨 대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법당에 가서 삼천배 하고 오라.” 원명화는 찢어진 치마를 입은 채 법당으로 올라갔다. 성철에게 압도되어 혼이 빠져버린 사람처럼 법당으로 달려 올라갔던 것이다. (2권, 118쪽) “니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행복을 위해 삽니다.” […] “행복에는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이 있다.” “스님,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허허허.” 성철은 불필의 결의가 다소 의외라는 듯 헛웃음을 쳤다. 그러나 불필은 비로소 성철에게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때까지 품었던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가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해도 받아줄 스승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것이 영원한 행복입니까?” “부처님같이 도를 깨쳐서 생사 해탈하는 것이 영원한 행복이다.” “어떤 것이 일시적인 행복입니까?” “이 세상 오욕(五欲)의 낙을 얻는 것이 일시적인 행복이다.” 오욕이란 다섯 가지 욕심으로 재물욕과 명예욕, 식욕과 수면욕, 그리고 색욕을 말함이었다. 이때 불필은 성철 앞에서 약속을 했다. “스님, 저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 살겠습니다.” (2권, 141~143쪽) ‘나는 이제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며칠을 빼고는 아무리 가까운 도반이라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설법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며칠을 빼고는 누구에게라도 설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절에서 부르더라도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성전암의 수행은 암자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동구불출(洞口不出)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암자와 세상의 경계에 철조망을 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암자 주위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 반대다. 나는 세상을 철조망으로 가두어놓을 것이다.’ (2권, 154쪽) “미국 파르마 산에는 2백 인치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는기라. 그 직경 5미터짜리 망원경으로 보면 10억 광년을 볼 수가 있다, 아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라는 것 밖에도 무한한 우주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된기라.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우주 집단이 40억 개 내지 50억 개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데이. 이것을 볼 때 부처님이 말씀하신 백억세계라는 것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기라. 아직 10억 광년밖에 볼 수 없지만 과학이 더 발달하면 백억 광년도 볼 수 있다, 아이가. 그렇게 되면 더 무한한 우주 집단을 볼 수 있을기다. 이와 반대로 부처님께서 가장 작게 보신 것으로는 ‘일적수구억충(一滴水九億蟲)’이라고 하신 것이 있데이. 이 말씀의 뜻은 물방울 한 개에 9억 개나 되는 많은 양의 벌레가 있다는기라. 최신의 현미경으로도 아직 물방울 한 개에서 벌레를 9억 마리까지는 볼 수 없지만, 그토록 조그만 세계에 그렇게 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은 요즘에 와서 점차 증명되고 있다, 이 말이야.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혜안을 가지고 상상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 공간을 보신기라. 흔히 말하는 상주법계, 진여법계라고 하는 것도 중생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 말이야. 불생불멸을 내용으로 하는 세계는 무한에서 무한으로 이어지는 세계인기라.” (2권, 231~232쪽) 소쩍새 울음소리가 멀어지고 새벽 예불의 소종 소리가 날 때에는 절의 횟수를 헤아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땀을 마룻바닥에 뚝뚝 흘리며 ‘불전 삼천배’라는 성철 스님의 독특한 화두 삼매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성철 스님의 큰 눈은 더 크게만 보였다. “웬 놈이고. 나한테 절하지 말고 니한테 하란 말이다. 못난 나는 니한테 절 받을 자격 없데이. 니 자신이 부처님이니 니한테 하란 말이다.” (2권, 285쪽) “다음에는 어디로 가실 거예요?” “이제 다시 해인사를 찾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결국 찾아야 할 것은 내 자신입니다.” “성철 스님을 통해서 자신 앞에 돌아온 분 같군요.” “성철 스님을 통해서 얻은 결론입니다. 제가 들어가야 할 저의 남대문은 청산에 있지 않고 저잣거리에 있습니다. 제 직장 또한 저의 남대문입니다.” […] 정 검사는 천 년 전 최치원이, 천 년 후 성철 스님이 가야산을 떠나지 않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노래하였듯 자신은 저잣거리에서 화두를 붙들어야 한다고 마음을 내었다. 결코 찾아야 할 성철 스님은 가야산에 없는 것이었다. 성철 스님을 찾아 전국을 일 년 동안 돌아다녔지만 마침내 자신의 마음자리에 성철이란 씨앗이 싹터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자신의 마음자리가 그동안 찾아 헤맸던 성철이자 부처인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장님 같은 자신은 밤마다 성철 스님을 안고 자왔고, 아침마다 성철 스님과 함께 일어나온 셈이었다. (2권, 292~293쪽)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없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서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구름 되어 둥둥 떠 있는 변화무쌍한 부처님들 바위 되어 우뚝 서 있는 한가로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귀여운 부처님들 허공을 훨훨 나는 활발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법당에서 염불하는 청수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넓고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고 가는 부처님들 고요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이라. 일체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일체이니 모두가 평등하며 낱낱이 장엄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세계는 모든 고뇌를 초월하여 지극한 행복을 누리며 곳곳이 불가사의한 해탈도량이니 신기하고도 신기합니다. 입은 옷은 각각 달라 천차만별이지만 변함없는 부처님의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자비의 미소를 항상 머금고 천둥보다 더 큰 소리로 끊임없이 설법하시며 우주에 꽉 차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 나날이 좋을시고 당신네의 생신이니 영원에서 영원이 다하도록 서로 존경하며 서로 축하합시다. (2권, 296~297쪽) “사람들은 이 어려운 시대에 정신적인 지도자의 말 한마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허허. 내가 말하면 따라오는 척은 하겠지.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는 바람이고 아무 소용없는기라. 종교인은 그저 종교인 자세로 묵묵히 있다 보면 다 역할이 생기는 것이야. 지금 김영삼이가 내 말 듣겠노, 김대중이가 내 말 듣겠노. 아무도 내 말 들으려 하지 않는데 누구 보고 내 말 들어라 하겠노? 나는 그런 시국 발언 안 한다.” […] “스님, 한 번만 오십시오. 스님만 오시면 여의도에 몇백만이 모일 것입니다. 교황이 오고 빌리그레암 목사가 와서 모인 그네들 인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허허. 답답하기는. 그렇게 모이는 것은 포교에 도움이 안 되고 온 조계종을 똥칠하는 것인기라.” […] “니는 내보고 자꾸 나가라, 나가라고 하는데 내가 안 나가고 여기 버티고 있는기 얼마나 힘든지 아나? 보면서도 그걸 모르나? 내가 산중에 살면서 종정하는기 뭐꼬? 산중에 수행승 하나 제대로 있는 꼴을 보여주기 위한 것 아이가.” […] “안 나가고 있는 것이 불교를 더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것인지를 나중에야 사람들이 말할끼다. 많은 말을 할 때가 올끼다.” (2권, 313~3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