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산
박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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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인 척 아닌 척

<존재인 척 아닌 척> “나…… 그 사람하고 사천 마력의 힘으로 사랑할까 봐.” 우리를 에워싼 수많은 유혹과 충동,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숨겨진 존재를 찾아 나선 한 남자의 지리멸렬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 ▣ 다가올 듯 말 듯, 유혹과 충동의 미로 속을 탐닉하는 박금산 장편소설 의무, 억제, 윤리, 책임. 우리가 이러한 중압감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 원초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할 것인가? 그리고 어디까지 쫓아갈 수 있는가? 이 책은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발걸음,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행위를 탐닉한다. 2011년 『아일랜드 식탁』으로 동인문학상 최종 심의에 오른 박금산 신작 장편소설 『존재인 척, 아닌 척』이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존재인 척, 아닌 척』에는 단 하루만 충동적으로 떠나버리기로 한 주인공 병호의 고통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방황이 펼쳐진다. 작가는 “누군가는 이유를 가지고 떠나지만, 누군가는 이유가 없이도 떠난다”는, 모두가 품은 ‘충동’이라는 환상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이끈다. 하지만 충동 속에는 만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을 유혹하고 갈망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이럴 계획은 아니”었으나 결국 자신의 존재에 의심을 품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 하룻밤의 바깥잠을 꿈꾸며 불현듯 기차에 오른 병호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다 외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병호는 문득 떠나고 싶어진다. 도시를 떠나려면 큰 다짐을 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묶어두었으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회사 동료, 가족들을 생각하자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 몇 년 전, 자신에게 피디에이를 구매한 Y시 수협 구판장 여직원도 궁금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정부에게 외박한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흔쾌히 아이를 맡아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병호의 마음은 조금씩 바다를 향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무실은 십 분 거리에 있었다. 그곳으로 복귀하고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 앞에다 그는 ‘아마도’라는 말을 놓았다. ‘아마도 나는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자 반드시 해야만 했고, 더 중요한 다른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뭘까. 사무실에 가지 않는다면 뭘 해야 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아,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싶어 할까. 왜 앞으로 뭘 할까를 생각해야 하는 걸까. (16p) 병호는 자신의 차와 휴대전화를 버리고 기차에 올라탄다. 하지만 막상 떠나온 일탈 여행이 생각만큼 근사하지 않다. 모르는 여인을 만나 하루 동안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며, “하늘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는 상상은 금세 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잠시 들른 목욕탕의 안마사에게 자꾸만 성적 충동을 느끼는 자신의 추한 모습, 기차 옆자리에 앉아 귀찮게 말을 거는 노인의 얼굴이 현실일 뿐이다. 기대를 잔뜩 안고 떠난 여행이 갈수록 망가진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병호는 이러한 욕구와 충동을 참아내며 바다에 도착한다. ▣ 낯선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갈구하는 승무원 안영 수협 구판장 여직원이 문득 생각나 떠나온 바다. 병호는 그곳에서 기차 승무원 안영을 만난다. 어린 시절부터 욕심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싶었지만 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안영. 그녀는 결국 상업고등학교와 야간대학을 나와 기차 승무원이 된다. 하지만 입원한 자신의 엄마를 보살펴 줄 다정한 남자를 만날 거라는 기대, 기차 승무원의 처지가 더럽고 치사하지만 언젠가는 승진할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안영은 매 순간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그리고 연고도 없이 우연히 만난 병호에게 왠지 모를 기대를 하게 된다. 처음 만난 날부터 병호는 안영에게 “너랑 자고 싶”다고 말한다. 안영은 그런 병호가 싫지는 않지만 낭만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주저한다. 안영은 병호가 자신과 자고 나면 떠날 것만 같다. 병호의 끈질긴 구애로 둘은 안영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으나 각방을 쓰는 처지에 놓인다. 안영이 출근하면 병호는 빈집에 남아 안영의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어보기도 하고, 안영의 화장품으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자꾸만 달라붙는 병호가 밉지 않은 안영. 열흘 만에 병호와 함께 호텔로 향한다. 병호와 안영의 첫날밤은 지리멸렬하게 이루어졌다. 몸을 섞자 서로의 몸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안영은 병호에게 “책임져 줄 수 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길 원했지만 병호는 늘 장난스럽다. 안영은 그럴수록 병호를 갈망하지만 병호는 점점 집 생각이 난다. 떠나온 것들이 눈에 밟히고, 출근하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안영은 싫증난다. 그리고 이유도 없이 진진이 그리워진다. 안영은 병호의 마음을 읽은 듯 병호에게 난데없이 짜증을 낸다. 안영은 이번 사랑만은 자신을 지켜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호와 안영은 변해 버린 마음으로 호텔을 나선다. “당신, 나한테 뭐 해줄 수 있어?” “…….” “뭐 해줄 수 있냐고. 당신 삶의 여분에 나를 앉혀 놓고 싶은 거지? 미쳤어 정말. 아! 내가 돌았어. 이게 뭐야!”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되는 거지. 이런 게 인생 아냐?” “지겨워. 아니라고 왜 말 못해? 애 버리고 올 거니까 함께 살자는 말 왜 못 해? 애도 있고 마누라도 있는 거지?” 안영은 이불을 확 들치고 일어났다.(190~191pp) ▣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상을 버리기 위해 떠나간 아내 진진 병호의 아내 진진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사를 고민하던 중 병호와 만나 결혼했다. 진진은 현실보다는 이상을 꿈꿨고, 규정된 삶을 싫어했다. 그런 와중에 친구들을 두고 홀로 취직이 되었다는 자괴감 속에 입사를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들어가기로 한다. 의외로 진진의 회사생활은 순탄했다. 매일 같은 야근과 잔심부름, 근무 시간 중에도 자기 아이를 챙기러 몰래 빠져나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냈다. 금세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았던 시간들은 원래 없었다는 듯 여느 직장인들처럼 욕하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곧잘 다녔다. 그럴수록 가정은 엉망이 되어갔다. 병호는 진진이 조금이라도 가정을 신경써주길 바랐지만, 진진은 그런 병호가 지나친 제도적 삶을 사는 것 같아 서운하기만 하다. 결혼 전에도 달랐던 병호와 진진은 별다른 의식도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해 계속 멀어진다. 결국 집에 가정부를 고용하자, 진진은 점점 가정과 멀어지고 회사 생활까지 염증을 느낀다. “자기. 나도 복잡해. 내가 선배들 혐오하던 거……, 내가 그런 여자로 되는 거 자기도 원치 않잖아.” (중략) “다른 엄마들은 회사 다니면서도 애 잘 키우더라.” “자기도 나를 다른 여자랑 비교하려고 하는구나. 그런 말, 내가 싫어한다는 거 알면서. 당신도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아지려 하고 있어. 슈퍼맘이 뭐냐면, 림이 아빠, 집안일 다 하고, 거기다 직장까지 잘 다녀서 가정 책임지는 여자들이 슈퍼맘이야. 난 체력 그렇게 안 강해.” 그는 림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슈퍼맘의 슈퍼는 남자만큼 한다는, 아니, 남자보다 잘한다는 뜻에서의 슈퍼가 아니었다. 집안일 하는 여성에게 직장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얹은 것이 슈퍼맘의 이데올로기였다. 뉘앙스가 멋져서 슈퍼맘은 보통의 남편을 현혹시켰고 보통의 아내를 좌절시켰다. (253p) 진진은 집을 떠나 대안학교 밥선생이 되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삶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시골로 들어간 것이다. 병호는 아이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가정부하고 지냈다. 병호는 때로 진진 몰래 그곳을 방문하려 하지만 자신이 “예쁠 때만 보여 주고 싶”다는 진진의 말에 자주 찾아가지도 못했다. 여성에게 살림을 부여하는 일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던 진진에게 밥선생은 도통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진진은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며 좋아했다. 엄마와의 기억이 없는 아이는 진진을 낯설어하고, 진진 역시 아이의 성장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가정적 생활이 싫어 떠나간 진진이 밥을 지으며 행복을 발견했다 말하자 병호는 이제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정말 그렇게 계속 살 거니?”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좋아. 행복이 가까운 데 있다는 게 느껴져. 금방 몇 개의 단어로 그걸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행복이라고? 단순해지더니 뻔뻔해졌구나. 그는 고상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너무 그러지 마. 어쩔 수 없어서 간 거지, 좋아서 간 게 아니잖아. 거기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면 넌 좀 문제 있는 거야.” 진진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어쩔 수 없어서 먹었는데 그게 맛있으면 얼마나 놀랍니? 그게 행복 아니야? 림이 아빠, 여보, 언제든 와. 대환영이야.” (268~269pp) ▣ 존재를 확신하는 자, 존재를 찾는 자,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는 자, 그리고 존재를 찾지 못한 채 떠난 자 세 인물이 있다. 이들은 ‘존재’로 엮인다. 행복이라는 존재 위에 안착했노라 말하는 진진, 우연의 만남 속에서도 항상 인연이 존재할 거라 믿는 안영, 억압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 병호. 모두들 존재를 찾거나 찾아 나서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 뒤에는 존재 찾기에 실패한 딸기 형이 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자신에게 어떤 시간이 다가올지 몰라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던 대필 논문 작가 딸기 형. 그는 죽음을 택했다. 가족들도 그가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었고, 함께 논문실을 썼던 병호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딸기 형은 다른 대학원생들의 논문을 대필하며 근근이 살아갔다. 허무와 상실해 가는 자존감 속에서, 손가락에 피를 내며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결국 논문실에서 목을 맸다. 그의 생에는 이렇게 처절한 죽음이 이미 계획되어 있던 것일까? 그렇다면 앞의 세 인물이 찾았다 확신하는 것, 그리고 의심하는 그것은 과연 어떤 ‘존재’일지 생각해 볼 차례다. 그는 딸기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이 나왔다. 케렌 앤이 청량한 기타에 맞춰 노래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다는 듯한 목소리. People come and go and walk away. But I'm not going any-where. I'm not going anywhere. 사람들은 와서 가고, 걸어가도,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난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중략) 그의 컬러링을 들을 때마다 그는 왠지 바다를, 아기자기한 해안을 떠올렸다. 딸기 형은 이렇게 말했다. 날씨가 좋으면 바다가 꼭 밭 같어야. 이랑 만들어놓은 밭처럼 물결이 이뻐. 그는 자동차를 타고 아파트로 갔다. 부랴부랴 가봤더니 딸기 형은 인생에서 로그아웃해 있었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알전구처럼 자기 몸을 아이 그네 옆에 댕강 걸어놓고 있었다. (266p)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거대한 일상, 왜소한 사랑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부모님이 물려준 집에서 자신과 동거할 세입자를 찾는다. 그는 매우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졌으며,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다. 이 남자는 스스로 세입자를 고르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만들어 외국인 여성을 세입자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처음에는 여인으로 인해 ‘계약 동거’를 하는 듯한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호의의 거절, 방마다 설치된 잠금장치 등 기대와는 다른 여자의 행동으로 결국 자신의 세입자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게 된다. (「이국종 고양이의 방」) 백화점에서 방송 일을 하고 있는 남자와 법원 속기사를 하는 여자가 있다. 고소공포증을 가진 이 남자는 여자의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비행에서 여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앞에 ‘SUV’를 모는 옆집 남자가 출현하게 되는데, 이 돌발적인 외부 인자의 출현으로 이들 연인의 관계는 재정립되기 시작한다. (「17층 아래의 나뭇잎 - 현기증」) 현대인들의 일상과 심리를 세련된 필체로 세밀히 관찰하고 있는 박금산의 이번 소설에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으나 실제로는 결핍되고 메마른 내면을 가진 현대인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을 대하는 모습에서는 일면 나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 가령, 위에서 예를 든 두 작품에서처럼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외국인 여성을 세입자로 하여 살아가는 남자(「이국종 고양이의 방」), 연상의 여인과 일탈을 감행하는 의료 보조기구 제작사(「누가 피리를 부는가」), 심한 고소공포증으로 아내와의 여행조차 하지 못하는 남자(「17층 아래의 나뭇잎-현기증」)―을 통해,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들이 가상하는 ‘정상(正常)’이라는 것이 실상에서는 어디에도 없는 기준임을 전제로 정상적이지 못한 인물들이 정상을 추구하고, 보전하려는 노력들을 무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머러스한 어투로 그려내고 있다. 선(線) 밖의 일들에 대하여 박금산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탈주를 꿈꾼다. 그들은 젊은 시절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어떤 자리에서 몸부림쳤거나, 어른이 되어서 사회가 가진 제도(적 모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것은 ‘혁명’이나 ‘대의’와 같은, 지금의 그들이 짊어지고 가기에는 턱없이 무거운 것들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겉보기는 풍요로우나 결핍되고 메마른 내면을 가진 현대인들이 내뱉는 작은 고백일 따름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추억이나 사랑, 도덕, 정의와 같은 것들을 소유할 수 없다. 그것은 소설집의 한 제목처럼 ‘사라진 것’이자, 한편으로는 ‘없었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사라진 것, 없었던 것」) 앞에서 말한 것들, 사랑이나 정의와 같이 지금 우리들로부터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어쩌면 우리가 애초에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소외’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사랑이나 정의의 주변을 맴돌다 어느 날 그것의 부재를 느끼고는 뜬 눈의 봉사처럼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 현대인의 일면이기 때문이다. 박금산의 소설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특징적 면모들 속에서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들로부터 ‘탈주’를 꿈꾸는 상반된 모습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제도로부터, 관계로부터, 일상으로부터,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로부터 일탈의 유혹을느낀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자신의 삶이, 혹은 삶으로부터의 일탈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탈’이었음을 조용히 고백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삶이야말로 가질 수 없는, 늘 주변을 맴도는, 중앙도 중심도 중간이라는 것도 없는 오로지 탈주의 공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순간들

<소설의 순간들> 스물다섯 편의 소설과 소설론으로 바라본 소설의 모든 순간들! 국가와 지역을 불문하고 삶이 있는 곳에는 소설 즉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소설은 어떻게 시작되어 전개되고 고유한 생명력까지 얻는 것일까? 《소설의 순간들》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소설가 박금산만의 대답이다. 그는 플래시 픽션(아주 짧은 단편소설) 스물다섯 편을 이야기의 단계에 따라 발단, 전개, 절정, 결말 총 4부로 나누었다. 짧게는 한두 페이지, 길게는 10페이지에 달하는 플래시 픽션이야말로 삶의 찰나를 포착하고 그 단면을 들여다보기에 더없이 훌륭한 형식임을 작가는 증명하는 듯하다. 여기에 자신만의 소설론과 작법론을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발단은 워밍업이 아니다’, ‘전개는 서핑에서 보드 위에 올라서는 과정이다. 보드는 전진하고, 몸은 상승해야 한다’, ‘절정은 끝이지만 절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좋은 결말은 외길이다’와 같은 저자의 조언은 읽는 즐거움을 찾는 독자뿐만 아니라 컨텐츠를 창작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