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놈과 사통했다는 누명으로 집안에서 쫓겨난 한여울.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 여울에게 붉은 꽃비를 뒤집어쓴 사내가 찾아왔다. "네가 한여울이더냐?" 낮게 고여 드는 목소리가 여울의 몸을 침식했다. 구원자라 불러야 할지, 살인자라 불러야 할지 모를 사내는 다시 한번 검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네가 한여울이냐 물었다.” 여울에게 고정된 검은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났다. 먹이를 눈앞에 둔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여울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였다. “……제가 한여울입니다.” “제안 하나 하지.” 사내는 한쪽 입꼬리를 비죽 틀어 올렸다. 이윽고 새까만 목적을 드러냈다. “나, 강성대군 이태의 여인이 되거라.” 여울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그녀의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오만한 명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