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포개 놓은 잘린 손, 훼손된 눈, 피해자들의 서로 바뀐 목, 손등에 남겨진 D라는 표식. 잇따라 발생한 충격적인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강력계 형사 강찬우는 피해자의 수첩에 적혀 있던 약사 이정윤을 조사하게 되고 첫 만남부터 그에게 호감을 갖는다. 한편 과거의 사건 이후 정윤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던 재희는 복수를 위해 살인마 D에게 위험한 게임을 제안한다. D와 재희의 게임이 계속될수록 피해자는 점점 늘어만 가고, 범인을 쫓는 수사팀의 움직임도 다급해지는데……. . . . “이번에는 당신이 이겼습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저는 정말 몰라서 모르겠다고 대답한 겁니다. 이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누구보다 그에게 이기고 일을 빨리 끝내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인데. 하지만 그의 행동은 너무나 수상쩍었다. 그는 지금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재희는 이기고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누구를 원하십니까?” 두 번째로 준비해두었던 파일을 곧장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파일을 펼쳐 사진을 살폈다. 재희는 분한 마음에 거칠게 내뱉었다. “답은 집주인이야. 이야기 속에서 거울에 비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지.”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그가 정말 몰랐다는 듯이 눈썹을 들썩였다.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재희는 알 수 있었다. 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에게 놀아난 것이 기분이 더럽고 짜증 나면서도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머릿속이 절로 복잡했다. 어째서 그는 자신에게 져주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밤하늘은 재희의 마음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