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여행기> 이집트 기행 장편소설. 깐깐한 시선으로 관찰한 이집트 이야기. 화자인 ‘나’는 여러 번 가봐서 익숙해진 인도나 태국 등 아시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인 중동 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커다란 기대감과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이집트를 시작으로 그 주변 국가인 요르단, 시리아 등을 여행할 계획이었으나 카이로에 매료되어 그곳에서만 장기 체류하게 된다. 카이로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인기가 많은 숙소 ‘이즈마일리아 하우스’가 있다. ‘나’는 그곳에 머물면서 이집트인들의 독특한 삶의 모습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여행 온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깐깐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본문읽기] 앙드레아는 지난 밤 어디에 갔었을까. 자말렉에 있는 한국식당을 물어보려고 그녀의 도미토리에 갔으나 그녀는 없었다. 한국식당 주인은 일본 밸리댄서가 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녀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는 뜻이다. 거기에 가면 밸리댄서에 대한 궁금증이 풀릴 것 같다. 하지만 식당 위치를 모른다. 앙드레아는 알까 싶어서 밤 10시경부터 12시30분까지 서너 번이나 그녀를 찾아갔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에 간 것일까. 다음 날 아침 8시30분경에 그녀의 방을 열어 보니 그녀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앙드레아는 뭐 하는 여자일까. 하는 일도 없이 왜 카이로에서 장기체류하고 있을까. 그녀가 이 호텔에 처음 온 날 그녀는 어떤 중년 아랍남자와 친밀한 관계인 듯 보였다. 그녀가 인터넷을 할 때 남자는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동시에 인터넷에 참견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TV를 볼 때에도 그는 바로 옆에 앉아서 휴대폰 통화를 하면서 그녀와 웃고 떠들었다. 한눈에 봐도 연인처럼 보일 만큼 친밀하게 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이집트인 커플인 줄 알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세트 (전 2권)> 인도 기행 장편소설. 마리화나, 프리섹스, 레이브 파티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인도 서남부 해안 휴양지 고아(Goa)에 관한 불온한 여행기. 사는 게 지루하고 재미 없어 일탈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책. 1편 <보헤미안 랩소디 1 – 히피의 천국 Goa>에서 주로 외국 여행자들의 이야기와, 한국에서는 자칫 거리낌이 있을 수 있는 마약과 프리섹스라는 소재를 거침 없이 다뤘다면, 2편 <보헤미안 랩소디 2 – 6년 후에>에서는 1편으로부터 6년이 지난 후의 에피소드들이 수록되었다. 긴 갈망 끝에 드디어 떠나게 된 ‘나’의 네 번째 고아 여행 이야기가 2편의 주요 테마다. ‘나’는 고아에 머무는 동안 자주 다녔던 카페, 레스토랑, 클럽, 인도 특산품점 등 오가는 곳곳에서 현지 사람들과 가식 없이 사귀며 좀더 깊숙한 인도인들의 삶을 끄집어낸다. 같은 인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생활 모습이나,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 그리고 여성 여행자들에 대한 인도 남자들의 환상과 무례함 등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왠지 그곳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생생하게 떠오를 뿐만 아니라 당장이라도 고아에 달려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작가가 억지로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인물을 그려냈기 때문이리라.
<이스케이프 (Escape)> 1998년 제8회 작가세계문학상 본심 입선작 어느 현실 도피자의 인도, 유럽 방랑기. 작가지망생인 ‘나’는 6개월간의 인도 여행이 끝나면 직장을 구해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는데 예기치 않게 피터를 만났다. 그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나에게 청혼하였고 여행이 끝나면 함께 독일로 가자고 제의하여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생활비 걱정 없이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터의 말대로 독일에 가서 그가 직장을 구할 때까지 한두 달 동안만 어머니 집에서 살다가 아름다운 도시 마르부르크에 아파트를 얻어 분가하면 대학도 다니고, 단둘이 조촐하게 살 수 있고, 틈틈이 독일과 인근 유럽을 여행할 수 있으니까 그와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나와 나이차가 많아서 싫었고 과거에 마약중독자였기 때문에 언제 또다시 마약에 손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의 문제다. 독일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어느 한쪽이 싫으면 쉽게 이혼이 성립되니까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독일에 돌아가자 지하실을 개조하여 살림집으로 꾸몄다. 원룸형이라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독립된 공간은 어림도 없었다. 독일에 가면 바로 직장을 구하겠다던 그는 실업률이 높다는 핑계를 대며 집에서 정원이나 손질하고 명상만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와 함께 사는 동안 그가 힌두 경전 <바가바드기타> 이외의 책을 읽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힌두교 음악 이외에 다른 음악을 듣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는 가끔 나에게 순수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는지, 힌두교 신자가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둘 다 관심 없다고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마리화나를 피운 것을 꼬투리 잡아 나는 훌훌 털고 그 집을 떠나 델리 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내가 인도에 가고 싶어서 방 핑계, 마리화나 핑계를 대는 거라고 원망하였다. 그는 붙잡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글썽이며 꼭 가야만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실업자 신세였고 만약에 베를린에 간다면 내년 1월에나 자리가 난다. 나는 소중한 시간을 희망 없는 남자에게 저당 잡히기 싫었으므로 마음의 큰 갈등 없이 그와의 잠정적인 이별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스웨덴 남자 로버트를 만나는데.....
<코팡안> 태국 기행 중편소설. 코팡안 여정(旅程)에 관한 생생한 보고서(report). 화자인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 2 – 6년 후에>를 쓰기 위해 인도로 가던 중 풀문 파티로 유명한 태국 코팡안에 잠시 체류한다. 2006년 11월의 어느 날 저녁 6시. 카오산 로드 KM 여행사 앞. 어디선가 태국 청년이 나타나 싱가포르, 치앙마이, 코사무이, 코팡안 등에 갈 사람들을 따로 분류하여 스티커를 붙여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깨에 메는 배낭인데 내 것은 커다란 트렁크이다. 청년은 나 혼자서 끌고 가기엔 너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지 나와 함께 가방을 끌고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청년과 내가 맨 앞에서 걸었고 다른 여행자들은 뒤를 따라왔다. 조금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청년은 중간중간 다른 여행사에 들러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이것을 조인트라고 한다. 카오산 로드에 여행사는 많지만 대형버스 한 대를 다 채울 만한 인원수는 되지 않으니까 여러 곳의 여행사에서 티켓을 산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조인트를 하면서 걸어간 것이 자그마치 30분. 마지막 여행사에는 한국인 남녀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20분을 기다린 후에 드디어 버스에 올랐다. 지정좌석제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으면 된다. 내 앞에는 백인 커플이 앉았고 뒤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독일남자, 그 뒤에는 아까 본 한국인 남녀가 앉았다. 한국인 남녀는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카사블랑카> 모로코 기행 소설. 어느 모로코 여인의 내밀한 삶. <본문읽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저녁 먹으러 레스토랑으로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샤라가 묻는다. 카사블랑카에서 자동차로 왕복 3시간 거리인 라바트에 갈 건데 괜찮겠느냐고. 지금이 7시니까 11시 안에는 돌아올 거라고. 나는 부샤라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라바트에도 한 번쯤 다녀오려고 했기 때문에 기꺼이 따라갔다. 하산은 아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라바트로 가는 것일까. 그들은 모로코 대중가요를 틀어 놓고 크게 흥얼거렸다. 부샤라는 하산보다 한술 더 떠서 손뼉을 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흥을 돋구었다. 그녀는 음악을 매우 좋아하여 카페에서도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는다.
<방콕통신> 태국기행 장편소설. 이방인의 삶, 타국의 한국인. 다른 민족이 세운 나라에 산다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살아감을 뜻한다. 이방인은 그 사회의 울타리에 속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그러하고, 외국에 나가 삶을 영유하는 재외동포가 그러하다. 이들은 단순히 이방인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타지에서 만난 동포에게 받은 상처로 힘들어한다. 전작 <인도에 미친 뇬 그녀에 미친 넘들>에서 인도 생활의 세심한 묘사로 독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던 박선례 작가의 신작이 발간되었다. 그녀의 신작 <방콕통신>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관광지인 방콕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고국을 떠나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선 언어와 문화에 부딪혀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더 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여성이라면 얼마나 위험할지 말하지 않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약속의 땅 방콕, 그리고 돈. ‘킴’은 돈의 유용성과 편리성을 잘 알고 있는 여자다. 미국서 가난하여 힘겹게 살던 그녀는 돈 많은 태국 유학생이 펑펑 쓰는 ‘돈’에 정신이 팔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을 감행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태국 생활은 여러 남자를 만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양상을 보인다. 작품 속의 방콕은 한국인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묘사된다. 돈 많은 집안의 남자를 만난 킴도 그렇거니와, 그녀와 관계를 맺는 모든 인물들의 흥망성쇠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사업가 륜, 한의사 용, 옥 등의 남자들은 모두 한국에서의 실패를 방콕에서 만회하는 인물들이다. 킴의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서술자 ‘나’ 역시 방콕에서 킴을 만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모두 함께 방콕에서 인생의 흥망성쇠를 겪는다고 볼 수 있다. 킴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여러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에 있어 필수 조건이 ‘돈’이다. 그녀는 돈을 위해 움직이고 결국 돈에게 돌아가는 인물이다. 돌고 돌아가는 것이 돈이라더니 그녀의 삶이 마치 그렇다. 현실 중심적인 그녀에게 있어 돈만큼 확실하고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들의 육체가 쇠락하고 열정에 찼던 약속마저 부질없어질 때, 그녀의 곁에 남은 것은 오직 돈뿐이었다. 속물, 그러나 한없이 현실적인 그녀. 자식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킴을 보면 속물 중의 속물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밉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측은하고 불쌍하게 여겨짐은 누구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고결하거나 순수하지 않다. 현실의 인간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공감되고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