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
손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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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마이너스

<디마이너스> 얼마 전 영화 <소수의견>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 있다. 배급사인 CJ에서 1년여간 지속적으로 개봉을 지연하다가 결국 ‘영화를 폐기하기로 했다’는 것. 원작소설 저자 손아람 작가의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소수의견>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사실무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유사 소재 영화가 나올 때마다 회자되는 등 개봉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한데 모으고 있다. ‘21세기 낙원구 행복동’ 용산 참사를 연상시키는, 첨예하고 벼린 칼날 같은 소설 『소수의견』의 작가 손아람 세 번째 장편소설 『디 마이너스』가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디 마이너스』는 말 그대로 낙제에서 간신히 복권된 학점 ‘D-’를 말한다. 『소수의견』이 대한민국를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확대한 사진이라면, 『디 마이너스』는 결코 끝나지 않는 대한민국의 과도기를 “가깝되 바깥인 곳에서” 멀고, 넓게, 바라본다. 『디 마이너스』는 용산 참사를 포함,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근현대사 10년을 그린다. 서울대 미학과 주인공 태의. 입학 후 만난 사람들 대석 형, 미쥬, 진우. “알기 전에는 믿지 않는 것, 의심, 호기심, 반항심”을 갖춘 인물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서사를 지나는 학생과 교수, 노동자, 경찰까지. 그들이 품은 태생적이자 후천적 성질은 모두 다르다. 그 성질은 출신 지역이기도 하고, 부모의 직업이기도 하며, 본인들이 선택할 삶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당락의 기로에 위태롭게 서 있다. ‘D-를 받느냐, F를 받느냐. 합격이냐, 낙제냐. 모두 갖느냐, 모두 잃느냐’ 선택해야 하는 고질적 병을 앓는다. 그런데 겨우 D-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를 갖는 걸까? 실제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손아람 작가가 그린 하이퍼 리얼리티 『디 마이너스』. 주인공 박태의는 소설 도입에 이런 말을 한다. “이 이야기의 아름다운 면과 지저분한 면을 모두 이해시키려면 반드시 그 괴물 같은 고유명사와 맞닥뜨려야만 한다. 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미학과였다.” 태의가 입학해서 만난 동기들과 선배들은 운동권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문학의 새로운 세대

<문학의 새로운 세대> 지나간 세대 권력으로 선택되는 문학의 새로운 세대를 보며 던지는 뼈 있는 농담 2030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단편 소설 시리즈 '테이크아웃'의 열두 번째 이야기는 손아람과 성립이 전하는 「문학의 새로운 세대」이다. 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문을 고민하고 글로 써내는 작가 손아람이 이번에는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 수상작을 고르는 과정 속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담았다. 짧은 시간과 좁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기성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신세대 작가의 어긋난 틈 사이에서 솟아나는 미묘한 갈등과 욕망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적의 없는 농담을 일러스트레이터 성립이 유연한 선과 날카로운 도형의 모서리에 세워 아슬아슬한 시치미를 더욱 증폭시켰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개정판 |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내가 가진 건 재능일까, 열정일까 성공에 필요한 건 실력일까, 행운일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성공을 향한 야심을 품고 빈 주머니로 버티던 스무 살. 솔직한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겠다는 포부 하나로 손 전도사, 오 박사, sid가 힙합 그룹 진말페로 뭉쳤다! 기적처럼 만나게 된 조PD와 DJ Uzi 그리고 소울트레인 형제들. 그들과 함께 무대를 휩쓸던 어느 날,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기회. 청춘들의 꿈 앞에 야욕을 드러내는 음반 제작사들의 횡포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들은 무사히 데뷔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별자리에만 전설이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광활한 빈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지점마다 희미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젊음이 바로 그 어두운 구석에 박제된 이야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_본문 중에서 한국 힙합 태동기,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의 전설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자전적 이야기 손아람 작가의 2008년 첫 장편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자 실제 사건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Fact + Fiction)이다. 손아람은 작가이기 전에 속사포 랩을 구사하는 래퍼였다. 그는 ‘손 전도사’라는 예명으로 친구 오혁근(오 박사), 이하윤(sid)과 함께 1998년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이하 진말페)라는 힙합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진말페는 특유의 랩으로 많은 호응을 얻으며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 주목받았다. 지금까지도 유효한 삶을 관통하는 사유나 어린 날의 방황을 씁쓸할 만큼 진솔하게 가사에 담아냈다. 그들은 국내 힙합 1세대인 조PD, DJ Wreckx, DJ Uzi, Ra. D, 태완, UMC, MC 메타 등과 대중음악의 격동기를 함께했다. 이들과의 에피소드 일부를 실명과 함께 소설에 녹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이 책은 진말페를 결성하고 활동을 접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구성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의 힙합 문화가 생생히 재연된다. 이제 막 상륙한 음악 장르에 푹 빠져버린 이들의 문화는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하고 서투르지만 열의만큼은 순전하다.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없는 좁은 지하 공연장. “음악이라기보다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힙합이라는 공통 관심사 하나로 뭉친 가수와 관객들은 공연 내내 위계 없이 함께 포효한다. 작가는 “유년기의 낙서”와 같은 20년 전의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인생을 정박하길 바라는 사회 세상이 기대하는 바를 거스르고 청춘, 자유롭게 부유(浮遊)하다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듣다 왼쪽 청력을 잃은 아람. 그는 랩 음악에 깊이 빠져든다. 오직 랩을 듣는 것이 고교 인생의 전부다. 그는 랩 음악에 함께 미쳐 있던 같은 반 친구 오혁근과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성지인 신촌의 클럽 ‘크립’의 오디션에 나간다. 열정과 패기가 그들이 가진 전부이자 천부적인 재능인 탓에 책상을 두드려가며 녹음한 그들의 믹스 테잎 그리고 첫 오디션은 프로의 세계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만다. 하지만 우연히 그곳에서 아람의 초등학교 동창 이하윤을 만나게 되고, 작곡가로서 다분한 재능을 지닌 그가 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고백할 때는 누구나 최선을 다해. 그 사람에 대한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다 자기과시였다는 생각이 들 거야. 오직 진실과 진심만을 담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세상의 모든 창작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어. (중략) 우리는 그렇게 단출하고 솔직한 음악을 해야 해. 두 눈을 응시하며 ‘사랑해’ 한 마디를 건네는 최선의 방법을 두고, 매해 5월 장미 백 송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 같은 바보스러운 음악은 하지 말자.”_[왼쪽 세계] 중에서 진말페가 하고자 했던 음악의 성격은 그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다. 때론 서태지가 이룬 사회적 성공, 팬들의 환호성, 동경의 눈길, 숨 쉬듯 팔려나가는 음반 등 스무 살이 그려볼 수 있는 온갖 부귀와 영화를 꿈꾸기도 하지만 이런 소소한 환상들은 음악을 하려는 근거가 되진 못한다. 그들은 허울이나 과시 없이 음악을 사랑한다. 아람이 자신 있게 “힙합만큼은 순수하게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제자리걸음에 불과할 것 같았던 그들의 음악 활동은 기적처럼 먼저 연락해 온 디제이 우지, 조PD, 소울트레인 브라더후드를 만나면서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기대와 좌절의 롤러코스터 끝에 진말페는 힙합 공연에서 전례가 없던 실험적인 공연으로 사람들의 광기 어린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리 관대하지 않다. 기회라고 여긴 손길의 이면에 붙은 속셈들을 알아차릴 때마다 그들은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 성공을 위해 타인의 열정을 발판 삼으려는 이들이 판치는 음반업계에서 그들은 무사히 음반을 내고 데뷔해 대중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별이 아닌 암흑에 있을지라도 미련하게 걷고 또 걸어가던 나를 만나다 “나는 깍지 낀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별이 떠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공간을 암흑이 뒤덮고 있었다. 확신컨대 내 영혼은 별이 아니라 암흑 속에 있을 거다.”_[왼쪽 세계] 중에서 아람은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사에게 들었던 말을 자주 되뇐다. “하늘에 자기 별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처럼 별 사이 암흑을 채우는 놈들도 있지.” 암흑을 채우는 놈들. 별처럼 발광하며 주목을 끌지 못하는 암흑. 별들의 주변을 배경색처럼 채우는 인생. 힙합을 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미래는 이와 같은 모양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람과 혁근, 하윤은 음악과 함께 성장하면서 암흑을 자연스레 포용한다. 찬란하게 빛나다가도 이내 스러질 별이 되기보다 한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희미한 이야기”가 되기로 한다. 그들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쉽게 득의만만했지만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음악 활동을 접기로 합의했을 때 진말페라는 그룹의 역사는 암흑에 박제될지언정 그들의 이야기는 박제되지 않았고, 그다음 행보에 원동력이 된다. 스무 살, 젊음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았던 무언가. 재지 않고 품었던 꿈 혹은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 그때의 울림을 지금까지도 간직하며 사는 우리에겐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 이 이야기 끝에 독자는 지금의 나를 있게끔 만든 열정과 재능 사이를 저울질하며 방황하던, 그래서 과감하고 용감했던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소수의견

<소수의견> 윤계상 유해진 김옥빈 주연, 영화 [소수의견] 2015년 6월 개봉!! “열여섯 살 내 아들을 이 나라 경찰이 죽였소.” “국가배상을 청구합시다, 배상액 100원!”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변호인단, 부패한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검찰,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숨 막히는 진실공방! 국가 부재의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책 『소수의견』을 웰메이드 법정 드라마로 만난다! “개인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종(種)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쓴다”고 밝힌 작가 손아람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소수의견]이 개봉된다. 2013년 제작 완료 후 2년여 만에, 그리고 영화 배급사가 CJ엔터테인먼트에서 시네마서비스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오는 6월 25일 드디어 관객과 만나게 된 것이다. 윤계상, 유해진, 김옥빈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소수의견]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두 젊은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파헤치는 ‘웰메이드’ 법정 드라마다.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변호인단의 패기는 비록 현실과 동떨어진 텍스트 속의 이야기라 해도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다. 우연과 필연의 경계선을 허물어뜨린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는 또 어떠한가? 아수라장 같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열여섯 살 철거민 소년과 스무 살 의경이 죽는다. 사망한 소년의 아버지 박재호(이경영 분)가 의경 살해 혐의를 받아 체포된다. 경찰은 철거용역 깡패들이 소년을 죽였다고 발표한다. 여기까지가 눈에 ‘보이는’ 사실(fact)이다. 그런데 아버지 박재호의 의견은 다르다. 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고 있는 탓이다. 박재호는 첫 번째 접견에서 변호인 윤진원(윤계상 분)에게 “내 아들 죽인 놈들, 그 깡패 새끼가 아니라 경찰이요”라며 권력을 ‘고발’한다. 죽음이 조작되었다는 뜻이다. 이에 윤진원은 검찰의 진의를 의심하는 자신을 되려 ‘의아해하는’ 선배 변호사 장대석(유해진 분), 상식 밖으로 깨끗한 살해 현장에 의문을 품은 기자 이준형(김옥빈 분)과 함께 진실 밝히기 게임에 돌입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은 소년의 아버지가 밝히고 싶어 하는 진실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배상액으로 ‘100원’을 청구한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영화에 나오는 변호사 윤진원의 대사―“이 재판에서 저희는 검찰이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지 그것을 밝히겠습니다”―는 1차적 기능을 상실한 국가와 그에 빌붙어 명맥을 유지하는 부패한 권력, 그리고 침묵하는 다수에게 던지는 정면 도전장이다. 작가 손아람이 『소수의견』 서두에 ‘이야기는 드레퓌스 사건의 애널로지이다’고 기록한 이유와 맥이 닿는 대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수의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묵살되고 버려지는 ‘소수의견’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모종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 ‘사건’의 이전과 이후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되묻는 사람들 모두에게 『소수의견』의 일독을 권한다. ‘적법(適法)’과 ‘진실(眞實)’ 사이의 간극을 재다 주인공 ‘나’는 서른일곱의 나이에 사법연수원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법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국선변호사로 첫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민변을 유령처럼 떠돌았던 사건”(54쪽)을 맡게 된다. 구치소에서 박재호를 면회하고 본격적으로 변호를 준비하면서 ‘나’는 ‘언어의 미로’ 속을 방황하게 된다. 소설은 국가를 대변하는 검사 측과 박재호를 변호하는 변호팀의 논쟁이 주축을 이룬다. 부패 권력을 상징하는 검사, 조속한 해결을 종용하는 권력자들, 개발 이권에 눈이 먼 지역주민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적법한’ 승리이다. 작가 손아람은 텍스트와 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충돌 지점을 매우 지적으로, 그리고 매우 심도 있게 고찰한다. 국가인가 개인인가, 사실인가 진실인가, 법인가 정의인가, 외면인가 각성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는 우선 법체계 자체를 심판대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이 질문들이 결국 독자 개개인을 향하고 있다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내 변론의 요지는 간단했다. 맞다. 피고 조구환은 살인을 교사했다. 피고 조구환은 사체를 은닉했다. 1992년에. 사건 당시의 개정 이전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이 죄목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으므로 이 공소는 이유 없다. 그러자 법의 규정에 따라 입증책임은 검사에게로 넘어갔다._11쪽 매스컴을 타고 철거민 박재호의 법적 공방이 유명해지자 이를 자신의 정치적인 이력으로 이용하려는 거대 법무회사의 대표가 나타나 ‘나’의 지위를 가로챈다. ‘나’는 국선변호사로 다른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은평구 뉴타운의 재개발과 관련이 있다. 기초공사 현장에서 시체가 나오자 ‘나’는 살인을 교사한 범죄조직의 두목을 ‘공소시효 만기’를 이용하여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다. 진실은 법정에서 한낱 말장난으로 엄폐되고 만다. ‘소수의견’이 존중받는 사회는 가능할까? 다시 맡게 된 박재호의 변호에서도 법의 허상은 여실히 드러난다. 법원에서 진실은 이미 엎질러진 사건을 얼마만큼 포장하고 말로 의미를 집어내느냐로 판명될 뿐이다. “나는 법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은 법이 쌓아놓은 성에서 물샐 틈을 찾는 법을 배우고 졸업하지”(25쪽)라는 사법연수원 교수의 자조적인 푸념은 법체계와 법조인들의 위선을 질책한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국가와 개인의 대립 또한 예외가 아니다. 검찰 측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유리한 증거와 설정을 토대로 변호인을 압박하거나 국가의 실체를 눙치듯 흐리며 교묘한 언변으로 진실의 본질을 비껴나려고 할 뿐이다. “국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국가의 손을 잡아본 적 있습니까? 아니면 국가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두 변호사님은 국가란 적과 싸우시나 봅니다. 하지만 그건 실체가 없는 적이요. 적의 이미지만 있고 실체는 없을 때 증오는 발산되기 마련이지. 한때 사람들은 그렇게 마녀를 잡지 않았소?”_155쪽 그러나 진실을 밝혀내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법을 통한 판결밖에 없다. 권력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틀 속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지만. 그러나 ‘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소수의견이 점차 상식적인 법의 판례를 이끌어왔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법정 투쟁에 임한다. 작가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를 사용하여 인간성과 진정성이 사라진 세상과 ‘공평과 정의’라는 단어로 포장된 법체계의 허상을 고발한다. 무색무취한 법정에 달린 유리창을 통해 한 줄기 빛이 새어들듯 한 줄기 희망을 감지해내는 일,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 찾기를 여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은 채. ‘소수의견’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평범하고 선한 우리의 ‘의지’이자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