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은
김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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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켤레의 여자

<열두 켤레의 여자> “때로 힐은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된다.” 생의 결정적 순간에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여성들 사랑에 관한 네 개의 에피소드와 그녀들의 구두 레시피 200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꾸준히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작가 김이은의 신작 소설 『열두 켤레의 여자』가 나무옆의자 로맨스소설 시리즈 ‘로망컬렉션’의 열네 번째 작품으로 출간됐다. 세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내는 동안 현실과 환상,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탐구해온 작가가 처음으로 쓴 사랑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하이힐 전문 매장 ‘쏠라즈’를 주요 무대로 네 여성의 각기 다른 사랑과 욕망을 그린다. 쏠라즈는 한 번에 예약 손님 한 명만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구두들이 가득한 이 비현실적인 공간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한다. 누구는 사랑을 위해 누구는 이별을 위해 구두를 고르고, 누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누기 위해 가게를 찾는다. 스스로 구두 소믈리에라 말하는 주인 윤찬경은 손님의 심리와 상황을 세심하게 읽고 꼭 맞는 구두를 추천하는 일에 빈틈이 없다. 일종의 구두 레시피랄까. 실용성 없고 편하지 않고 활동적이지 않고 오래 신으면 반드시 발이 아프게 마련이지만 아름다운, 오직 아름다운 구두! 여기서 ‘구두’는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앞두고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여성들의 의지이자 그들에게 보내는 공감과 응원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기능적이거나 실리적인 가치는 없지만 에로틱한 자극을 주는가 하면 온몸에 긴장감과 자신감을 불어넣는 도구, 경계를 만드는 동시에 경계를 무너뜨리는 도구인 구두를 통해 그들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11:59PM 밤의 시간

<11:59PM 밤의 시간> 이 소설은 인간 내면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악해질 수 있는지,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점점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매우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런 무너짐과 악해짐의 원인이 그 사람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주변 사람과 이 시대 이 사회의 주류 가치관의 왜곡과 무너짐에 더 크게 있음을, 또 그렇기에 그것을 멈출 수 있는 힘 역시 그 주변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인학교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KPIPA)의 〈2023년 전자책 제작 지원 사업〉선정작입니다. 문 너머, 세상의 바깥 공기가 검게 물들어가는 시간, 한서정은 캄캄해진 길을 걷는다. 최고급 리조트 솔라즈를 외부와 구분 짓는 측백나무 숲 한구석으로 향한다. 좁디좁은 수풀 사이를 파고들어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문 앞에 선다. 머뭇거리던 한서정은 이윽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깊은 지하로 내려가자 눈앞에 육성급 호텔처럼 화려한 공간이 펼쳐진다. 그곳은 하인학교. ‘세상의 바깥’이라 불리는 곳. 하인처럼 살아온 이들을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곳. 돌아갈 곳이 없는 한서정은 하인학교에 입학한다. 거짓된 삶, 새로운 세상 한서정의 삶은 다난했다. 부유했던 집안은 한순간에 망했고, 허름한 동네를 전전하다 유일한 가족인 아빠를 잃었다. 이후 수년간 과거를 숨기고 명문대생으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지만 그 거짓된 삶마저도 모조리 무너졌다. 사기와 횡령 그리고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것. 두려움에 휩싸인 한서정을 이끈 건 어릴 적 친구 이진욱이었다. 그는 말했다. 끝이 아닌 곳,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곳으로 가라고. 그렇게 한서정은 하인학교를 찾아갔다. 하인으로 들어가 주인이 된다. 오직 일 등만 살아남는다. 지하에서 고공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하인학교의 수업은 특별하다. 학생들은 재벌인 타깃의 심리부터 비밀까지 전방위로 분석하고 타깃이 운영하는 기업의 모든 정보를 섭렵한다. 잠도, 밥도, 웃음도 사치에 불과하다. 차마 교육이라 부를 수 없는 가학적인 방식까지 동원되고 뒤처진 학생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그런 잔혹한 과정을 견뎌낸 단 한 명의 학생만이 졸업해 재벌이 될 기회를 얻는다. 한서정은 나날이 자신의 내면을 부숴가며 견딘다. 그사이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았던 강유진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진욱이 교장 정이화의 심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욕망의 끝, 거대한 힘의 실체 교장실에 숨어든 한서정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들킨다. 전금희. 하인학교 차기 이사장으로 거론되는, 모든 것을 짓밟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졸업생이다. 한서정은 자신을 보며 제 과거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전금희에게 어딘가 꺼림칙한 감정을 느낀다. 한서정에게 호기심이 생긴 전금희는 교장실 한쪽에 숨겨진 벽 속 방의 문을 열어 한서정을 들여보낸다. 그곳에서 한서정은 하인학교의 비밀을 마주한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이들을 정말 재벌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하인학교에 숨겨진 힘의 실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