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남 비서를 조심하세요.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위험한 남자니까요. 외모와 능력을 모두 겸비한 할아버지의 새 똘마니가 심상치 않다.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못 하는 게 없던 나의 새로운 비서이자 경호원은 할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오던 완벽한 심복이었다. 어떻게든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해봐도, 결과는 늘 그의 손바닥 안이라는 현실. “두고 봐. 내가 반드시 당신 해고시킬 테니까.” 무시무시한 경고에도 웃는 낯으로 파이팅을 외쳐주는 너란 남자. 그런데 이게 웬일? 언제부터인가 그의 완벽한 서포트에 물개박수를 치고 있는 내가 낯설다.
새벽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기 있는 눈빛의 한 여자. ‘고니.’ 그녀는 승무원이 꿈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자기 직업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자. ‘유.’ 돌잡이 때 누나의 장난감 립스틱을 집어든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천직이라고 말했다. 하얀 피부에 꼬불꼬불한 잔머리, 조그맣게 달린 귀여운 코. 순백의 도화지와도 같은 그녀의 얼굴 위로 유의 손이 스칠 때마다 일어나는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내 실력이 네 자신감과 비례한다면, 넌 내일 무조건 합격이야.” “힘낼게요. 나는 오빠의 자부심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꿈을 키웠고, 봄날의 꽃잎처럼 날아든 사랑은 가랑비처럼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저한테는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당연히 도망칠 곳도 없고요.” “잘됐네요.” 후영이 부드럽게 웃었다. 벼랑 끝에 선 당신의 절박함을 환영한다고.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엔 남편인 나도 포함이고.” 네가 견뎌온 지옥과는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질 테니, 마음 단단히 먹고 알아서 살아남으라. 본가에서 지내는 동안 절대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나서도 안 되고, 당신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라. 대가는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였다. “자신 있습니까?” “네. 저 참는 거 잘해요.” 리하의 대답에 후영이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그럼 한 달 뒤에 봅시다.” 그렇게 그는 출장길에 올랐다. 결혼하자마자 혼자가 된 리하는 정글 같은 도강의 본가에서 치열한 생존을 위해 버텼다. 밑에서 끌어내리고, 위에서 짓밟아도 약속된 자유를 위해, 그리고 제게 구원과 같았던 남자에게 보답하기 위해 독종처럼 버티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후영이 돌아왔을 때, 그의 계약직 아내는 누구보다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어 남편을 맞이했다. 우주를 떠도는 이름 모를 행성에서 반짝이는 별이 된 기분이었다. 안정적 궤도에 진입한 나의 삶은 네가 있어 빛날 수 있었다. 강리하의 남편으로 산다는 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나의 모든 걸 견뎌줄 아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의 끝에 남은 건, 너만이 내가 가진 전부라는 깨달음이었다. 혹독하고도 치열하게 살아온 두 독종의 계약 결혼부터 진짜 열애까지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