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피에르 로셰
앙리 피에르 로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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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국 여인과 대륙

<두 영국 여인과 대륙> 앙리 피에르 로셰가 <줄과 짐>에 이어 집필하고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자 완성된 형태로는 마지막 소설로, 그가 죽기 3년 전인 1956년에 발표됐다. 로셰는 1900년~1920년에 작성한 수첩과 일기, 편지를 토대로 1954년~1956년에 이 소설을 집필했고, 소설도 온전히 일기와 편지로만 구성되었다.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일 소설의 태생적 한계를 구하는 것은 간결함과 속도감이다. 접속사와 형용사를 최대한 배제한 채 달리듯 이어지는 간략하고 단선적인 문장들로 로셰는 섣부른 설명을 피하며 등장인물들의 내밀하고 치열한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두 영국 여인과 대륙>은 출간 시기와는 반대로 연대상 <줄과 짐>에 앞서 있다. 실제로 전작에서 삼각관계에 있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미 원숙한 사랑과 우정과 욕망을 그렸다면, 이 소설은 막 사랑을 시작하는 두 여자와 한 남자를 통해 미지의 감정인 격정과 이 격정을 애써 잠재우려는 의식적인 억압의 되풀이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처음이고 청춘이기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시작도 되기 전에 지레 끝을 냄으로써 함께 삶을 관통하지 못한 사랑의 회한을 특유의 아름다운 시적 문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로셰의 작품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깊이 이해했던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에 의해 1971년 영화화됐다.

줄과 짐

<줄과 짐> 사랑은 사람들이 자진해서 받아들이는 형벌이야 서로를 공유하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치명적인 사랑 “이대로 그녀를 잃을까 봐, 그녀가 내 인생에서 완전히 떠나버릴까 봐 두려워. 짐, 그녀를 사랑하게. 그녀와 결혼해. 내가 그녀를 계속 볼 수 있도록 해주게.” 두 친구의 우정, 그리고 한 여자를 둘러싼 세 남녀의 삼각 사랑 1907년 파리, 독일인 줄과 프랑스인 짐이 만난다. 이들은 단숨에 서로의 매력에 끌리고, 곧 이들 사이에 우정이 피어난다. 그들은 매일같이 만나 서로에게 모국의 언어와 문학을 가르쳤고, 서로가 최고의 대화 상대임을 느낀다. 한창때인 그들에게 여자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줄은 짐에게 고국의 여자들을 소개시킨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매력과 장점이 있지만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가기엔 무언가가 부족하다. 하지만 줄이 결혼상대로 점찍어 놓은 루시라는 여자는 달랐다. 짐은 줄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줄과 그녀 모두에게 이를 고백하기에 이른다. 한편 루시에게 여러 번의 청혼을 모두 거절당한 줄은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친구인 짐에게 루시를 사랑해달라고, 부디 그녀와 결혼해달라고 애원한다. 루시는 줄과 짐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여자지만, 안정보다는 도약과 위험을 즐기는 이들 둘에게 이따금 수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루시는 마냥 안주할 수만은 없는 딜레마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 앞에 카트린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미소를 지닌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루시와는 일면 반대되는, 다소 거칠고 도발적인 매력으로 줄과 짐을 한꺼번에 사로잡는다. 남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한다든가, 한 사람에게는 일종의 본보기를 보여주려,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이 유혹하려 길을 걷는 도중 갑자기 센 강에 뛰어드는 등 한시도 이들을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카트린은 먼저 줄과 사랑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사랑을 추구하는 그녀는 곧 그가 아닌 다른 남자들과 유희를 즐긴다. 줄과의 생활에 염증을 느껴 떠나버리려던 찰나, 이번에는 짐과 사랑을 시작하고 줄은 기꺼이 이들의 관계를 축복한다. 하지만 짐과 카트린은 이들을 도우려는 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고통이 어지럽게 뒤엉킨 세월을 보내다 돌이킬 수 없는 결말에 이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