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드라이브를 하던 중 고속도로로 접어들 때가 있었다.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푸르렀고 주변은 온통 울창한 산들이었다. 엄마는 멍하니 도로를 보다가 문득 이런 말을 내뱉었다. "어쩌면 말이다, 이 땅의 주인은 우리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저 산일지도 모르겠다. 저 흙, 이 바람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태어났겠니. 하지만 산은 그대로잖아. 사람 산다는 게 참 보잘 것 없어." 바로 그 한마디에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만약 사람의 죽음이 겨우내 저물었던 꽃과 같이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면, 만약 스치듯 마주친 한 사람이 풀뿌리처럼 얽히고설킨 기억의 흔적이라면... 발 딛고 서있는 이 땅, 이 공기. 그 속에 스며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눈물, 숨겨진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면 당신의 곁에 서 있는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웃음을 나누는 일상의 작은 행동 조차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