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경기자> 이치은의 세 번째 소설 『비밀 경기자』가 <이치은 컬렉션>으로 재출간되었다. 단편들의 모음이자 연작소설로써, 환상, 추리, SF적 상상력을 통한 문학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밀 경기자』는 인류가 꾸는 “꿈”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인류는 모두 똑같은 꿈을 꾼다’라는 도발적 명제와, ‘남의 꿈에 몰래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전복된 사유와, ‘꿈의 도서관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SF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비밀 경기자』에서 작가는 ‘나의 꿈’이란 인류가 꾸는 꿈의 하나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꾼다.”라는 도발적인 명제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꿈을 꾸면 그 꿈이 자신만이 꾸는 유일한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개인이 꾸는 꿈이 인류의 꿈 목록표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밀란 쿤데라가 말했듯, “인간은 스스로가 고유한 존재라고 착각하지만, 기껏해야 몇 안 되는 몸짓이나 이미지를 학습하고 모방하는 비개별적이고 획일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치은 작가처럼, 인류는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이 가능한 상상 아닐까.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치은의 두 번째 소설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가 산뜻한 장정과 새 판형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 롤플레잉게임, 온갖 공문서 양식으로 채워진 보고서 등 다양한 기법으로 소설의 장을 꾸며, 기존 소설 형식을 대담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소설 형식을 선보인다. 한 챕터가 끝나 다음 챕터로 넘어가면, 시점과 화자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치은 소설 작품들은 대체로 문학적 알레고리가 '센' 것으로 이름나지만, 이 작품만은 유독 소재-모티프 그 자체에 착목한 소설이다. 다시 말해, '유 대리가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왜 사라졌는가?'를 다양한 글쓰기 형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 정체성에 대한 물음, 견고한 커넥션-국가에 대한 한 개인의 대책 없는 저항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치은 작가는, 데뷔 후 5년 만에 침묵을 깨고, 두 번째 소설을 하드보일드 추리소설과 1인칭 총격 게임과 르포르타주 등으로 다양하게 직조된 장르소설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는 사뭇 놀라운 문학적 변신이라 할 수 있다.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오늘의 작가상>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였던 이치은 작가의 첫 소설집.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이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시작하는 이 소설집은, 시간과 기억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10편이 실려 있다. 기억이라는 소재를 다룬 전작 『키브라, 기억의 원점』에서 풀어놓은 생각들은 표제작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에서 조금 더 직설적으로 재조립되고 있다. 또 시간을 소재로 쓴 「마술 사진기」나 장소-상황에 대한 상상력으로 쓴 「바리케이드」, 기다림, 죄책감, 수집 등을 다룬 작품들이 한데 묶여 있어,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과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마루가 꺼진 은신처> 이치은 소설. 어어부 프로젝트의 노래 '마루가 꺼진 은신처'에서 영감이 시작된 소설로, 매력적인 악몽의 세계를 다룬다. 마치 M.C 에셔의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회화를 닮았다. 혹은 가장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추구했던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표가 그린 배경음과, 가사 속의 메타포를 패스티시(혼성모방)한 소설이다. 문학적 실험과 고안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이치은 작가는, 이 소설에서도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구성을 선보인다. 우선 문학의 하위 장르인 미스터리, 판타지를 혼융한 소설이다. 꿈/실제, 진짜/가짜, 참/거짓, 실제/허구가 뒤섞인 리얼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톱니바퀴들이 모두 맞물려 잘 진행되던 계획이, 알 수 없는 힘/조직에 의해서 하나하나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면, 한마디로 미스터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또, '라쇼몽' 같은 변주와 다성음악적 구성이 있는 소설이다. 하나의 행위/사건이 4번의 시도에 의해 각각 다르게 서술된다. 또 시간과 시점과 사건이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재배치된다 킬러 '나'는 의뢰받은 살인을 수행하고자 할 때 의뢰인으로부터 조건을 제시받는다. 지금까지 단독으로 살인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그 살인 행위를 돕는 조력자(톱니바퀴)들과 같이해야 한다는 것. 킬러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 의뢰를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 역시 치밀한 살해 계획의 한 톱니바퀴가 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전체 살해 계획의 조각난 부품이었던 수많은 조역들이, 한 명 한 명 제거돼 나간다.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이치은 작가의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자 첫 번째 장편소설인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가 복간.재출간되었다. 1998년 이 소설로 등단한 이치은 작가는 수상 당시 "고안력이 뛰어난 작품", "상투적 교훈을 배격하는 문장의 탐구력"(김우창/문학평론가), "소설 문체의 매력"(조성기/소설가) 등 치밀한 구성과 독특한 문체가 높이 평가받으며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신예로 기대를 모았었다. 그 후 20년 동안 장편소설 5편과 소설집 1편을 상재하였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는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 나오는 소파를 비롯, '구토'(사르트르)의 로캉탱, '경마장의 오리나무'(하일지)에 나오는 오리나무, '날개'(이상)에 나오는 연심의 남편(즉 '나') 등 소설 속에 나오는 권태로운 인물들과, 그들을 죽이려 하는 성(城)과 기사(騎士)가 나온다. 기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잘 짜여지고 치밀하게 관리되는 삶을 갉아먹는 존재들인 권태로운 인물들을 제거하려고 성(城)이 보낸 암살자이다. 권태로운 인물들이 한둘 살해당하기 시작하자 위협을 느낀 인물들이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