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조 왕건 1권> 불통의 시대에 통합의 리더십을 읽다 역사소설의 거장 김성한이 흠모한 군주 왕건 일대기. 김성한의 《왕건》은 한고조 유방을 능가하는 덕(德)의 인물 고려태조 왕건을 복원해 낸 최고의 작품이다. 당대의 경세가 선종과 걸출한 용장 견훤을 넘어 덕장 왕건이 한반도를 통일한 창업군주가 되기까지 세 영웅이 펼치는 서사극 왕건이라는 위대한 덕인의 복원 때는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춘추전국시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건국 초기의 격동기, 80여 명 장수들이 전국에 할거하여 저마다 천하를 노리고 싸우던 난세였다. 무려 만 47년에 이르는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를 가져온 인물이 이 작품의 주인공 왕건이다. 김성한의 세 번째 장편 역사소설인 이 작품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 왕건의 일생을 중심으로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 운명이 엇갈렸던 또 다른 영웅들 선종(궁예)과 견훤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세 인물의 삶과 부딪침을 통해 작가는 왜 천하를 통일한 인물이 선종이나 견훤이 아닌 왕건이었는지 그 해답을 찾아간다. 당시 천하대세는 선종이냐 견훤이냐의 양자대결로 압축되고 있었다. 그런데 선종의 일개 부하였던 왕건이 그 주군을 넘고 견훤을 뛰어넘어 마지막 승자가 된다. 작가에 따르면 왕건은 천재성에 있어 선종에 미치지 못했고 야전사령관으로서는 견훤에 비교할 바가 못 되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선종과 견훤에게 부족한 덕(德)이 있었다. 왕건은 천하 사람들의 마음의 벽을 헐고 서로 통하게 하는 천하 통일의 사리를 몸소 실천한 덕인(德人)이었다. 평화를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머리를 숙였던 까닭에 평생의 적수였던 견훤마저 마지막엔 그에게 몸을 의탁하고 통일전쟁에 협력했다. 작가는 이처럼 만인을 포용하는 왕건의 위대한 덕성, 즉 항상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남의 어려운 사정에 동정하며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면모를 작품 전편을 통해 잘 드러내 보여준다. 중국사에서 덕망 높은 창업군주로 손꼽는 한고조나 송태조보다 뛰어난 인물이며, 그러므로 우리 역사에서 훨씬 더 크게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 고려태조 왕건에 대한 작가의 평가다.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 선종과 견훤도 작가의 붓끝에서 새로 태어났다. 작품이 처음 선보였던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선종과 견훤은 폭군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지만 작가는 이들 불운한 영웅에게도 남다른 애정으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선종은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무장세력을 육성한 출중한 지도자로 되살아났다. 그는 불과 수년 만에 한반도 북반을 점령하여 독립왕국을 개창했으며 건국 직후 해군을 건설하여 견훤의 배후 나주를 틀어쥐는 전략가로 그려진다. 선종은 정신이상으로 자신이 건설한 것을 고스란히 왕건에게 빼앗기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만 선종의 기반 없이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바라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견훤도 기병전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당대의 용장이며 건실하게 나라를 경영하는 창업군주로 묘사된다. 왕건이 특유의 유연성으로 능소능대하다면 견훤은 기골이 장대하고 우직한 무장이었다. 특히 왕건과 견훤이 부딪치는 전투 장면들은 무장 견훤의 타고난 감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작가가 매 작품마다 보여주었던 군사 관련 묘사의 탁월성 덕에 흥미가 배가되는 대목들이다. 선종과 견훤의 재평가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러하듯 선악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낳은 산물이며 역사적 인물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 확 트인 시대, 거인들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 김성한 역사소설의 핵심은 철저한 고증에 있다. 역사소설 처녀작인 《이성계》부터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인 작가는 《왕건》 연재시(동아일보) 옛날 여자들은 성(姓)만 남아 있고 이름이 없기에 소설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름을 창작할 수밖에 없다면서 미리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을 정도로 사실(史實)을 골격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라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켰다. 《왕건》 역시 자료 수집에 4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즉위 초기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던 왕건이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무려 스물아홉 명에 이르는 아내를 두게 되었던 사정의 이해라든지, 비록 망해가는 나라이지만 천년사직의 정통성을 지닌 신라를 포섭하여 민심 잡기에 성공한 왕건의 2(고려+신라) 대 1(후백제) 전략 묘사 등은 사실(史實)을 통해 그 시대를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김성한표 역사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작가는 통일신라 말기의 난맥상과 겹쳐 혼란기로만 여겨지기 일쑤인 후삼국 시대를 이렇게 말했다. “모함으로 지새우던 조선왕조의 답답한 분위기와는 달리 신라 말기에 등장한 선종, 왕건, 견훤 세 사람이 엮어낸 후삼국 시대의 확 트인 풍경은 어느 다른 세계의 일같이 속 시원한 느낌을 준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인물, 이런 시대가 있었다. 천 년 전 당당하게 살고 당당하게 대결하여 역사를 창조하던 이들 거인의 생동하는 모습과 그 무대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것이 이 작품이었다.” 또한 작가는 고려는 유불선을 마음대로 믿고 남녀가 같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연애하며 과부도 개가도 자유로운(《고려도경》) 열린 사회였다며 이렇게 열린 사회에서 개인의 재능이 발휘되고 세계적 명품인 고려청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통합의 지도자 왕건 일대기를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생각하는 동시에 고려시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 1> 동북 변방의 청년장교에서 조선 왕조의 창업자로... 난세에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한 문체의 김성한 스타일 《조선 태조 이성계》는 김성한이 쓴 첫 역사소설이다. 김성한은 1950년대 <오분간>, <바비도> 등 기법의 파격성과 지적 분위기로 한국 소설의 현대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은 작품들을 잇달아 선보였던 작가다. 그런 그가 10여 년의 공백 끝에 역사소설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처음 내놓은 작품이 《이성계》다. 역사소설에서도 김성한은 처녀작인 《이성계》부터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간결한 문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였다. 픽션에 기댄 다른 역사소설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그는 생전에 “역사가 나무의 줄기와 큰 가지라면 역사소설은 잎사귀이자 생명을 불어넣는 바람”이라고 역사소설을 대하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었다. 광범위하게 수집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라는 큰 줄기에 색채를 더하고 살을 붙이며 학문적 안목으로 재해석하는 김성한 역사소설의 특징은 《왕건》, 《7년전쟁》, 《요하》 등으로 이어지는 이후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이성계와 주변의 명멸하는 인물들을 통해 바라본 조선 창업의 과정 《조선 태조 이성계》는 제목 그대로 조선의 창업자 이성계가 주인공이다. 고려 공민왕 10년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는 무장 시절에서 시작되어 위화도 회군을 거쳐 역성혁명까지 소설의 초점은 태조에게 맞춰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한 걸음 물러난 태도를 취한다. 주인공 못지않은 비중으로 그의 주변, 그리고 명멸하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 특히 첫머리에 등장하는 반란군 박의의 이야기는 역적과 그 역적을 진압하는 새 영웅의 출현이라는 도식을 벗어나 혼란과 변동의 시기에 교차하는 인간 운명의 부조리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김성한 역사소설의 허무주의적 경향이 자주 지적되었던 연유다. 하지만 그렇기에 김성한 역사소설은 수십 년이 지나도 낡지 않은 ‘모더니티’를 가진다. 영웅담 혹은 민중 중심의 역사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섣부른 역사적 판단를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태도가 김성한 역사소설에 대한 저평가를 초래했지만, 거꾸로 지금 그것이 김성한 역사소설의 가치를 다시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난세를 이끄는 영웅, 난세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본능 그의 역사소설에서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군사 관련 묘사의 탁월성은 이미 《이성계》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첫머리가 전투장면 묘사다. 그럼에도 작가는 활을 기막히게 쏘는 이 청년장교를 극적인 영웅담의 주인공으로 쉽사리 포장하지 않는다. 변방의 무장 이성계가 어떻게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운명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지, 그 시대를 살아간 다양한 인간군상을 들여다봄으로써 지난 역사를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직조해 낸다. 마치 코르시카 출신의 나폴레옹이 프랑스 본토로 올라가서 천하를 뒤흔들고 왕위에 오른 것처럼 외인부대 대장과도 같았던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뒤엎고 역성혁명을 일으키리라고 그 누가 상상했을까. 작가가 생전에 말했듯 “우리는 역사소설을 통해 당대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를 함께 돌아볼 수 있을” 터, 우리는 <이성계>를 통해 혼란과 변동의 시기에 자신의 본분을 읽고 시대를 끌고 나가는 지도자의 모습과 더불어 인간 군상의 생존 본능이 빚어내는 비극의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7년 전쟁 1> 철저한 고증, 입체적 인간상, 간결한 문체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김성한 역사소설의 백미 “〈7년전쟁〉은 단순한 소설 아닌 장대한 스케일의 전쟁사이자 사회사”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그린 최초의 역사소설 김성한의《7년전쟁》은 특별하다. 임진왜란을 다룬 수많은 소설 가운데 국제전 즉, 조선과 일본, 명이 뒤엉켜 치렀던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전쟁 발발부터 명의 참전과 휴전, 화평협상, 재침과 종전에 이르는 7년의 기나긴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세 나라의 상황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감한 소설은《7년전쟁》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같은 특별함 때문에 김성한의《7년전쟁》은 그 가치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작품이 발표되었던 1980년대는 ‘임진년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에 국제전의 성격을 부여하고, 일본과 명나라 내부 사정에까지 차분한 시선을 주는 접근법이 일반에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일렀다. 1984년 연초부터 매주 토요일 〈동아일보〉의 한 면을 가득 채우며 연재되던 이 작품은 1년 만에《7년전쟁》에서《임진왜란》으로 제목을 바꾸는 곡절을 겪었다. 〈7년전쟁〉에서 〈임진왜란〉, 그리고 다시 〈7년전쟁〉으로 작품이 처음 연재되던 때로부터 거의 30년이 흐른 2012년 임진년. 임진왜란 발발 7주갑(420년)을 맞는 올해 처음 선보인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임진왜란의 명칭을 ‘임진전쟁’으로 표기했다(국사교과서는 ‘임진왜란’ 표기). 이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임진란의 국제전적 성격을 조명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 동아시아 삼국이 부딪쳤던 대규모 전쟁, 이후 삼국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국제전의 참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데 학계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료가 새롭게 발굴되고 나라의 위상이 달라지면 지나간 역사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임진왜란’이 ‘임진전쟁’으로 바뀌는 세월 동안 역사학계에서는 새로운 사료들이 발굴되고, 간추린 왕조실록이 일반 독자들을 위한 교양서로 읽히는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30년 전에 관련 삼국의 자료를 두루 살펴보고 “가능하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을 생각해 보고자 했던” 대가의 작품은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묻혀 있었다. 〈7년전쟁〉으로 시작하여 도중에 〈임진왜란〉이 되었던 이 작품에 본래의 이름 〈7년전쟁〉을 되돌려 주고 복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쟁, 선조, 김성일, 왜적, 이순신, 거북선 등등 몇몇 단어에서 맴도는 게 임진왜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그 좁은 인식을 동아시아의 기존 패권국 명과 신흥강국 일본의 충돌이 빚어낸 거대한 비극, 그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갔던 오래 전 우리의 자화상으로 성큼 넓혀주는 것이 김성한의《7년전쟁》이다. 우리 근세사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었던 임진왜란의 전모와 참모습을 알려줄 작품을 이 외에 달리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60년 만에 돌아오는 임진년인 올해 이 대작을 새롭게 손보아서 다시 내놓는 것이다. 역사소설은 사료(史料)라는 큰 가지에 잎사귀와 꽃을 붙여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 김성한의 역사소설은 시대와 조금씩 어긋나곤 했다.《7년전쟁》에 앞서 나왔던《고려태조 왕건》 또한 역사소설이 민중주의 일색으로 흐르던 80년대에 궁예와 왕건, 견훤 등 왕조를 창업한 지도자들의 이야기로 제 가치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채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묵묵히 글을 썼던 김성한의 문학적 태도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소설은 사실(史實)을 밝히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고증에 철저했던 김성한식 역사소설 쓰기에서 기인하는 바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고 하겠다. 작가는《7년전쟁》의 연재를 마치면서 “흔히 시(時)는 음악, 소설은 그림에 비유되거니와 이미 완결된 시대상(時代相)을 그리는 역사소설은 그림 중에서도 풍경화에 속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풍경화는 무엇보다도 그 대상에 충실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가능한 한 관계 3국의 사료(史料)들을 광범하게 조사하여 시대적인 배경, 전쟁과 평화의 표면과 이면을 충실히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실(史實)’을 밝혀내려는 작가의 노력이 임진왜란을 둘러싼 동아시아 삼국 간의 복잡한 얽힘을 드러냈고, 전쟁은 인간이 타고난 온갖 아름다움과 추함을 한꺼번에 드러내주는 거대한 소용돌이임을 생동감있게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허구의 이야기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간세상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성한의 역사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사소설은 사료(史料)라는 큰 가지에 잎사귀와 꽃을 붙여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라고 스스로 규정했듯 작가는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입체적 인간상, 간결한 문체, 김성한의 복원 현실의 인간은 단선적이지 않다. 악으로 점철된 인간도, 선으로만 감싸인 인간도 없다. 세상사 또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명쾌하게 재단되지 않는다. 김성한의 역사소설은 온갖 아이러니로 뒤덮인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의 인간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낸다. 가령 김성일만 해도 꼬장꼬장한 성질 탓에 판단을 그르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자의 경험으로 예전의 김성일이 아닌 것으로 그려진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온갖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지금의 현실에 겹쳐놓고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거기에다 김성한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문체는 소설 읽기의 재미를 유감없이 선사한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있는 문체는 5권 2천5백여 쪽에 이르는 분량의 압박을 잊게 만든다. 김성한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소설의 대가로 기억된다. 긴 호흡의 대하 역사소설은 도서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되는 게 요즘의 세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장대한 서사가 사라진 이 시대에 김성한 역사소설이 갖는 강한 흡입력과 고증에 충실한 사실성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7년전쟁》의 복간이 역사소설의 대가 김성한의 작품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달콤한 인생> 법의 사각지대에 숨은 영리하고 교활한 살인마를 만나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서스펜스 스릴러, 김성한의 장편소설 『달콤한 인생』. 카카오페이지에서 먼저 모바일 연재를 시작했던 작품으로, 3주 만에 동시구독자 3만 명을 돌파하며 독자들의 열띤 호응과 함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빠른 전개와 압축적이며 호흡이 짧아 가독성이 높으며,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개성적인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얽히는 역동적인 장면들이 돋보인다. 억대 연봉과 화려한 인맥, 아름다운 아내와 이제 곧 태어날 아이, 패배를 모르며 연승을 달리는 서른여섯 살의 변호사 박상우. 탄탄대로가 이어질 것 같던 그의 인생은 실수로 저지른 살인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주도면밀하게 사건을 은폐하고 남에게 덮어씌운 변호사는 자신이 그 변호를 직접 맡으며 완전범죄를 꿈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