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보이 사카에(壷井栄)
쓰보이 사카에(壷井栄)
평균평점
항구의 소녀

<항구의 소녀> 오이즈루(순례자가 의복 위에 입는 소매 없는 얇은 옷으로 하오리와 비슷함 : 역주)를 입은 가족끼리 온 순례자들이 상점에 들어와 우동을 주문하거나 초밥을 먹을 때면 언제나, “손님, 벌써 다 돌아보셨나요?” 하고 물으시면서 우동에 달걀을 하나 넣어주거나 여름 귤을 어린 순례자의 손에 쥐어주며, “달걀은 보시하는 거예요. 별 건 아니지만 그저 제 마음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순례자를 섬사람들은 오헨로라고 불렀습니다. 보시라는 것은 부처님께 공양을 하기 위해 보잘 것 없는 것으로라도 순례자를 대접하는 일입니다. 순례자들은 대개 기꺼이 염불을 하고 부적을 놓고 갑니다. 그 부적을 받으면 언제가 게이코는 자신이 직접 불단에 올렸습니다. 할머니도 게이코도 가족 동반 순례자들에게는 언제나 마음이 끌렸습니다. 게이코가 다섯 살 때, 할머니에게는 외동딸이었던 게이코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맷돌의 노래

<맷돌의 노래> 하늘이 맑게 갠 아침이었습니다. 치에코 식구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때 같으면 미즈에 아빠와 엄마도 분명 아무런 근심 없이 맑은 아침을 맞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즈에의 아빠와 엄마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걸핏하면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는 미즈에를 치에코네 식구들은 열심히 위로해 주었습니다. “미즈에 우리 열심히 공부하자” 하고 말하면 미즈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백중인 8월 13일입니다. 그리고 묘지를 청소하거나 영혼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맷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제가 맷돌을 돌릴게요.” 치에코는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듯 부드럽게 말하고는 맷돌 옆에 앉았습니다. -책 속에서-

축제날의 새 옷

<축제날의 새 옷> 어느 날입니다. 햇볕이 잘 드는 나무통 집 헛간 앞에 자리를 깔고 토시와 센키치가 앉아있습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더이상 거지가 아니란다. 이제 우리 집 아이야. 알겠지?” 어깨띠를 맨 나무통 집 할머니는 텁수룩하게 자란 센키치의 머리를 이발 기계로 밀면서 며느리에게 머리를 내맡기고 있는 토시와 센키치 남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산에서 꽃이랑 가지를 꺾어오지 않아도 우리 집에서 말을 잘 듣고 있으면 배불리 밥을 먹여주마.” 그 얘기를 들은 센키치는 눈을 반짝이며 다짐을 받듯이 되물었습니다. “할머니, 말만 잘 들으면 밥을 먹여줄 거에요?” “그렇고말고. 말을 잘 들으면 학교에도 보내 주마.” “정말이요? 정말 학교에도 보내 줄 거예요?” -책 속에서-

따스한 오른손

<따스한 오른손> 지우짱네 학교가 소풍을 간 곳은 에노시마였습니다. 그곳은 사이타마 현의 K시에서 기차를 탄 후, 동경에서 다시 또 기차를 갈아타야만 하는 곳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기차의 화물열차의 한 칸에 타고 있었습니다. 세 끼 분의 도시락을 넣은 배낭을 멘 학생들이 검은 화물열차의 상자 속 같은 곳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앉을 곳도 붙잡을 손잡이도 없는 화물열차 속에서도 학생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소풍을 간다는 기쁨으로만 들떠 있었겠지요. 처음 기차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그렇게 붐비지 않았던 기차 안이 점점 한, 두 역(驛)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늘어나고, 오오미야라고 하는 역(驛)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탔습니다. -책 속에서-

내일의 바람

<내일의 바람> 그런 엄마의 걱정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한 듯, 그 날 나츠코는 장화를 잃어버렸습니다. 나츠코는 새파랗게 질려 장화를 찾아보았습니다. 자기네 학교에서 제일 새것인 데다 까만색 윤이 나고 속은 신축성이 좋은 소재로 만들어진 나츠코의 고급 장화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 버린 것입니다. 누군가 장난으로 숨겨놓은 게 아닐까? 하며 신발장 뒤쪽이며, 사물함 안까지 모두 찾아보았지만 나츠코의 장화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나츠코는 맨발로 운동장이며 제방의 풀숲까지 전부 뒤져보았습니다. 하지만 장화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나츠코는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 한구석에서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나츠코!”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엄마의 목소리라는 걸 깨닫자 나츠코는 한층 더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