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손석춘
평균평점
파란 구리 반지

<파란 구리 반지> 2017년 이태준문학상을 수상한 손석춘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손석춘 작가는 첫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 이후 줄곧 이데올로기와 분단을 다뤄왔다. 2018년 제주 4?3항쟁 70주년을 앞두고 펴낸 이번 작품에서도, 우리 역사의 아픔을, 그 진실을 정면으로 들춰냈다. 일제강점기, 해방, 4?3항쟁, 여순항쟁,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낸 제주도 여인 고은하. 작가는 그의 삶을 담담히 그리며 역사의 진실이 매도당하는 우리 현실을 고발한다. 해방을 맞았지만 친일파 청산은 없었고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한다. '윤똑똑이' 지식인들을 향해 어쭙잖은 화해나 양비론을 들먹이지 말고 역사의 진실을 올바로 직시할 것을 작가는 일갈한다. 아물지 않고 덧나기만 하는 우리 근현대사의 상처를 '파란 구리 반지'라는 상징과 역사적 진실의 힘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주인공 고은하는 제주도에서 심방(무당)의 딸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치고 교사의 꿈을 키운다. 어렵사리 입학한 대구사범에서 어릴 때 잠깐 만났던 강인혁과 재회한다. 인혁은 지리산에서 이현상과 함께 활동하며 조선 해방과 사회주의 세상을 꿈꾼다. 자연스레 인혁의 길을 같이 걷게 된 은하는, 친일 경찰 박병도에게 갖은 고초를 당한다. 곧 해방이 되자 지리산에서 내려온 은하와 인혁은 제주도에서 가정을 꾸린다. 둘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들 앞에 경찰 박병도가 다시 나타나는데….

아름다운 집

<개정판 | 아름다운 집> 현대사의 아픔과 희망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 『아름다운 집』 2001년 출간 이후 14쇄가 넘는 출간 부수를 기록할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손석춘의 소설『아름다운 집』이 세 번째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1938년, 식민지 조선에서 연희전문에 등록한 청년 이진선의 일기 형식을 띤 이 소설은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굵직한 인물들의 행적과 우리 민족이 걸어왔던 길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이진선이라는 순수한 사회주의자 지식인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톺아본다. 이진선의 일기를 관통하고 있는 순수한 민족애와 휴머니즘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 여전히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최첨단 통신기기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폭넓은 소통은커녕,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사이의 벽은 더욱 단단해지고만 있다. 진보와 보수 단체의 갈등은 점점 깊은 골을 이루고, 경제적으로는 빈부의 격차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인문학의 몰락이 예견될 정도로 사상의 가치가 홀대받고 있는 형국이다. “나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 지금 어디에 있는가.”(15쪽)라는 첫 문장은 개인의 삶과 사회주의의 사상적 가치를 우리 시대에 맞게 모색해보려는 작가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삶의 의미와 공동체 사회의 가치에 대한 물음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문학작품으로서 보편적인 예술성을 내포한다. 이 소설은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되는 등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역사가 아플수록 사랑은 깊다 신문사 편집국 기자로서 ‘엄청나다’는 기사 제보가 대부분 사사로운 고충이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이 소설의 내레이터는, ‘조선 사람들이 깜짝 놀랄 기록’이라는 중국 연길의 한 노인이 보낸 편지도 그저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넘기다가, 그 노인이 다짜고짜 약속 시간과 장소까지 지정해주는 바람에 연길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노인의 말대로 ‘조선 사람들이 깜짝 놀랄 기록’이 담긴, 낡아빠진 수첩 한 무더기를 안고 돌아온다. 거기에는 북한의 이름 없는 지식인으로 살아간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레이터는 이를 책 한 권으로 묶어내기로 한다. 그 내레이터가 저자 손석춘인지, 연길의 그 노인은 누구인지 궁금증을 헤아릴 여유도 없이, 1938년부터 한반도의 역사는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독자들은 일기의 작성자인 이진선을 통해 우리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과 사건을 지척의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시인 윤동주, 불교계의 거목인 휴허 스님, 남로당의 거물인 김삼룡과 박헌영, 일본 유학시절에 만난 황장엽, 월북한 후로는 김일성과 그 주변 인물들과 어우러지면서 안타까움과 분노의 60년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진선 개인의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삶을 목격하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 여린과 아들 서돌이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광경, 최진이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가슴을 절절하게 한다. ?아름다운 집?은 역사의 흐름과 개인의 삶을 거미줄처럼 잘 짜낸,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소설이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순수한 꿈이 일그러져가는 과정을 통해 불신과 분열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희망의 현대사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실한 삶이란 무엇인지, 역사적인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치밀한 고증,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소설 작가는 치밀한 고증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복원해나간다. 이진선의 일기를 통해 지원병 제도와 조선교육령이 1938년에 실시된 사실, 민족지를 자처하던 신문들이 지원병제도와 조선교육령을 지지하는 사설을 게재한 사실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냉혹한 비판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진선의 일기가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분단된 조국과 그 분단을 고착화하는 남과 북의 정치인들과 권력가들의 행태다. 『아름다운 집』은 남한의 현실뿐 아니라 북한 권력의 심장부에도 가차 없는 메스를 가한다. 그들이 순수한 민족애를 어떻게 좌절시켰는지, 지금의 분단 현실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냉철한 시선으로 되돌아본다. 그 과정 속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낯선 북한의 현대사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전후 사상 재검토의 피바람, 남로당의 숙청, 이해관계에 따라 중국과 소련 공산당과 소원해지기도 하고 긴밀하기도 했던 정치적 상황, 전쟁으로 인해 남녀 성비가 맞지 않으면서 과부와 적령기를 넘은 처녀들이 넘쳐나는 등의 사회적 문제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4?19혁명이나 5?16쿠테타, 6?29 민주화 선언 등 굵직한 남한의 역사적 사건을 북한 지식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새롭다. 그러나 이 소설은 비참한 과거와 현실을 들추어내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 즉 ‘아름다운 집’을 세우자는 뜨거운 희망을 담고 있다. 『아름다운 집』은 애써 지워버리고자 했던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직시하고, 그리하여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소설이기도 하다.

뉴 리버티호의 항해

<뉴 리버티호의 항해> 깊은 절망에서 길어올린 희망! 신선한 순우리말과 촘촘한 구성으로 빚어낸 역설 어린 우리 시대의 자화상! 2005년 『마흔아홉 통의 편지』가 출간되면서 『아름다운 집』(2001), 『유령의 사랑』(2003)과 함께 작가 손석춘의 ‘3부작 소설’이 완결되었다. 작가도 인정했듯이 20세기 우리 겨레의 진실을 다룬 소설은 위의 세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뉴 리버티 호의 항해』에도 기존에 발표한 ‘3부작’에 나왔던 인물들, 『마흔아홉 통의 편지』의 주인공 홍연화와 『유령의 사랑』의 주인공 한민주가 등장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집』의 주인공 이진선의 아들로 소설 속에서 간혹 모습을 보였던 상준이 두 사람과 조우한다. 부모 모두 운명하고 한 세기를 넘긴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만난 세 사람. 이들 등장인물만으로도 3부작 소설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3부작 소설의 내용을 모른다 해도 이 소설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낯설면서도 신선한 순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작가의 매끄러운 글 솜씨와 인물과 사건의 개연성에 한 치의 오차도 찾아볼 수 없는 촘촘한 구성 덕분이다. 물론 ‘3부작’에서 독자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된 주인공들의 잔상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뉴 리버티 호의 항해』는 3부작 소설의 후일담일까? 작가는 왜 매듭지었다던 3부작 소설의 인물들을 다시 소환한 것일까? 하필이면 그 시점을 2010년대 중반으로 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세 갈래로 찢긴 겨레, 한 배에 오르다 3부작 모든 소설에 등장한 한민주는 이 소설에서도 인물들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한다.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그는 시민사회운동가로 활약하며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파주 임진강 부근에 근거지를 마련한다. 아내와 함께 머물 거주지로 삼은 곳이었지만, 우연찮게 민주의 이야기를 들은 연화가 제안한 공동주택을 받아들여 함께하기로 한다. 민주는 가족과 탈북했지만, 홀로 남쪽에 기거할 수밖에 없게 된 상준에게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해서 삶의 무늬가 다른 세 인물이 남북의 접점인 통일동산으로 모여든다. 셋이 한 자리에 함께하게 된 데엔 민주의 역할이 크지만, 작가가 이 소설에서 삶의 궤적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인물은 상준이다. 소설 속에서 상준이란 인물은 대표성을 띤다. 그는 기실 70년이 가까워지지만, 한겨레이면서도 여전히 소통하기 어려운 북녘에 있는 ‘우리의 반쪽’이자 이진선과 달리 새로운 체제에서 나고 자란 전후세대를 대변한다. 어머니(최진이)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 이후, 십수 년을 올바른 사회주의 일꾼을 키우는 데 매진해온 인민학교 교원 상준은 일상에 예리한 균열이 생긴 것을 느낀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부정하고, 40여 년 동안 살면서 변치 않았던 ‘공화국’에 대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하지만, 쉽사리 의심을 떨칠 수 없는 일들이 자신과 가족들을 옥죄어오는 것을 직감한다. 급기야 대학 시절에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 대학생인 아들, 재포(재일동포귀국자) 출신의 연로한 장모와 함께 공화국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다행히 탈북에 성공하지만 중국, 일본, 미국을 배경으로 상상하지 못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상준은 홀로 남녘땅에 기거하게 된다. 민주가 남쪽의 비판적 이성적 시각을, 상준이 북쪽의 건강하고 순수한 비판적 시각을 대변한다면 갓난아기 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줄곧 그곳에서 살아온 연화는 두 사람과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연화는 합리적인 사회체계를 갖춘 북유럽의 구성원의 관점으로 남쪽도, 북쪽도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양 사회를 바라본다. 작가는 연화라는 인물을 통해 남북 사회에 대한 담론에 풍성함을 더한다. 민주, 상준, 연화는 지향하는 지점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에 관점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세 인물의 시각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시민으로 그리고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 남과 북으로 분단된 조국에서 벌어지는 사회상, 서로의 갈등을 어떻게 치유하고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깊이를 더한다. 함께 통일동산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첫 걸음을 떼기 전, 연화는 딸 나미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객선 여행을 떠난다. 마침 여객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준은 통일동산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항해임을 다짐하면서도 두 모녀에게 신경을 쓴다. 이전부터 대학특강이 잡혀 있었던 민주는 아쉽게도 여행에 참석하지 못한다. 배 위에서 연화와 상준은 어느 때보다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과 좌절에서 희망할 것을 각성하다!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하려는 상준과 연화의 과거와 현재를 담담하게 그려내던 작가는 소설 말미에 돌연 충격적인 사건을 그려낸다. 희망은커녕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로 서사는 급박하게 흘러간다. 독자들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이미지의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머리와 마음속에 진한 생채기가 새겨진다. 작가는 이 시대 우리 사회를 향한 허무함과 덧없음을 그려내려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작가는 사회를 향한 순수한 마음과 총기로 번뜩이던 상준의 아내, 조선화가 대학 시절 「공무도하가」를 해석하는 대목을 빌려 대답한다. “하층 인민의 비극을 반영했다는 말씀도 옳고 희망이 없어서라는 해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백수광부의 자살을 시로 표현한 작가의 의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았답니다.” “그게 뭔가?” “네, 저는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인민을 각성시켜 희망을 만들어보려는 뜻이 이 시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보았어요.”_「3부 달 윤슬, 해 윤슬」에서(277쪽) 한반도의 상흔 짙은 현대사에서 희생된 이들의 후예들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겪게 하며 그려낸 이 소설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대단히 역설적이다.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그려내어 다시 독자에게 희망을 꿈꾸려 하려는 것.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나락의 끝에서 남은 것은 반등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시 솟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각성이자 희망이다. 지난 3부작의 소설은 물론, 『뉴 리버티 호의 항해』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천착해온 작가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뉴 리버티 호의 항해』는 3부작을 밑절미로 삼은 우리 겨레와 역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손석춘 소설의 새로운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