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옥좌玉座 1> 수양의 가택 뒤뜰에 측근 수하들이 모여들었다. 수양에게 잘 보여 벼슬 한자리를 꿰차려는 자들도 있었다. 내금위 소속의 무인들인 강곤, 안경손, 홍순로, 민발, 곽연성과 무예 실력은 뛰어나 나 소속도 없는 당장은 무뢰배나 다름없는 임자번, 최윤 등의 뛰어난 무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궁술대회가 열렸고 한쪽에는 거한 술상이 차려졌다. 활을 쏘며 술도 마시는 광경은 수양의 기질 을 그대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수시로 활을 쏘고 사냥을 즐기는 수양의 활 솜씨는 무예가 출중한 수하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상상의 부자유> 벨이 다시 한 번 울렸다. 그 소리는 최루가스처럼 예사롭지 않은 독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알 수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딱히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것은 너나없이 같은 생각일 것이었다. 누구십니까? 주경모는 예리한 눈으로 인터폰 화면을 주시했다. ‘문 좀 열어보십시다.’ 인터폰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기다려보시오.’ 주경모는 현관의 붙박이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강일중과 전수철을 바짝 불렀다. 그러면서 짭새들이야! 라고 짧게 알려주었다. 강일중과 전수철은 본능적으로 몇 걸음을 날아가듯이 하여 붙박이장의 문을 열었다. 시간이 다소 지났어도 모의 연습의 성과는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강일중과 전수철은 수초 만에 다용도 붙박이장의 내부합판을 밀치고 들어가 틈새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주경모는 그들의 구두를 붙박이장의 신발 대에 올려놓았고 큼직한 우산을 합판 모서리 면에 일부러 삐딱하게 세워놓고서 붙박이장의 문을 닫았다. 거실에서 대문 열림 버튼을 눌러도 되었지만 방문자가 누구인지 직접 확인하겠다는 것은 집주인의 마음이었다. 벨소리를 듣고서 주경모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시간은 어림잡아 삼십 여초쯤 걸린 것 같았다. 본문 중에서
<외인> 이 도시에는 공존이 불가한 부류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단죄와 응징은 공권력의 몫이지만 그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움직임을 위축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들의 불같은 감시의 눈길이 필요하다. 무심하거나 감시의 눈길이 느슨해질수록 그들은 독버섯처럼 번져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인’은 그들과 그들을 견제하는 사람들의 차갑고도 뜨거운 이야기다! 정적 속의 탐색인데도 호흡은 가빴다. 놈은 눈알이라도 빼먹을 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무섭도록 나를 노려보았다. 시선을 피하던 잠시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갑자기 내 귀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적은 마치 거대한 괴물 같았다. 그리고 압도적인 힘으로 나를 덮쳐올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혔고 몽롱한 무아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세는커녕 놈의 기와 낯선 원정의 분위기에 내 기가 눌리고 있다는 불리한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우리 쪽의 수가 많은데도 그랬다. 정말이지 너무도 빗나간 예상이었다. 떨림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를 위축의 상태는 분명 맞는 것 같았다. 오래전이었다고는 하나 수없이 많은 상대와 대련이나 맞장을 붙었을 적에도 지금처럼 모호한 수세의 기분을 크게 느꼈던 적은 없었다. 상대가 조폭이어서도 또 여러 조폭들이 지켜보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