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이야기> 풀들은 뜬 삶임을 알면서도 씨를 맺는다. 섭리를 거스를 수 없음인가? 녀석이 영그는 모습을 어디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품세 없는 책 한 권을 통해서나마 할아비의 그늘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해가 또 저문다. 쓰기 싫은 모자 뒤집어 쓰듯, 나이 한 살을 다시 알사탕 우리듯 녹여 먹고 나는 햇살에 바랜 나뭇잎처럼 또 한 차례 무상의 외로움에 떤다. 마지막 남은 12월이 차표를 사 들고 서 있다. 또 가는 것이다. 12월이... 나는 마른 앞 뒹구는 길모퉁이에 서서 그와 다시 악수를 나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빈손이었다. 이젠 부끄러워 다시 보잔 소리도 못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