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암 시집>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평생을 학문으로 보내다 가암 전익구(全翼耈, 1615∼1683)는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명수(明叟), 호는 가암(可庵)이다. 본관인 용궁은 지금 경북 예천군 용궁면 지역이다. 예천 지역의 뿌리 깊은 세족으로, 종조인 전찬(全纘)은 퇴계 이황에게 수학했으며 부친 전이성(全以性)은 정구(鄭逑)와 정경세에게 배워 가학의 연원이 깊다. 전익구도 많은 인물들과 교류했는데, 특히 정경세의 손자 정도응, 홍귀달의 5세손 홍여하와 교분이 깊었다. 그는 관직보다는 학행으로 이름이 알려졌는데 평생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정경세가 우거하던 상주 우산(愚山) 근처로 이주해 가암(可庵)을 건립하고 독서와 강학으로 보냈다. 자연 가운데 홀로 외로움을 느끼다 그의 문집 ≪가암집≫은 2권 1책으로 권1에 한시 69제 81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를 모두 번역했다. 이 시들의 창작 형식을 보면 고시와 배율을 제외한 근체시는 65수에 해당한다. 보통 근체시는 시의 의미 전달보다 운자와 평측, 대우 등 형식적 조건을 우선으로 한다. 이런 형식적 제약 때문에 근체시는 장·단구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악부시나 평측과 대우를 고려하지 않는 고시보다 짓기가 까다롭다.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근체시 창작을 지향한 것은 평생 출사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해 끝없이 성찰하고 고민한 그의 성격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내용 면에서는 특히 교유시가 많아 증답시와 송별시가 41수나 되며 그 외 전원시, 회고시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표현은 자연스럽고 구속됨이 없으며, 일상 속의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한 도학자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