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발췌 헝클어진 머리칼> ≪묘조(明星)≫의 여왕, ‘정열의 가인’으로 칭송받은 일본 근대 시인 요사노 아키코의 첫 단카 모음집 ≪헝클어진 머리칼(みだれ髮)≫의 전체 399수 중 약 35%에 해당하는 140수를 골라 옮겼다. 그녀는 유부남이었던 스승 요사노 뎃칸과의 스캔들로도 유명했는데, 이 가집에는 이러한 파격적인 연애 체험을 고스란히 반영해 관능의 향기와 자유분방함이 살아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금기시했던 여성의 육체와 관능, 자유연애에 대한 의지와 감정을 자유롭게 그린 이 가집은 봉건사상에서 벗어나 근대 여성의 자아를 해방했다는 점에서 당시 문단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젊은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우에다 빈은 ≪헝클어진 머리칼≫ 발간 당시 “참신한 성조와 기발한 사상을 노래해 문단의 적요를 깨트린 시단 혁신의 선구”라고 극찬했다. 일본의 전통 정형시 단카 형식을 개인의 감정을 솔직히 노래한 현대시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도 크게 주목할 만하다. 봉건사상의 억압에서 벗어난 표현 기법 1901년, 요사노 아키코가 발표한 첫 가집(歌集)인 ≪헝클어진 머리칼≫은 작가 자신의 연애, 갈등, 성애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것이다. 지방 문학회 회원으로 습작을 시작한 아키코는 자신의 스승이자 당시 문학청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뎃칸에 대해 존경과 연모의 감정을 키워갔다. 이미 처자가 있었던 뎃칸의 이혼, 절친한 시우 야마카와 도미코와의 미묘한 삼각관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가출과 동거를 거쳐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이러한 체험이 그대로 반영된 이 책은 봉건적 인습이 뿌리 깊게 남아 있던 세간의 통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남녀 간의 자유로운 연애에 대한 여성의 의지와 감정을 미적, 긍정적으로 드러낸다. 발간 당시 이 가집은 “참신한 성조와 기발한 사상을 노래해 문단의 적요를 깨트린 시단 혁신의 선구”로 환영받으며 젊은 남녀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 문단을 넘어서는 사건이자 현상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기성 가단의 원로들과 교육자들의 문란하고 부도덕하다는 비판은 오히려 명성을 높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헝클어진 머리칼≫에는 아키코가 처음 <묘조>에 투고한 1900년 4월부터 약 1년 반 사이에 창작된 399수가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각 장에는 <연지보라(臙脂紫)>(98수), <연꽃 배(蓮の花船)>(76수), <흰 백합(白百合)>(36수), <스무 살 아내(はたち妻)>(87수), <무희(舞姫)>(22수), <봄날(春思)>(80수)과 같이 소제목이 붙어 있고, 단카들은 각각의 주제에 맞추어 처음 창작 당시의 상황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새롭게 배치되었다. 편년체 편집을 원칙으로 하던 기존의 가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기적 구성을 통해 작품의 다양한 해석을 유도하는 효과를 획득함으로써 주제별 편집 방식이라는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다. 이 책에서는 초판본의 장 구성과 작품 배열 순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399수 중 140수를 번역해 수록했다. 옮긴이는 기본적으로 충실한 의미 번역을 우선하되, 축어적 번역으로 충분한 의미 전달이 어려운 경우에는 학계의 해석을 참조해 각 작품이 표현하는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각 단카에 대한 해제는 전혀 달지 않았고 지명이나 작품의 전거가 있는 경우 등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주석을 첨가했다. 대신 각 장의 서두에 덧붙인 짤막한 해설에서 가집 전체를 관류하는 중심 이미지들을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단카 특유의 정형률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한 5․7․5․7․7의 음절 수를 맞추고자 노력했다. 단, 한 줄로 이어 쓴 원문과 달리 번역은 3∼5줄로 행을 나누어 표기했다. 같은 음수율 속에서도 5개의 구가 끊어지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내재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점 또한 단카의 매력이므로 각각의 구조를 고려해 보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꾀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시각적 단조로움을 피해 가집 특유의 분방한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