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스턴
로런스 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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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생애와 견해 1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생애와 견해 1> 세기를 앞서간 작가 로런스 스턴의 대표작. 소설이라면 모름지기 주인공의 연대기여야 했던 시대에 스턴은 언어의 한계성을 벗어나기 위해 글쓰기에 파격을 기한다. 본줄기에서 수시로 뻗어나갔다 돌아오는 곁가지 스토리텔링이며, 다양한 기호와 이미지의 활용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도 없던 시절의 과감한 실험이었다. 니체는 그를 가리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유로운 작가”라 했고, 괴테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받은 작가로 그를 꼽는다. 이번 번역본은 작품의 결정판으로 공인되는 뉴(Melvyn New and Joan New)의 판본을 원전으로 사용했고, 트리스트럼 연구의 선구자인 제임스 워크(James A. Work)를 비롯해, 뉴·와트·앤더슨·로스 등 기존 연구자들의 각주를 두루 참고했다. 또 시각적 효과에 민감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해 의도되었지만 간과하기 쉬운 언어 외적 다양한 시각적 수법을 구현하는 데 신경을 썼다. 기괴한 것은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18세기까지 영국 독자들에게 익숙했던 소설은 존 버니언을 비롯해서 대니얼 디포,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등의 소설, 즉 주인공의 일생 또는 일생의 어느 기간의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알기 쉽게 서술하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그 틀을 깨고 글쓰기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 작가가 로런스 스턴이다. 그는 언어의 한계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과감하게 독창적으로 실행했다. 작중 화자 트리스트럼은 일찍이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생애와 견해≫(이하 ≪트리스트럼 섄디≫) 초반부터 가지치기 수법을 이 작품 구성의 원리로 선언한다. 그에 따라 이야기는 본줄기에서 수시로 벗어나고 시간은 뒤섞인다. 자신의 수태 이야기부터 작품을 시작하고 나서 슬그머니 산파 이야기로 화제를 바꾼 다음, 곧이어 헌정사를 쓰고, 그다음에는 자신의 부모의 결혼 계약서를 보여 주고, 소르본 학자들에게 보내는 질의서와 답신을 인용한 다음, 자신의 대고모 디아나 이야기로 빗나가는 등 이야기 본줄기에서 한참 벗어난 다음, 마침내 자신은 차라리 이런 식으로 글을 쓰겠다고 하는 식이다. 스턴의 글에서 또 한 가지 특히 두드러진 점은 온갖 시각적 수단을 동원한 보여 주기 방법이다. 그는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언어의 불완전성을 시각적인 표현으로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작중 등장인물에 대한 애도는 한 쪽을 가득 채운 검은 상자로 표현하고, 막대기를 휘두를 때는 막대기의 궤적을 그림으로 나타낸다. 이 외에도 수많은 별표(*)와 대시(―), 독자 모르게 누락한 열 페이지짜리 한 장(chapter), 독자더러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는 빈 페이지까지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짐작대로 당대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외면 아니면 혹평이었다. 당대 영국 문단의 거물이었던 새뮤얼 존슨은, “기괴한 것은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트리스트럼 섄디≫가 그 예”라고까지 했다. 20세기 들어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이들이 나타난다. 니체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논하는 자신의 저서에서 어찌 로런스 스턴 같은 작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그를 가리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유로운 작가”라고 하고, 그에 비하면 모든 다른 작가들은 “경직되고 고지식하고 편협하고 촌스럽게 직설적”이라고 한다. 그는 이어서 “[스턴의 작품에서는] 고정된 형체는 끊임없이 깨지고, 대치되고, 변형되어 불명확한 것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그것은 동시에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고 하고 그러므로 그를 “모호성(ambiguity)의 대가”라고 평가한다. 평생 스턴에 감탄한 괴테는 만년(1828년)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쓴 글에서, 자신은 셰익스피어와 스턴과 골드스미스에게 무한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1년 후에도 그는, 자신이 문학도로서 성장하려던 중요한 시기에, 골드스미스와 스턴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그 크기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또, 스턴은 18세기 후반에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고결한 아량과 온후한 사랑의 위대한 시대를 열고 가꾼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작품의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는 김성균 교수의 노작이다. 필자는 국내에 이 작품의 연구가 전무하던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1979년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이후에도 강의에서 꾸준히 읽다 2000년 초 평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던 이 작품의 번역에 착수했다. 2003년 1차 탈고 후 퇴고를 거듭했고 지난한 편집 과정까지 거쳐 2020년 출간의 결실을 맺었다. 번역에는 작품의 결정판으로 공인되는 뉴(Melvyn New and Joan New)의 판본을 사용했고, 주석은 트리스트럼 연구의 선구자인 제임스 워크(James A. Work)의 각주를 기본으로, 뉴·와트·앤더슨·로스 등 기존 연구자들의 판본을 두루 참고했다. 또 시각적 효과에 민감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기 위해 이번 번역본에서는, 의도되었지만 간과하기 쉬운 언어 외적 다양한 시각적 수법(typography)을 구현하는 데 신경을 썼다. 말로만 설명을 들어서는 좀처럼 짐작하기 어려운 스목잭, 샅주머니가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는 참고그림을 통해 알 수 있고, 1358개에 달하는 각주, 참고 문헌, 60여 쪽의 상세한 해설과 지은이 소개 등은 연구자들의 참고자료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