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리아!” 아, 빛이 들어온다. 마차의 나무판을 뜯어내고 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름 따위 안 불러 줘도 상관없어. 구해만 준다면 말이야.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내게서 고개를 돌리더니 반대편의 세실리아만을 구해 갔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실리아를 부르는 목소리만 희미하게 멀어져갈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 버림받은 거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두고 가는 건… 씨발! 나 안 해. 세실리아 친구 안 해. 조연 인생 안 해! 지들이 뭐 얼마나 잘났다고! 꺼져 가는 시야 속에서 나는 다짐했다. *** 가슴이 쿵쾅거렸다. “리아나! 그게 무슨 말이야.” “세실리아, 넌 아마 평생 모를 거야.”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허상인지 실제인지 달리던 마차가 전복되기까지의 일들, 너를 보호하려 애썼던 날들, 어울리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날 사이사이의 눈물들. 내가 받은 보답은, 버림이었다. 나를 두고 세실리아 너만을 구해 갔던 세 남자의 잔상이 이토록 뚜렷한데. 나는 숨을 깊이 쉬었다. 폐부를 찌르는 상쾌한 공기가 날카롭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이겠지.
「괴물 대공이 신부를 구한다!」 설산에 사는 괴물과 같다지! 산 사람을 눈덩이에 파묻어 죽여 버린다는군! 그녀는 몰랐다. 불온한 소문과 함께 나타난, 남들이 멸시하는 괴물 대공이 그녀의 유일한 구원이 될 줄은. “너를 위해 그랬어, 네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그저 욕정을 푼 것뿐이야!” 약혼자의 배신. “너와 가문을 위해서란다! 경과의 결혼 밖에는 수가 없어!” 가족들의 이기심. “파혼도 사실 ‘그녀’ 책임 아니겠어요? 이미 대공과 놀아났던 거지! 망측해라.” 오히려 그녀를 비난하는 수도 귀족들. 이 모든 것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죽음 외엔, 대공뿐이었다. “당신께 아이를 안겨드릴 수 있어요.” “내게 다정과 친절을 기대해선 안 될 거야.” 지저분한 소문을 달고 올린 식, 축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그제야 숨이 쉬어지는 듯했다. 대공성 사용인들의 냉대도, 혹한의 날씨도 그런데로 견딜 수 있을 무렵 약속처럼 애가 들어섰다. * * * 위선과 거짓 없이 필요로 맺었던 관계가 진실해지기 시작하고. “날 구한 게 당신이었어.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가 나를 구했지.” 묻혔던 십수 년 전의 인연이 드러나며. “아이의 이름은 당신이 정해.” 척박한 땅에도 늦은 봄이 오려는 듯, 북부 땅의 회복 또한 순조로운 때. 황제가 대공을 죽이려 한다며, 전 약혼자가 나타나 기밀을 전하는데……. “나와 함께 가.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거야. 만약 대공이 살아남는다면 돌려보내 줄 테니. 그러니 제발! 제발 내 말을 들어. 너를 구해 줄게. 네 아이까지도.” 그러나 때가 늦은 후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