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숙
화숙
평균평점
제발 설정 좀 지켜줄래

나를 이곳에 가둔 것은, 나의 주인공이었다. 내가 쓴 19금 BL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갇혔다. NPC이자 관리자로 설정한 여자는 내게 주인공의 해피 엔딩을 요구했다. 그것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결국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세계는 나의 설정을 벗어나 멋대로 정립됐고, 주인공은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가 당신을 부른 거예요. 그러니. 오직 저만을 위해 존재해 주세요.”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말했다. “미쳤어.” 안타깝게도 진실은 깨닫고 난 뒤엔 손쓸 도리가 없는 법이었다. 뒤틀린 흐름, 속절없이 흘러가는 마음. 그리고 그 끝에서 망설여지는 선택.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파랑새의 목을 꺾으면

아름다운 미모와 하찮은 신분의 결말은, 납치였다. 공작에게 그 일은 참 쉬웠다. 성이라는 새장 안에 갇혀 지내기를 몇 년, 공작이 드디어 타계했다. 아리아나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러나 그 기대를 일그러뜨려 버린 것은 다름 아닌, 공작의 아들 디트리히였다. "그러니 저와 함께 이 지옥에 머무르세요. 결혼합시다." 그는 당장이라도 아리아나를 죽이고 싶다는 눈을 하고 그렇게 말했다. 어디까지나 공작의 유언에 따른 철저한 계약이었다. 디트리히가 약속한 것은 분명, 이혼과 자유였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서진 희망, 퇴색된 자유. 점점 더 끔찍해지는 현실 속에서 아리아나는 결심한다. 도망가자. 이 남자가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