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최고의 앙숙인 두 가문과 두 남녀. 한 지붕 아래에서 숨 쉬는 것조차 질색하던 두 사람이 얽혔다. “흐윽… 자… 잠깐, 만, 공작님. 이건 뭔가 오해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우리의 첫날밤은 진작에 지나갔잖아. 당신이 나를 집어삼키고 내빼버린 그 날.” “오해예요. 오해. 내가… 설명을…!” 둘 다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닌데도 묘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라고… 요. 그건 실수… 꺄아악!” “실수? 실수라고? 그걸 지금 실수라고 말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시도는 무산되었다. 드루쉬아는 온몸으로 그녀를 짓누르며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 아직 대화할 게 많이 남아 있잖아. 이….” 그는 진득한 시선으로 아시카를 내려다보았다. “몸의 대화 말이야.” *** 그믐달이 뜨는 밤 아시카를 찾아오는 기이한 환상. 현실에서는 최악의 앙숙인 남자, 그러나 환상 속에서는 다정한 연인이자 남편. 혼란스러운 마음은 어느 쪽이 진심일까. “내가 당신을 사랑해. 사랑한다고. 아시카, 이젠 내게서 도망가지 마.”
#유혹하는 남주 #홀랑 넘어가는 여주 #먹튀 남주 #상처받은 여주 #후회 남주 #철벽치는 여주 제휴사 VVIP의 방문. 그러나 사주(社主)일가의 방문이 답사가 아닌 문제아 좌천일 줄이야. “보내 준다는 사람이 여자라는 얘기는 못 들었거든요.” “제가 여자라서 문제가 됩니까?” “이렇게 예쁜데, 내가 잡아먹으면 어쩌려고?”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가 매혹적으로 흘러들었다. 살갗을 타고 살금살금 기어올라 예민한 어느 부위를 자극하는 것처럼. 말의 내용보다 자극이 먼저 느껴지는 야릇한 어조였다. “아님, 그 반대가 되려나? 나 잘생기지 않았어요? 나한테 반해서 매달리거나 하면 곤란한데.” “그럴 일 없습니다.” 즉흥적이고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쾌락주의자.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고야 마는 남자. 그래서 결국 넘어가고야 말았다. 찰나의 유희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끈질긴 유혹과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때문에. 혼곤한 정사, 그리고 그날 밤. “당신, 이상해.” “난 해인 씨가 더 이상해.” 해인이 슬쩍 얼굴을 비틀자 목을 쥔 서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내 표정이 없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드리웠다. 다소 삐뚜름한 미소였다. 작은 저항이 눈에 거슬린 것처럼. “…나 개새낀데.” 이 여자를 어쩌면 좋을까. 저 대신 상처 입는 걸 주저하지 않고, 총알이 날아드는 한 가운데로 겁 없이 뛰어드는 여자. 무덤 속으로 등 떠밀리면서도 제 살길보다는 그의 안위를 먼저 따져 보는 여자. 서준은 살면서 이렇게 미련하고 신기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