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 보니 다 읽지도 못한 소설 속이었다. 포옹도 해 봤고 뽀뽀도 해 봤고, 키스도 좀 해 봤지만 아직 남자와 밤을 보낸 적은 없는 내가, 결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처음인 내가! 서릿발처럼 차갑기만 한 나으리를 유혹해야 한다.“벗겨드리겠습니다.”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와 한 방에 있으면서도 꿈쩍도 하지 않는 내 서방, 개차반 같은 저 나으리를 유혹하려면. “소저, 망측합니다. 벗기다니, 무엇을…….” 나으리, 나랑 한 번만, 딱 한 번만 자 보자!차마 다 읽지도 못 하고 덮은 소설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 소설의 완결을 내고 현실로 돌아가야지.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빙의물들은 어떤가. 결국 남주와 여주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아야 끝이 나지 않았던가!투닥거리고 서로 미워하다가 어느 순간 눈이 맞고, 사랑이 싹트는 그런 로맨스. 그건 또 내가 숱하게 읽어본 스토리지.잘 보라고. 내가 이 소설 해피 엔딩으로 끝나게 해 볼 테니까!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밤낮없이 시달리는』의 조무래기 조연으로 빙의했다.제목에서 느껴지다시피, 여긴 그리 호락호락한 소설 속이 아니다. 소설의 결말도 아주 참혹하지. 결국 여주가 죽어버리거든.작가가 미친 거 아니냐고? 맞아, 쏟아지는 악플에 미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나는 남주를 스쳐 지나갈 조무래기 조연일 뿐인데!그런데….“네가 필요해, 아셀린.”내 앞에 서 있던 레비에트는 망설임 없이 한 쪽 무릎을 꿇어 보였다. 뭐야, 왜 이래?그의 뒤에 선 수십의 군사들도 레비에트를 따라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안 돼. 그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매달리고, 빌어보마. 응? 아셀린.”“전하! 이러시면….”내가 아니에요, 전하. 뭔가 지금 단단히 오해가 있으신 거라니까. 나는 그저 대공 전하를 스쳐 지나간 조무래기 조연일 뿐이라고요. 이런 식으로 죽는 건 여주 하나로 충분하잖아요! 아아아아아악. 오해 멈춰! 집착 멈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