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초
반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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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궤도

유배지 같은 하찮은 섬, 사죽도에 자발적으로 내려온 도우영. 신선놀음이나 하다 갈 생각이었는데, 웬 여자를 만났다. “우영 씨가 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눈길을 사로잡는 외모에 백지처럼 순수한 성격, 그리고 빨고 싶을 만큼 촉촉한 눈망울을 가진 여자를. “오해하게 하지 말아요. 친구 할 거면 친구답게…….” “미치겠네. 두고두고 아껴 먹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지루하기만 할 줄 알았던 삼 개월의 섬 생활. 하지만 서달아를 본 순간 기존의 생각도, 계획도 바뀌었다. “내가 실수했네. 착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내가 달아 씨랑 하고 싶은 건, 같잖은 친구 따위가 아니거든요.” 갑작스러운 우영의 말에 달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반듯한 코끝이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흐린 달빛이 비치는 어둠 속, 남자의 눈이 요요하게 빛났다. “나, 달아 씨를 핥고 싶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몽땅.” 따뜻한 입김이 귓바퀴를 타고 흘렀다. 분명 닿는 건 온기였는데, 목뒤부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누가 친구한테 그러고 싶겠어요.” 몸이 그대로 굳어 버린 그녀의 귓가에 우영이 마저 속삭였다. *** “우영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아뇨.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 달아의 손을 잡은 우영이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제부터 나쁜 짓 할 거거든요. 나쁜 짓, 같이 할래요?” 우영이 유혹하듯 속삭였다. 입술에 잔뜩 묻은 타액이 눈에 띄게 번들거렸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달아가 입을 천천히 열었다. “……네. 할래요.” 그의 입매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어차피 참을 생각 없었는데, 다행이네요.” 그녀가 거부한다면 달래고 꼬셔서라도 어떻게든 할 생각이었다. 더는 참고 싶지 않았다. “중간에 안 멈출 거니까 멈추라는 말은 하지 말고.”

본헤드 플레이

“오늘 나랑 자는 거야. 유이온.” 9회 말, 2사 만루. 심판이 스트라이크 삼진과 동시에 경기 종료를 외치자 야구장의 함성이 우렁차게 쏟아졌다. 강태주. 강태주. 땅과 하늘을 울리는 이름 석 자. 태양만큼이나 빛나는 잘생긴 남자가 그라운드 위에 우뚝 서서 이온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집요하고 끈덕지게. * * * 소녀 가장 재수생 유이온 앞에 나타난 불량한 편의점 고삐리 남자애. 길들여 지지 않는 떠돌이 개. 제 눈앞에 선 남자애가 딱 그랬다. ‘더 이상 엮여서는 안 돼.’ 야구 선수는 이제 끔찍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이온은 마음을 다잡았지만. “어쩌냐. 이미 더럽게 엮였는데.” 위험해 보이는 눈빛으로 예고한 강태주는 십 년 후, 메이저리거의 영광조차 버리고 이온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주웠으면 책임져야지. 누나.” 십 년 전보다 훨씬 더 완벽해진 수컷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