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의 장례식장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남자였다. "많이 말랐네." 한 팔에 감고도 남는 가느다란 허리에 남자가 쯧, 혀를 찼다. "이렇게 약해 빠져선 자존심은 더럽게 세고." "그나마 자존심 덕에 아등바등 버티는 건가." 무도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말본새에 아윤의 턱이 떡 벌어졌다. 그녀의 보송한 뺨을 훑는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송아윤 씨가 아직 어려서 세상을 덜 아는 것 같은데, 이게 현대판 램프 같은 거라." 예상을 벗어나는 여자를 향한 호기심, 순간적으로 들끓은 욕구.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길들여질지 꿈에도 모른 채, 규훤이 어버버하는 여자의 손바닥에 자신의 명함을 쥐여주었다. [SG 그룹 물산 부사장 서규훤] "내가 앞으로 그쪽 빽해줄 거거든."
"생긴 대로 논다는 말 알아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 연우의 턱이 높게 치켜 들렸다. “이런 얼굴을 하고선 어떻게 그런 맹랑한 짓을 벌일 수가 있었던 건지.” “이렇게 눈 하나 깜빡 않고 거짓말할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속지도 않았을 건데.” 턱을 잡아 든 남자의 눈동자 뒤로 검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피할 수도 없게 강제로 마주해 버린 그 불의 정체는 분노였다. 걸리지 않은 만큼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었던 그림 도난 사건의 범인을 이미 알고 있었던 자의 분노. 사라진 여자를 향한 원망과 그리움에서 비롯된 분노. "사인해요. 침대로 가기 싫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