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 헨트 제국의 공녀, 라리에로 빙의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지가 어언 십 년째.“안 되겠다!”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늦었지만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방법은 단 하나!바로 헨트 제국 변방의 저주받은 땅, 로그홀름에서만 발견된다는 소원초를 얻는 것!그런데 나오라는 소원초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얘.”그 대신, 가엾고도 맹랑한 아기 늑대 한 마리를 주워버렸다.“너 주인은 없니?”도리도리!“실컷 도망가보라지. 네 열 걸음이 내 한 걸음인걸.”그랬다. 잠깐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나는 겁도 없이 그 애를 품었다.***눈을 떴는데 내 침대 위에 웬 모르는 남자 한 명이 누워있다.잡티 하나 없는 말간 피부에 속눈썹을 짙게 내리깔고서.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작게 내는 게 꼭 밤 산책을 몰래 나온 천사와도 같은 모양새였지만, 내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너… 너 누구야?”“젠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놈의 고운 입술에서는 꽤 거친 말들이 새어 나왔다.이상했다. 분명 내 옆에 누워있었던 건 저 미친 남자가 아니라, 아주 아주 귀여운 솜뭉치였는데!그런데 그 솜뭉치는 온데간데없이 보이질 않고 대신 저놈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으니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설마...”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부디 내가 생각하는 그것만은 아니길.“넌 이제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절대로.”이 광기 어린 집착은 또 뭐고? 제발 이 상황, 거짓말이라고 해줘!
아르엔의 오빠, 아이제는 아르엔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둘은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서로에게 의지해 왔다.조금 가난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나날이 이어질 줄 알았다.“길어야 2년입니다.”“……뭐, 뭐라고요?”“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다시 병세가 악화할 줄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아이제가 시한부 선고를 받기 전까진.“저…… 결정했어요. 오빠 대신 아카데미에 입학할 거예요.”당연하지만, 아르엔은 허무하게 오빠를 보낼 수 없었다.하여, 그녀는 마력을 이용해 아이제인 척 엘메이즈 아카데미에 입학했다.정체를 숨기면서까지 이곳에 들어온 이상, 목표는 무사히 졸업장을 따내는 것!그런데…….“혼자 쓰는 줄 알았는데. 너…… 나랑 같은 방이냐?”정체를 숨겨야 하는 와중에 생긴 사나운 기숙사 룸메이트에,“……아이제? 세상에. 나야, 펠시온! 기억 안 나?”아르엔은 물론 아이제와도 친분이 있는 학생회장에,“아이제.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동성 친구를 대한다기엔 너무 친근하게 다가오는 같은 반 친구까지!……왜 이렇게 다들 관심이 많은 거냐고!과연, 아르엔은 무사히 정체를 숨기고 아카데미를 졸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