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의 못돼 처먹은 언니로 빙의했다. 패악질을 일삼는 절대 악. 가장 먼저 배운 단어가 ‘꺼져’였다는 소문의 주인공. 그게 바로 아리아타 로드윅이었다. 그런데 뭐? 알고 보니 여주인공인 라일라가 내 것을 빼앗은 거라고? 내 소중한 최애캐를 병풍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 몸까지 이용했다고?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동생이 빙의한 이 소설의 ‘진짜 여주’를 찾아 그녀에게 모든 걸 돌려주겠다고.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롭게 느껴졌는데…. 어째서인지 라일라의 어장 속 물고기들이 하나둘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억지로 마음을 속이지 않아도 된다. 그대가 누구보다 따스하다는 거 아니까.” 아뇨. 내 맘 가는 대로 막 하는 중인데요. 저 되게 차가워요. “형수, 형수가 사랑한 건 나였잖아요. 그러니까, 나를 봐야죠.” 아뇨. 죄송하지만 당신은 그저 핑곗거리에 불과했답니다. “토끼라고 불러 줘. 오로지 너의 애완용 토끼가 되고 싶어.” 아뇨. 당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일라의 어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잖아요. 아니, 저기요. 님들. 너희들은 라일라 어장 속 물고기잖아요. 제 어장에 들어오지 마세요. 아무래도 소설의 장르가… 바뀌어 버린 것 같다.
“죽어줄게.” 참으로 싱거운 복수였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허망할 정도로, 복수의 상대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차라리 반항이라도 하지.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지. 순순히 말하는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것도 거짓이었어.” 하지만 그는 모든 걸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 난 그대를 사랑했는데. 그대가 어떤 사람일지라도. 이제는 상관없겠지. 나를 죽여. 그것이 네가 바라던 거 아니었나.” 그리고 복수를 끝내기 위해 마침표를 찍던 그때, 진실을 알게 됐다. 복수의 상대가 잘못되었다는 걸. 자신이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걸. “제발… 살아. 당신을 사랑했어… 진심으로….” 그제야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남자가 달라졌다. “난 거짓말이었어.” 지독히도 엇갈리는 운명 속, 우리는 결국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