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부터, 당신의 죽음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몰살당했다. 남편이자 황제인 클레디우스의 음모였다.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태어난 지 사흘 만이었다. 남편에게선 어떤 위로도 들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일라이드의 세상은 온통 검었다. 표현할 수 없는 추모와 애도로 가득한 삶. 견뎌내고 버텨내기 위해서 현숙한 황후를 연기해왔다. 하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라이드가 참아내는 동안 저편에서 푸른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살아남은 하나의 인연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 “이러다 제가 ‘햇빛이 어둡다’라고 말하면 어둡다고 여길 참인가요?” “오늘부터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일라이드는 실없는 소리를 넘겨버리듯 피식 웃었지만, 리벨은 웃지 않았다. 설마 이 사람은 진심으로 여기는 건가? “황후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저에게는 규칙이고 법입니다.” 일라이드가 어두움을 빛이라고 말한다면, 리벨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이 조각나고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고. 리벨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대는 꼭…… 내가 세상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군요.” “안 됩니까?” *** 꺼져가는 불길 속에서 잿빛 매가 날갯짓하니, 고개를 들고 불을 지펴 세상을 향해 비상하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의 날에…….
※후회남을 요리 재료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후회남은 죽었을 때 제일 아름답다. 자극이 없으면 정신 못 차리는 머저리를 무심코 재활용했다가는 배탈 난다. 시작부터 남편의 정부에게 감금당한 채 뺨을 맞은 빙의 생활의 목적은 빤했다. [하루빨리 이 집구석에서 벗어나기.] [훗날 업보 빔 맞고 찾아온대도 절대 받아 주지 않기.] 그렇게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초야를 치르지 않은 게 문제라면, 오늘 당장 치르겠습니다.” 갑자기 막 나가는 남편 모드레드에, “뮤리엘. 나와 돌아가자.” 미련이 넘치다 못해 과도한 오라버니 디리고까지. 작품 초반부, 업보 쌓을 타이밍에 폭풍 후회를 시작해 버렸다! “당신들이 뭔데 내 거취를 두고 멋대로 싸워?” 일찍 후회한다고 그냥 봐줄 수는 없지. 다들 각오나 단단히 해 둬라. 나는 절대 안 참아 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