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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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니아의 아주 평범한 도망

“내 정부가 되어 혼전에 아이를 낳았다는 불명예를 감당할 수 있나?”  “제게 뭘 주실 건가요?” 남자의 눈이 부드럽게 호를 그렸다. 그의 눈에 어린 것이 미소인지 조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콤했다. “당신의 땅은 기근에서 벗어나게 될 거야. 약속하지.”   엘레니아 옐스베르크에게 도미니크 노트하브의 제안은 유혹적이었다. 가문의 영지가 있는 튜튼 지역은 3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해결해 준다면 무엇이든지, 어떤 역할이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덫인가. 기회인가. 엘레니아는 애써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 “숨기는 게 많은 남자지, 거짓말도 아주 잘하고.” 도미니크와 결혼한다던 황녀는 튜튼을 방문하여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도미니크가 보여 주는 다정함에 점차 빠져들면서도 엘레니아의 마음에는 옅은 의혹이 번져 간다. 계약의 내용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고.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겠죠. 사람의 입이란 믿기 어려운 거라서.” 엘레니아는 도미니크가 맥락 없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 엘레니아에게 남은 것은 도망뿐이다.

메리웨더 부인, 거기서 끊으시면 어떡해요!

사교계 데뷔를 위해 소도시에서 올라온 클레멘티나 린튼은 왕국 수도 랭폴에 입성하자마자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작은…… 아니, 사실은 작지 않은 문제가 있어.” 사교계의 유명 인사이자 마녀의 피가 섞였다는 왕국 최고 미녀, 아일라 메리웨더 백작 부인에게는 본인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는데……. 하나. 그녀의 눈에 누군가의 애정 행각이 발각되는 순간, 시간이 되돌아가 버린다는 사실. 둘. 메리웨더 부인 본인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 거기다 하필 메리웨더 부인은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지대하다. 엿듣기는 기본. 훔쳐보기는 옵션. 걸핏하면 되돌아가는 시간에, 수도의 사교계는 미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이 한 번 되돌려질 때마다, 메리웨더 은행 계좌에 메리웨더 캐시가 적립이 돼요.” “그게 뭔데요?” “돈하고 비슷해요. 실체는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거래가 되기는 하죠. 요즘 그게 가격이 꽤 오른 덕분에 수입이 쏠쏠하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해 주는데……” 사교계에서 잔뼈가 굵은 어느 부인이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살거렸다. “이 일로는 절대, 메리웨더 부인에게 가서 묻거나 하면 안 돼요.” “왜요?” “텅장, 이라고 들어 봤어요?” “네?” “메리웨더 부인에게 가서 입을 여는 순간, 계좌에 있던 캐시가 그대로 날아간다고. 몽땅.” *** 수시로 돌아가는 시간이 국가 중대사에 번번이 초를 치게 되면서, 수도 사교계를 휩쓰는 메리웨더 캐시 광풍을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국왕 전하의 특명이 떨어졌다. “아무쪼록 잘 부탁해요, 미스 린튼. 말했듯이 아주 중요한 날이거든요.” 일확천금이 탐나기는 해도 대체로는 도의와 의리가 중요한 똘똘한 데뷔탕트 클레멘티나와, 국왕 전하의 최측근이자 어쩐지 이 사태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랭폴 사교계 최고 미남 다니엘 밴그로프트 백작은 사고 예방을 위한 모종의 안전 활동, 특수 대작전에 돌입하는데……. 수시로 시간이 되돌아가는 도시, 활기와 즐거움(이라 쓰고 환장이라 읽음)이 넘치는 왕국 수도 랭폴에서의 좌충우돌 대환장 사교 시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