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파멸시킬 호구로 사느니 차라리 악녀가 되겠어.’ 마도구 제작자로 이용당하다가 억울하게 죽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이번 생엔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가 갖고 싶은 남자를 가지리라. 카샤는 그래서 그를 선택했다. 색욕의 저주에 걸린 성기사 리온. 회귀 전 삶에서 그녀의 첫 번째 희생양이자, 그녀가 동경했던 남자. 그런데 그의 욕구를 다스릴 수 있으리라는 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난 분명 경고했어. 내게서 도망치라고.” “리온…!” “그러니 이건, 반쯤은 당신 책임이야.” 그가 헐떡이며 애원했다. “도망치지 마, 카샤. 날 혐오해도 좋으니.”
“키스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지요.” “……!” 데뷔탕트를 앞둔 미운 오리 백작 영애 이슬라 알란디스. 변태 공작과의 정략결혼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머지, 귀족들의 결혼 시장에서 스스로 남편감을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그토록 경멸하던 귀족들의 유흥인 ‘키스 게임’을 이용해서라도 말이다. 순진한 얼뜨기로 보이기 싫은 그녀가 도움을 청할 대상은 한 사람뿐. 거의 유일하게 신뢰하는 존재인 집사 제이드다. 그러나 그녀의 부탁을 들은 그는 너무나 낯선 눈빛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집어삼킬 듯 시커먼 짐승의 눈빛 아래, 그녀는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나고 말았음을 예감하는데. * “하아.” 첫 키스가 선사한 황홀한 욕망에 취한 것도 잠시.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 혼담으로, 그녀는 귀족 영식인 마르텐과 결혼을 하게 된다. 헤아리기 힘든 혼란과 불안에 휩싸인 그녀에게, 제이드는 어두운 눈빛으로 이별을 고하는데. “당신의 남편에게 부탁해 나를 그 집으로 데리고 가, 날 데리고 뭘 하실 참입니까, 아가씨?” “…뭐?” “날 당신의 정부로 삼기라도 하실 겁니까?” “제이드!”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그는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데. * 그리고 7년 후. 몰락한 집안의 딸로 이혼 재판정에 선 이슬라 앞에, 사라졌던 그가 다시 나타난다. “이슬라 라렌느 지아니노가 마르텐 오스틴 지아니노에게 제기한 이혼 소송의 재판을 시작하오.” 이혼 재판의 재판관이자 집안의 원수인, 고위 귀족 아스트리드 공작이 되어. “왜, 왜 돌아왔어? 너도 나랑 한번 자 보고 싶기라도 한 거야?” “…굳이, 못할 것도 없겠지요.” 다른 색깔의 눈동자에 완전히 다른 눈빛을 한 남자. 그는 정말, 이슬라의 첫 키스를 훔친 그 제이드가 맞을까?
‘너는 다 잊어. 네 복수는 내가 할 테니까.’ 죄수의 딸로 태어나 용병단장 자리에까지 오른 식민지 모탈랜드의 실세, 새디 앰브로즈. 잃어버린 기억에 관한 비밀을 품고 입성한 황성에서, 뜻밖에도 그녀의 앞길을 막아서는 남자를 만났다. “검증되지 않은 무리에게 제국의 안전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브리태니아 제국의 해군 대령이자, 새디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들 에이든 블랙모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들한텐 절대 안 뺏겨.’ 그러나 결국 새디는 그와 원치 않는 공동 작전을 수행하게 되는데. “가, 새디. 복수는… 내가 한다고 했잖아.” 지독하게 오만하고 차갑던 남자가 술에 취해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는 새디의 잃어버린 기억에서 대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걸까? “널 다시는 볼 수 없어 죽고 싶으면서도, 반대로 그 지독한 그리움이 날 살게 했지.”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의 눈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머리가 아닌 가슴은, 그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