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루
박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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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연궁의 은밀한 밤

“그대는 내 여인임을 잊지 마라.” 따뜻한 어느 봄날 매화 꽃잎과 같이 날아든 사내가 그녀에게 한 첫마디였다. 방탕한 호색한이라 소문난 진헌 대군,이운.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차가운 목소리만큼이나 서늘했다. 은설이 혼인해야 하는 진헌 대군은 그런 사내였다.  하지만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은설은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 살고 싶었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진헌 대군이 또 다른 지옥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운연궁으로 들어왔건만. “지금 이곳에서 초야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 여인이 되어 주세요.” “부인이 처음이라고 하면 믿어 주시겠습니까?” 집착과도 같은 그의 고백은 지옥이 아니라 따뜻한 봄 햇살이었다. 운연궁의 은밀한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허수아비 신부

“나와 혼인하고 허수아비 신부가 되어주면 된다. 그것이 내 조건이다.” “계약이 끝나는 날 떠날 수 있게만 해주시면 시키는 일 뭐든 하겠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진안군의 아내가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무엇도 바라면 안되었다. 그의 마음까지도. . . . “제 마음이 서방님께 위안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왜…… 아무것도 묻질 않지.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궁금합니다. 이현이라는 사내에 대해서 궁금한 게 아주 많습니다. 근데, 여쭈면 대답해 주실 겁니까?” 시작은 계약 혼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진안군, 이현.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전하의 은밀한 유혹

“전하의 유혹은 언제나 치명적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바란 적 없었다. 부용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세자빈 은우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 부용은 난봉꾼인 안현군과 혼인하기로 결심했다. “한부용, 지독하고 끔찍한 계집. 혼인 전에 반드시 죽여 버린다.” 설령, 그가 저를 죽이고 싶어 할 만큼 싫어하더라도. 그러나 혼인 전, 안현군은 사고로 기억을 잃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날카롭던 말은 다정함이 되었고, 무관심은 집착으로 바뀌었다. 낯선 그에게서 느낀 건 잔인함이 아닌, 온기였다. 절대 마음 주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따스해진 그의 눈빛에 부용은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기억을 잃은 것이…… 맞습니까?” 부용과 결혼한 사람은 진짜 안현군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가짜였다. “매 순간, 그대를 향한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숨결 속에 담긴 감정만큼은 어떤 진실보다 뜨거웠다. 가짜임을 알면서도, 마지막 고백 앞에서 부용은 끝내 그의 손을 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