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홀대와 병약한 몸을 견디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애정을 얻기 위해 노력해 봤자 그는 결국 정해진 운명의 상대에게 갈 것이고, 체이르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희망을 찾지 못한 체이르는 남편의 눈을 피해 접경 지역의 눈보라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늦지 않아 다행이군.” 후련한 죽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위기에 처한 그녀를 재주 좋게 구한 남자가 있었다. 체이르와는 제법 안면이 있는 남자였다. ‘난 결국 죽지 못했구나.’ 살아 있음에 실망하던 것도 잠시, 상상해 본 적 없는 놀라운 일이 체이르에게 벌어지는데……. “서명이라고?” “예. 카일룸 대공 전하의 전 재산에 대한 권리 양도서입니다.” 그날 이후 남편이 변했다. “주제넘는 짓 하지 마, 체이르 에시토. 이런다고 내가 감사 인사라도 할 것 같나?” “오늘은 북부치고도 추운 날씨야, 체이르. 망토 한 장 걸치고서 남편을 안달 나게 할 심산이었으면 붙잡힐 각오도 해 두었어야지.” 밀어내고 폭언을 퍼부을 때는 언제고 전 재산을 주겠다질 않나, 마음을 녹일 듯 다정하게 체이르의 허리를 감싸 안기까지. ‘꼭 나를 잃고 후회한 뒤의 그라도 된 것처럼…….’ 무언가 이상했다. 마치 남편이 둘이 된 것만 같다고, 체이르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황당무계한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공포게임 속 민폐 조연의 몸에 빙의했다.악신의 신탁밖에 듣지 못하는 가짜 성녀는 진짜가 나타날 때까지 민폐만 끼치다 남주의 손에 죽는다.‘아무튼 날씨를 알려 주면 된다 이거지?’다행히 나는 신탁 없이도 예언을 내릴 수 있었다.예언이 맞아떨어지자 언제 나를 무시했냐는 듯 사람들의 태도가 공손해졌다.괘씸하긴 하지만 재난이 닥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진짜 성녀가 나타날 때까지만 버티자!* * *눈앞의 밸붕 선택지도, 호감도 대신 다른 게 오르는 것도 불안하다 싶더라니내 입에서 떠나겠다는 말이 나온 순간 제국이 발칵 뒤집어졌다.“놓아 드리기 싫습니다. 계속 제 품에 있으십시오.”만인에게 다정한 성기사가 지독한 소유욕을 드러내고,“이 몸 전용 모자걸이가 가긴 어딜 가.”약혼자는 트로피 신부에게 과할 정도로 집착하질 않나,“누가 내 친남매라고?”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싸가지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뒤,“누나. 나 버리지 마.”미친 듯이 후회하기 시작했다.진짜 성녀도 나타났겠다, 나한테 볼일 없잖아.실컷 괴롭혀 놓고 이제 와 왜들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