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솔렛, 어머니께서 너를 나에게 상속하셨단다.” 이솔렛 하퍼가 신세를 진 공작가에서 독립한 지 7년. 공작 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라며 불쑥 나타난 도련님은 기억 속 모습과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고,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저택에서 독립한 이유를 또렷이 기억하기에 이솔렛은, 유언장을 토대로 그녀를 상속받았다는 율리안의 의중을 도통 알 수 없다. 젊고 아름다운 공작과 수도의 여배우. 흔한 삼류 소설 속 관계로 남고 싶지 않은 이솔렛은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이 상속 관계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 * “책임. 이솔렛,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책임이라고 생각하니?”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율리안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잔잔했다. 비로소 이솔렛은 그가 낯설었다.
‘도련님 집에는 능소화가 워낙 많았지. 거긴 양반집이었으니까.’나이가 들수록 집착하는 과거는 미련이 남아서일까.그룹 후계자를 정할 생각 없이 옛날을 추억하기만 하는 회장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주건영은 세현동으로 향한다.느리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 흔들리는 능소화가 끔찍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여자.여수화는 땅을 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러나 주변을 둘러싼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주건영은 문득, 이 여자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땅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나와 연애를 합시다. 기한은 내 할아버님이 속아 넘어갈 때까지.’말간 얼굴이 자신을 본다. 반 억지로 계약을 받아들인 얼굴은 서늘한 여름 그림자를 닮았다.오랫동안 한곳에서 살았다는 여수화가 정말로 양반집 아가씨라면 자신은 무엇쯤 될까.어쩌면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쯤.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사생아라는 이유로 고아원의 좁은 탑에 갇혔던 소년을, 엘제를 기억한다.“우리가 어디서 본 적이 있나?”비록 징집된 전쟁터에서 기억을 잃은 채 돌아왔다고 해도. 여전히 엘제는 그를 지나칠 수 없었다.오직 복수를 위해 버텼던 전쟁터는 그에게 트라우마를 남겼고, 잠 못 들던 수많은 밤이 엘제의 존재 하나만으로 편안해졌다.“나에게는 옆에 누워 함께 잠들 사람이 필요해.”“저는 그런 여자가 아니에요.”“그래. 나도 그런 건 원하지 않아.”여자는 길거리에 떠도는 여자라고 하기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이야기를 해 보자 엘제. 왜 네가 익숙한지 나는 알아야겠거든.” ……이 여자를 사랑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아가씨가 사라졌다!약혼자의 소식을 듣고 가출한 아가씨를 찾기 위해 수도로 떠난 마렌.시작부터 살인사건에 휘말린 마렌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안녕 박새 양.”자유로운 천재 탐정 단테 오스왈. 그는 아가씨를 찾아줄 수 있을까?아가씨의 뒤를 쫓는 마렌의 주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체불명의 사건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왜 이리 쉽게 퍼질까요?”“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지.”단테는 황혼에 물드는 거리를 활발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시를 읊듯 이야기했다.사라진 사람을 떠올린다. 욕심과 절망으로 뒤덮인 수도에서 찾아야 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나는 중얼거렸다.“……아가씨는, 잘 계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