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쉬
해쉬
평균평점 4.00
사나운 짐승은 전남편을 물어버린다

또 한 번 삶이 시작되었다. 지긋지긋한 인생에는 미련이 없다. ‘차라리 네가 날 다시 해방시켜 준다면 어떨까.’ 그래서 찾아갔다. 나를 삼키고, 내 피와 살을 취한 녀석에게로. 그런데……. “이게…… 뭐지?” 대지를 공포로 물들이던 녀석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작은 힘 하나만으로도 짓뭉개질 것 같은 생명체가 곧게 응시해 온다. 곧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채로. * * * “저것이지? 너를 버린 것이.” 멀어지는 알렌의 등을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어떻게 알았니?” “보았다. 시간의 경계에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까지 들켜버렸다.  그래서 착잡해진 기분으로 아이의 눈을 가렸다. “나쁜 건 보는 거 아니야.” 좋은 것, 행복한 것만 보여주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용의 시간은 무한히 길고 내 시간은 유한할 테니까. 그것이 심장까지 내어주며 나를 되살린 너에 대한 보답이니까. 잠시 침묵하던 루키안이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말한다. “저것을 죽여주면 되겠느냐?”

변두리 악녀의 사정
4.0 (1)

“너에게 청혼서가 들어왔단다.” 노리스 남작가의 골칫거리, 라일라 노리스. 핍박과 괄시가 일상인 그녀에게 어느 날 한 줄기 희망이 날아들었다.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그러나 삶은 그녀의 의지대로 흘러간 적이 없다. “처녀성은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애는 남자를 모르거든요.” 낯선 얼굴로 낯선 칭찬을 읊어 대는 계모의 말과, 흡족한 미소로 상품을 살피는 듯한 노회한 눈길. 그날 라일라는 자신이 신부로 팔려 가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도망…쳐야 해.” 라일라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를 향한 반항을 마음먹었다. 그리고 구원처럼 나타난 한 남자. “갈 곳은 있나?” “…아뇨.” “그럼 이렇게 하지. 나와 거래하는 걸로.” “거래…요?”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 않나? 내가 그 기회를 주지.” 저항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 “어떤가? 날 위해 악녀가 되어 보는 건.” 장난 같은 운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