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으니 기다리겠다는. 아직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애써 외면했는데, 내 앞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를 살려 달라며 울고 애원했다. 신에게 간절한 목소리가 들릴 만큼. 나의 절실한 소원이 이루어지던 날, 너는 당연하게도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괜찮아, 이제는 내가 지켜 줄게.” 단지 너를 지켜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간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진다. * * * “당신에겐 제가 그저 놀기 좋은 상대였던 겁니까?” 헛웃음을 흘린 그는 제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이내 원망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발 울지 말고 뭐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분명 덴시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랬는데 지금 그녀는 그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이성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듯했다. 그가 멀어지자 비아레는 희뿌연 시야 속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내가 너한테 다가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