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오직 아르네를 살리기 위해 죽었다. “꼭 다시 와.” 응석이라고는 부리지 않던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한 부탁이었다. 대공인 세드릭이 마물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이후 대공성에 쳐들어온 것은, 아르네의 아버지였다. 손녀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앗아 가며 대공성에 전해져 내려오는 악마의 힘을 빼앗고자 했다. 아르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악마와 거래했다. “내 가족을 돌려줘.” * * * 과거로 돌아온 아르네의 목표는 한 가지, 딸아이와 다시 만나기 위해 세드릭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심하기 짝이 없던 세드릭이 이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가 안아서 데려다주길 바라나?” 능청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고, 스스럼없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로 모자라, 제국의 드레스란 드레스를 죄다 마차에 실어 보내기까지 한다. 이런 거 말고 결혼이나 하자고 말해야 하는데……. “그대는 대체 뭘 믿고 나를 흔드는 건가.” 세드릭이 아르네의 발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당겼다. 아르네가 중심을 잃고 세드릭의 목덜미를 끌어안자, 그의 붉은 눈동자가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