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댓바람부터 재수 없는 얼굴을 본 탓에 속이 좋지 않았다. 한동안은 그 잘난 얼굴이 브라이튼의 모든 신문 가판대를 차지하겠지. “보셨어요? 랭커스터 공작이 변경에 숨어든 반역자를 몰살하고 어제 막 귀환했대요.” “…….” “멋지지 않아요? 폐하께서 시키신 일은 뭐든 완수해내는 사냥개. 잘난 얼굴에 신비한 능력까지 가진….” 개자식이지. 가족, 작위, 영지, 그리고 간신히 얻은 직업까지. 셜린은 모든 것을 앗아 간 빌어먹을 가문의 젊은 수장을 머릿속에서 벅벅 지워냈다. 그렇게 다시는 엮일 일이 없기를 바랐다. 바람이 무색하게도, 집도 직장도 잃게 된 날 그와 마주쳐버렸지만. “금전적인 건 필요하지 않으니, 이건 어떻습니까?” 새로운 집과 직장에 대한 대가는 수상했다. “하루에 십 분씩 제게 손을 내어주는 겁니다.” 인생이 탄탄대로일 줄만 알았던 랭커스터 공작은 능력을 대가로 지독한 두통에 시달린다. 해결책은 무력화 능력을 가진 셜린과 접촉하는 것. “돈보다 훨씬 나은 대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대는 어떻습니까?” 모두가 선망하는, 역겹도록 잘난 얼굴을 노려보았다. 원수 같은 첫사랑과 매일같이 마주하게 될 시작점이었다.
“나를 사랑하긴 합니까?”곧 죽어버릴 것만 같은 눈이 그녀를 붙들었다.착각이겠지. 에드먼드는 단 한 순간도 그녀를 사랑한 적 없었으니까.오만한 사내였다. 고상한 언동의 속내는 무도했다.그렇기에 로렌느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에드먼드를 사랑할 일이 없을 거로 믿고 결혼 계약서에 서명했다. 얼마나 순진했던가.오만한 건 결국 로렌느 카터 자신이었다.이해할 수 없지만 로렌느는 결국 에드먼드를 사랑하게 되었고, 에드먼드는 그녀와 결혼한 대가로 목숨을 위협받았다.그러니 떠나야 했다. 에드먼드를 더 사랑하게 되기 전에. 그리하여 떠나려는 마음이 닳아 사라지기 전에.진저리나는 사랑이 끝내 그의 숨을 앗아가기 전에.“……사랑하지 않아요.”“로렌느 스펜서는 에드먼드 카터를 사랑해야 한다. 계약 조항을 잊은 건 아니길 바랍니다.”“잊지 않았어요.”“…….”“노력했어요. 노력했는데…….”사랑하지 않으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대체 언제부터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걸까.“아무리 노력해도 저는 계약을 지킬 수 없어요. 그러니까…….”당신을 살리기 위한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고, 그러니 이건 당신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라고.차마 하지 못한 말을 혀 밑에 짓뭉갰다.그렇게 구역질하듯 말을 끄집어냈다.“이혼해요, 우리.”나약한 그녀는 더는 그의 죽음을 견뎌낼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