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우연한 만남은 특별했고 사랑은 당연했다. 화장실에서 마주쳤던 그때였는지, 그게 아니면 최루탄 터지는 거리를 손을 잡고 뛰던 그 순간이었는지, 또 그것도 아니면 연립 주택 반지하에서 얼굴에 손수건을 묶어 주던 그 순간이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너의 첫사랑이 되어 줄게.” 장난처럼 던진 그 말에 그가 정말 첫사랑이 되었다. 누군가 사랑을 말할 때 누군가는 우정을 지켰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녀 앞에 첫사랑이 다시 나타난 순간 그 우정은 깨졌다. “나와 정말 결혼할 생각이야?” “응.”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어?” “열일곱. 너와 만난 처음 그때부터.” 우정을 가장한 깊은 애정은 이미 오랜 시간 차곡히 층을 쌓아왔다.
어쩌다 보니 시골 여인숙 주인이 되어버린 스물아홉 소원.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 틈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맞선 자리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상대가 전 직장 동료이자 소원의 시골 중고등학교 선배인 이시현. “맞선 상대가 너라서 좋아. 김소원.” 시현의 다정한 눈빛과 말투, 그게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같은 배경과 같은 추억을 공유한 이유로 마음이 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제대로 다 담기도 전, 4년 전 소원에게 뜬금없이 고백했던 마루가 나타났다. 여인숙에 죽치고 앉아 사사건건 소원의 일상에 간섭하며 온종일 붙어 다니니 정이 드는 건 역시나 당연. 동생이라고만 생각했던 마루를 향한 감정에 이상이 생겼다. “마음을 확인하고 싶으면 날 안아. 그럼 알 수 있어.” 마루가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 “누나 지금 헷갈리잖아. 나한테 향한 마음을 품고 형한테 가는 어리석은 짓 하지 말고 지금 확인하라고.” 하얗게 눈이 내리는 겨울. 두 남자로 인해 소원의 일상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저는 돈이 좋아요. 한지운 씨는 여자가 좋지요?”“그래요. 난 여자가 좋아요. 그래서요?”“저와 결혼해요. 한지운 씨.”“사랑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결혼하자는 말은 처음이라 나름 짜릿하군요.”기가 막힌 듯 뱉어낸 소리 없는 웃음.지운의 느린 시선이 여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곡차곡 훑어내렸다.대뜸 뱉어낸 결혼하자는 말에 짜릿하다니한지운이란 인물은 분명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여름의 입술이 다시 떨어졌다.“어때요. 저와 결혼할래요?”보육원 출신으로 가진 거라곤 낡은 꽃 하우스가 전부인 여름.돈이 전부였던 여름이 꽃 배달 대표 지운과 만나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배워가는 이야기.<[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개정된 도서입니다]>
한 소녀가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그 아버지의 빈자리를 이기지 못해 술에 의존하는 엄마를 보살펴야만 했던 소녀. 희망보다 절망을 느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은 삶이 지나갔다. 그렇기에 그저 살았다. 보호를 받아야 할 마땅한 나이에 보호자가 되어버린 소녀에게 감정이란 건 사치였으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또래와 다른 시간을 걸어야 하는 소녀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만 갔다. 그 피폐해진 삶에 결국 주저앉고야 싶어졌을 때쯤. 누군가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화낼 줄 모르면 소리라도 지르든가, 소리 지를 용기 없으면 도망이라도 치든가.’ 절망의 끝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눈은 오직 저를 향한 것이었다. 올곧게 그리고 다정하게. 소녀가 소년을 사랑하게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소녀가, 그리고 소년이 성인이 되어서도 둘 사이는 그저 친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다정했던 눈빛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적이 없던 것처럼. 그런데 한 남자가 그사이에 우뚝 섰다. 남자의 다정한 올곧은 눈은 오직 저를 향했다. 어째서…. 어째서 남자는 저에게 손을 내민 소년과 너무도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