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란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두 사람의 관계, 해도에 대한 은린의 감정까지도. “이 순간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버릴 겁니다.” 한때 제자였던 녀석의 도발에 가슴으로 큰 파도가 몰려왔다. “……저는 전무님을 남자로 보지 않습니다.” 더는 다가오지 못하도록 다시 한번 분명한 선을 그었는데. “그럼.” 상대는 너무도 쉽게 그녀의 벽을 허물어 버렸다. “보지 말고 느껴요. 내가 어떤 남자인지.” 동요하는 눈동자를 읽은 그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거대한 그림자는 깊었고, 허리를 그러쥐는 손길은 집요했다. “온몸으로 기억하란 말이야. 나를 떠나서는 감히 숨도 쉬지 못하게.” 거스르려 할수록 거세지는 파도. 빠져나오려 할수록 잠겨 드는 바다. 강해도는 격랑이었다. *** “좋아요. 모든 게.” 이렇게 예쁘게 웃을 줄 아는 아이였구나. “선생님이 놀아 주셔서.” 어쩐지 마음이 지르르했다. 이 애 앞에서는 늘 그랬다. 모든 게 생경했다. 제 반응도, 기분도, 살결을 휘감는 서먹한 공기도. 시장 앞 골목과 골목 사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걷는 행인들 사이로 둘은 그렇게 잠시간 앉아 있었다. 좋았다. 파란 하늘과 뜨거운 볕 아래. 파라솔이 만들어 주는 적당한 그늘에 숨어. 순하게 부는 봄바람을 맞는 이 순간이. 너와 함께하는 이 봄날이. 그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