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까지 태워줄까?” 10년 만이었다. 나연은 마지못해 끌려간 동창회에서 첫사랑 유건우와 재회한다. “누군지는 몰라도 너한테 시집가는 여자는 좋겠다.” “그게 너란 생각은 안 해봤어?” “혹시 술 마셨어? 왜 그런 소리를 해?” “내 말이 뭐가 어때서?” “나 이혼했어.” “알아.” 스무 살 때 같았으면 말 한마디 못 붙였겠지만, 지금은 이전과 상황이 다르다. 나이 서른, 이혼녀, 계약직. 한 번 이혼을 경험한 그녀는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으니까. 건우와 하룻밤을 함께 보낸 후, 결국 나연은 현실을 직시하고 선을 긋기로 한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너와 나는 모르는 사이야.” 기껏 마음을 갈무리했다고 생각했건만 정작 다음 날, 정직원 전환을 심사하러 나온 사람 중 익숙한 얼굴이 있는 걸 보고 나연은 아연해진다. ***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똑똑하네, 권나연. 회사에서는 네가 원했던 것처럼 모르는 사이로 지내줄게.” “회사 밖에선?” “나랑 만나.” “뭐?” “만나달라고 했지, 사귀자고는 안 했어. 그러니 괜히 흥분하지 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연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건우가 발을 움직여 의자를 좀 더 가까이 끌어왔다. “내가 원할 땐 언제든 널 만날 수 있어야 해.”
대제학의 차녀 해륜은 영의정 민유공의 환갑을 맞이하여 몇 달이나 연습에 매진한 거문고 연주를 선보인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다는 기쁨도 잠시. 고고한 자존심을 건드리는 오만불손한 사내, 태신을 발견하는데. “그리 칭찬할 솜씨는 아닌 것 같았네.” “그러는 댁은 얼마나 잘났길래 뒤에서 남의 흉을 보십니까.” 오해와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난 여인과 손을 잡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니 책임져야 한단 생각은 할 필요 없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깟 손 한 번 잡았다고 해서 책임져 달라 매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 무감한 얼굴로 차가운 말만 하던 사내가 어쩌다가. “……그대를 보면 심장이 요동치는 이 감정을 연모라고 한다면, 난 그대를 아주 많이 연모하고 있소.” 이런 말까지 제게 하게 된 것인지.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이 이상하게도 화끈거리고,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장옷을 바투 잡는 손에 집요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저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에 해륜은 점점 더 그를 믿어 보고 싶어졌다.
대제학의 차녀 해륜은 영의정 민유공의 환갑을 맞이하여 몇 달이나 연습에 매진한 거문고 연주를 선보인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다는 기쁨도 잠시. 고고한 자존심을 건드리는 오만불손한 사내, 태신을 발견하는데. “그리 칭찬할 솜씨는 아닌 것 같았네.” “그러는 댁은 얼마나 잘났길래 뒤에서 남의 흉을 보십니까.” 오해와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난 여인과 손을 잡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니 책임져야 한단 생각은 할 필요 없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깟 손 한 번 잡았다고 해서 책임져 달라 매달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 무감한 얼굴로 차가운 말만 하던 사내가 어쩌다가. “……그대를 보면 심장이 요동치는 이 감정을 연모라고 한다면, 난 그대를 아주 많이 연모하고 있소.” 이런 말까지 제게 하게 된 것인지.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이 이상하게도 화끈거리고,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장옷을 바투 잡는 손에 집요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저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에 해륜은 점점 더 그를 믿어 보고 싶어졌다.
“치마를 더 걷어 보는 건 어때?” 먹는 것 하나, 입는 것 하나 마음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남자조차도 집안에 도움을 줄 이청 그룹의 외동아들이자 이청 건설의 상무, 류태화를 꼬셔 내야 한다 어릴 적부터 세뇌와 같은 교육을 받은 하경이었다. “그러면 넘어가 줄 마음도 있는데.” 그러던 중 하경은, 우연히 찾은 휴게실에서 ‘날 유혹하고자 여기까지 쫓아왔냐’ 비꼬는 태화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만 경악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태화가 큰돈을 투자한 영화의 여자 주인공이 그의 사촌이자 유부남인 남자와 진득한 불륜 관계를 내보이는 게 아닌가. “아까 그 두 사람. 스캔들 터지면 신하경 씨가 책임져.” “제가 왜요?” “두 사람 관계 아는 건 나랑 너밖에 없잖아.” 이내 비밀을 지켜 주는 대가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라는 태화에……. “우리 결혼해요. 원하는 거 말해 보라면서요. 제가 이 결혼을 원해요.” 언제나 소극적인 태도로 살아온 여자로선 난생처음 낸 용기였다. 숨 막히는 가족에게서 벗어날 기회라 생각해 붙든 남자가 도리어 제 세상을 흔들 걸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