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마주친 두 사람. 남자의 눈빛은 온기를 잃었고, 여자는 희망을 잃었다. “너,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어떡할래?” 남자는 다시 한 번 여자의 동아줄이 되기로 했다. 시오스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나강해. 그가 태어나 두 번째 저지르는 미친 짓이었다. 그 두 번 모두 홍세진 앞에서만 벌어진 일이었다는 걸,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은혜를 좀…… 갚아 주셨으면 해서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들이닥친 빚쟁이들을 피해 서울로 도망치듯 상경한 세진의 앞에 거짓말처럼 나타난 강해는 그녀의 유일한 동앗줄이었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며.” “…….” “내가 도와줄까?” 강해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 순간 마주친 남자의 눈빛에 여자는 깨달았다. 그에겐 어떤 자비도, 관용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걸. “사인해.” 모든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덫에 걸린 먹잇감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그냥 내 옆에 있어.” “…….” “내 옆에서 숨 쉬고, 밥 먹고, 자. 그게 진짜라고 느껴질 때까지.” 가짜란 걸 알면서 심장이 떨렸다. 그렇게 불순한 계약이 시작되었다.
“친구는 한번 해 봤으니까, 이번엔 애인 어때?” “그걸 말이라고 해? 나 약혼자 있어.” 그녀의 도톰한 입술 끝에 남자의 뜨거운 손길이 닿았다. 그가 말없이 입술을 더듬거리자 그녀의 잇새에서 옅은 숨결이 흘러내렸다. “…너 취했어, 지승현.” “전혀.” “아니면 미친 거겠지.” “그럴지도.” 10년 만에 나타난 그는 그런 것 따윈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태연하기만 하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그녀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줄도 모르고. “더 이상 10년 전의 그 덜떨어진 새끼가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다 들어준다고?” “기꺼이. 난 네 개잖아, 초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