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안
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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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친 구원자

“정신 똑바로 차려. 미친개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대잖아.” 견이 정서의 손끝에 입을 맞췄다.  이럴 땐 영락없는 아이와 같은 얼굴이 된다. 혀를 내어 살살 조심스레 검지를 핥던 견이 고개를 들어 정서를 올려보았다. 잘 깎은 조각 같은 얼굴이 기묘할 정도로 처연했다.  우습다. 들끓는 욕망이 그 새에 숨어 있으면서. 정서가 고개를 숙여 견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  그게 사랑이든 관계든.

죽은 남편이 문을 두드릴 때

“남편 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수려한 외모를 지닌 천재 피아니스트, 신비주의 재벌 3세, 날카롭고도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예술가. 사람들은 그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지만. 나에게 그는 그저 도피처일 뿐이었다, 지긋지긋한 가족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오죽 스캔들이 없으면, 사실은 성불구가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던 그와 파격적 결혼 이후 일 년. “이번 연주회 마치고 잠깐 대화할 수 있습니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가 할 말은 뻔했다. 이혼하자는 것이겠지. 그의 매니저의 불찰로 나는 그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다이아 반지까지 샀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한쪽이 원한다면, 그 즉시 이유를 묻지 않고 이혼할 것. 이 계약 결혼의 성립 조건 중 하나였으니, 따르지 않을 마음은 없었다. 다만 예상보다는 빨랐다는 생각이 들 뿐.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죽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남편이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었다. 그러자 세간은 다시 이 죽음에 주목했다. '유산을 노리고 아내가 죽였다.' 오해 속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 그에 대한 책을 쓰자는 한 청년이 찾아왔을 무렵, 죽었던 남편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돌아왔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남편이 죽고 나서야 사랑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