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말이야. 두 종류의 남자가 있어.” 그는 섹시했으나 퇴폐적이며,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곁을 쉽게 내주지 않아 사람을 안달하게 하는 재주를 가졌음에도 무심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정의 내리는 남자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네 몸을 탐하는 새끼.”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경직된 듯 멈췄다가 이내 여자에게 향했다. 가치를 평가하듯, 스위치가 켜진 수십 개의 눈이 여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정작, 무리에게 먹잇감을 던져 준 당사자는 눈길 한번 내주지 않았다. “두 번째는 네 마음을 원하는 새끼.” 이번에는 야유가 터졌다. 지원의 시선이 백 이사의 눈으로 향했다. 술잔을 내려다보는 긴 속눈썹이 조명에 의해 그늘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사내새끼 데리고 놀 재주 있으면 네 몸만 탐하는 놈을 만나고, 그게 아니라면 네 마음을 원하는 놈을 만나.” 충고를 가장한 독액 같은 말이었다. 다른 이에게 하는 말이었으나 어쩐지 지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비수가 되어 날아오는 말이 그의 혀끝을 타고 허공에서 부서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하는 순간, 지원은 몸이 굳었다. 정중한 무관심 속에 피어 있는 성욕 짙은 눈동자. 자신을 벗어날 수 없게 옭아맨 바로 그 눈이 그녀를 향해 있었다.
은우가 죽었다.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나의 또 다른 ‘나’. 나는 쌍둥이 언니의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되고, 복수를 위해 은우가 되어 그녀의 약혼자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 “잘해요?” 내게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업무 전화만 해 대는 남자에게 내뱉은 첫 마디. “그거, 잘하냐고요.” 저급한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조태서의 발목을 붙잡아야 했다. “한 번에 임신시킬 수 있겠어요?” 그러니 나는 모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으나, 내 시선만은 잡아 두지 못할 이 남자를 이용할 거다. “남자는 된다면서요. 마음에도 없는 여자 안는 거.” 조태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던 여자의 맹랑한 말에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집요한 눈으로 그녀를 뜯어보았다. “출장 다녀온 사이에 골 때리게 변했네. 정은우.” 그는 팔짱을 끼며 커다란 몸을 의자 뒤로 편히 기댔다. 그렇지 않아도 큰 몸이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재밌네.” 조태서는 처음 이 자리에 나타났을 때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숨만 쉬는 인형인 줄 알았는데 말을 꽤 잘하네.” 무례한 말이 오히려 그의 흥미를 돋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