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소
김지소
평균평점
비명에도 음계가 있다

레밍턴 하워드. 이건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는 ‘하워드’라 불리고, 누군가에게는 ‘레미’ 혹은 ‘렘’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레밍턴 하워드.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레밍턴일 뿐인 레밍턴. 그를 좋아한 건 오래된 일이다. “다니, 나를 위해 네 아버지를 배신해.” 죄가 되는 사랑이 있다. 나의 사랑이 그러했다. “가여운 내 딸아. 너를 버리지 않는 것은 오직 나뿐이란다.” 아름답고 전지전능하신 나의 아버지. 위대하고 위대하신 나의 창조주. 내 죄는 그것이다. 두 주인을 섬긴 죄. “네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고 다시 내 발밑을 기어.” 나를 죽이고 싶어 하면서도 결코 죽이지 못하는 안쓰러운 너.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울고 빌고 매달려. 기분 좋았거든. 네가 날 애타게 쳐다볼 때마다.” “…미쳤구나.” “아직 너무 어려운 주문인가?” 내가 정말 죽음을 결심하면, 나보다 먼저 목매달아 죽어 버릴 너. 너는 알까? 그 모순이 나의 유일한 숨통이었다는 걸. “난 네가 지금 같은 얼굴로 나를 쭉 봐줬으면 좋겠어.” “…착각하지 마. 난 지금 널 끔찍해 하는 중이야.” “그래.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 “…….” “계속 그렇게 끔찍해 해. 내 옆에서.” 나는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들은 끔찍한 비명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들어주는 사람 없이 제각기 비명만 질러대는 지긋지긋한 유령들에 대해. 일러스트: 박캐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