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은 리디 웹소설에서 동일한 작품명으로 15세 이용가와 19세 이용가로 동시 서비스됩니다. 연령가에 따른 일부 장면 및 스토리 전개가 상이할 수 있으니, 연령가를 선택 후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변태다. 내가 변태라는 사실은 만 7세에 깨달았다. 미운 일곱 살의 육아가 귀찮았을 어른들의 사정으로 보게 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내 시청 반응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아주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히로인이 납치되는 장면에서 지르는 비명? 그건 남다른 정의감에서 우러나온 목청이 아니었다. “어떡해!” 너무 좋아서 지른 거지. “어떡해…….” 나는 바보다. 내가 바보라는 사실은 지금 깨닫는다. 나는 백은수가 언제 내 생각을 읽는지도 모르고 그 전에 읽는 건 맞는지, 보는 건지 듣는 건지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같은 팀 팀장이랑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을 뿐인데, 손끝을 스친 오묘한 정전기와 함께 내가 하는 모든 생각들이 그에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 생활은 180도 양상을 달리하고 마는데…. *** 양손을 고간 앞으로 모으고 조신하게 선 백은수. 불끈대며 나를 유혹하는 우람한 실루엣을 이 악물고 외면해 손을 맞잡았다. ‘은수 씨 혹시 초능력자세요?’ 식은땀에 젖어 축축했다. 쐐기를 박도록 하자. ‘백은수 바보.’ 꿈틀 움직인 백은수의 일자눈썹을 마지막으로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나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 주로 어두운 밤에 활동하고, 위아래 직선으로 움직이며,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다. 나는 예로부터 존재했다. 고대 움집에도 중세 궁정에도 있었지. 모두가 아는 그런 존재. “거지 같은 모기 새끼!!!!!!” 나는 모기다. “아니, 뭔데.” 모기였다. “뭐냐고, 누구세요?”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떨어지는 어느 여름밤. 나 모기, 인간이 되고 말았다. *** “아무튼 넌 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 니가 아직은 모르는 게 많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안 만나봐서 그래.” “아냐. 나 친구 있는데 청도가 더 좋다.” “다르다니까. 네가 왜 날 좋아하냐?” 자꾸만 부정이 이어지자 바다가 조금씩 불퉁해졌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툭툭 건드리는 바다의 입술이 점점 튀어나오고 있었다. “너도 나중에 새 친구들 생기고 뭐, 가족 같은 그런 사람도 생기고 하면 알겠지. 날 좋아한 게 아니었다는 것쯤…….” 청도가 흠칫 놀라며 하던 말을 멈췄다. 입을 꾹 다문 바다의 두 뺨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당황한 청도가 손등을 뻗으려 할 때였다. 바다가 수저를 내팽개치며 벌떡 일어섰다. “청도 여기에 나 버리려고 왔지?” “…뭐?” “피말순 할머니 집에 나 놔두고 갈 거지? 그래서 내 할머니 되는 거라고 했지?” 울지 말라거나,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게 물건을 던지면 안 된다거나. 청도가 뭐라 말을 고를 새도 없었다. 바다는 지붕이 무너져라 큰 소리로 와앙 울더니 펑! 모기로 변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백은결은 마치 내가 엄청난 인력으로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강의실을 가로질러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대뜸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 “…….” “나는 백은결이야.” 번트 엄버와 꼭 닮은 색의 눈동자 아래로 알 수 없는 눈물이 한 방울 가련히 흘렀다. 너무 이질적인 광경에 그 애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이었다. “나…….” 성큼성큼 다가와서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하던 그 애는 “너한테 반했어.” 그렇지 않아도 순탄할 것 같지 않던 내 학교생활에 폭탄을 던졌다. 스무 살의 어느 봄. 백은결이 내 인생에 등장한 첫날이었다. *** “내가 네 남자 친구잖아.” “계약직이잖아.” “그래도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지?” “…….” “……있는 거지?” 백은결이 말하는 정규직이라 함은, 남자 친구 역할 대행이 아니라 진짜 남자 친구. 렌터카가 아니라 자차. 곧 평범한 연애. 키스까지 해 놓고 발뺌할 생각 없다. 백은결에게 끌린다. 그렇지만 그와 진짜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무서우니까.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모든 연애는 구질구질하게 끝이 난다. 그것이 내가 부모님에게서 배운 진실이었다. 그러니 백은결이 내 남자 친구가 될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