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재수 없다.”“뭐가?”“너 원래부터 답 알고 있었지? 답지라도 봤냐? 그래놓고 네가 맞춘 척. 너 진짜 나쁜 애구나?”아엘라는 급격한 피로를 느꼈다. 이쯤에서 적당히 끊어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첫째, 교과서에는 답지가 없어. 선생님이 계시는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해. 둘째, 난 원래 재수 없고 성격도 나빠. 그러니까 나한테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이게 진짜……!”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녹스가 마구 짖으려는 그때. 돌연 풉, 하고 터진 웃음소리가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꽤 큰 소리에 다른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선생님까지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감히 수업시간에 쿡쿡대며 웃는 아이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숨을 삼켰다.“브리안 벨벳…….”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는 이번 신입생 중 가장 고귀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상황을 관전하던 선생님이 지휘봉으로 칠판을 탁, 쳤다. 삐딱한 자세로 서서는 브리안에게 시선을 보냈다. 무슨 상황인지 설명하라는 의미였다. 브리안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정중하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역량 차도 모르고 덤비는 꼴이 우스워서.”아이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비정령사인 쌍둥이는 정령사인 쌍둥이를 죽인다.” 예언은 틀렸다. 동생은 나를 죽이지 않았다. 동생의 목숨을 양분 삼아 피어난 물빛 머리카락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동생을 죽인 것은, 살아남은 나라는 사실을. 사랑받았기에 도망쳐야 했던 나는 스스로를 유폐하기 위해 보육원이라는 이름의 사육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라고 불러도 좋으니 제발 내 이름만은 부르지 마.”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나는 다시 그 비릿한 선혈이 튀던 백색의 검사장으로 송환된다. 끊어질 듯 이어지던 동생의 마지막 호명 속으로. 그곳에서 나를 닮은 두 괴물을 만났다. 부모에게 미움받기 위해 스스로의 살점을 찢어 증오를 기록하는 쌍둥이 형제. 선택의 여지도 없이 파괴된 나와 달리, ‘버려짐’조차 선택할 수 있었던 그들에게 나는 생경한 살의를 느꼈다. “내가 너희 부모를 죽여줄게.” 이것은 동생을 죽인 시스템을 향한 복수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죽어간 나의 낙원을 향한 조소인가.
“다정한 독이었어. 너를 위한 유일한 구원.” 동생의 숨을 끊자마자 찾아온 뒤늦은 기적. 식어버린 육신에 쏟아부은 신성력은 대지를 무너뜨리는 맹독이 되었다. 동생을 죽이고 세상을 망가뜨린 대죄인 유릴은 썩어가는 세계수 아래 유폐된다. 그 부패한 낙원의 중심에서, 자신과 닮은 파멸의 거울 ‘루’를 마주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용서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 매일 오후, 기억의 잔상 같은 하얀 우유를 버리며 마모되어 가는 두 사람. “우린 결코 용서받지 못할 거야. 그래서 우린 동류지.” 닿을 수 없기에 비로소 완벽해지는 죄악의 기하학. 부서진 낙원의 잔해를 수집하는, 지독히도 아름답고 처절한 유예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