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한 소설 속, 황궁에 어린이집이 새로 생겼다. 근데 첫 교사가 원작에는 언급도 없는 엑스트라인 나? 전생의 경험을 살려서 그저 먹고살고자 노력했을 뿐인데……. “흠흠-, 어쨌든 프레이야 선생님. 다음에 오도록 하죠. 이번에 브룬가에서 새로 나온 산딸기를 가지고 말입니다.” 황실 제1기사단장인 그론트 브룬. “저도 따로 오겠습니다. 이번에 들여온 화장품이 있거든요.” 황실 제2기사단장이자 무역 상단으로 황국을 사로잡고 있는 덴버 펜리르. “아, 저도 엘로디에 대해 상담할 게 있는 걸 깜빡했네요. 나중에 전서를 보내 약속을 잡도록 하죠.” 마탑에서 제일 강하다는 네브 세이블. “선생, 너무하군. 아이삭은 되고 난 안 되고?” 거기에 사람을 갈기갈기 찢는다는 아즈라엘 대공가 최고의 흑룡, 알렉 아즈라엘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학부모들 때문에 미치겠다! 나, 이 소설 속에서 잘살 수 있는 거겠지……?
넌 이제 도망 못 가. 제국 최고의 부와 명성을 가진 개국 공신 가문, 로젠탈 공작가. 난 그 공작가의 망나니이자 악역 엑스트라인 다프네 로젠탈 공녀에 빙의했다. 이왕 빙의한 김에 적당히 망나니 공녀 연기를 하다 공작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조용히 호의호식하려 했는데. “칼로스……?" 나의 최애 캐릭터 ‘칼로스 게르하르트’를 만나 버렸다! 좋아! 원작에서 베드 엔딩을 맞이한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지! 그렇게 그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지만……. “칼로스! 안에 있…….” “내 이름.” 어째 인생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며. “꺼져. 죽기 싫으면.” 그대로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아니, 행복이고, 뭐고……. 얘, 철벽이 너무 엄청난데?
대한민국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김다희. 눈을 떴더니 19금 소설 속 여주인공이자 황실 내 유일한 여기사인 케이틀린 헤스퍼가 되어 있었다. 기사단 회식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맥주에 얼큰하게 취해 버린 나는, 내 최애 캐릭터이자 직속 상사인 ‘존잘’ 남주 레오 루벨과 하룻밤을 보내 버렸다 상사와의 하룻밤이라니! 이대로 그와의 관계를 이어 나간다면,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소설 속에 발이 묶일 것 같아 열심히 그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처음엔 몰랐는데…….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군.” “케이틀린, 네가 어떻게 자라 왔고, 무엇을 좋아하고, 평소 너의 시선엔 무엇이 담기는지 궁금하다는 거야.”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 주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네 노력까지 내가 다 할게.” 레오는 그런 건 개의치 않다는 듯, 달콤한 말로 날 흔들어 놓는다. 서로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를 거부해야 한다는 건 잘 알지만 나 역시, 그의 진심에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 아니, 흔들리다 못해……. ‘그와 평생 함께하고 싶어.’ 케이틀린의 비밀과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 그리고 나와 레오의 사이를 음해하는 세력들 가운데. 과연, 우리는 서로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
“재밌네?” 발밑에 켜켜이 쌓인 얼음 결정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 기이한 온도에 몸을 움찔 떨자, 도율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 그건 지금 상관할 바가 아니고. 도율은 당장 눈에 보이는 초비의 행색에 속에서 끓어 오르는 무언가를 간신히 참으며 입을 열었다. “……이봐, 당신.” “예?” 초비의 멍청한 대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도율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 언제 씻었지?” 이게, 뭔……. 뜬금 없는 도율의 질문에, 초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 * 초비는 들고 온 물병을 열어 양 손을 적시고, 품 안에 있던 작은 공병을 꺼내 자신의 손에 툭툭 덜었다. 의문스럽다는 도율의 눈빛에, 초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이거 소독약이에요.” 야무지게 할 말을 내뱉은 초비는 웃는 낯으로 도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희고 작은 손바닥을 바라본 도율은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초비에게 말했다. “나 오늘은 손으로 가이딩 안 받을 건데.” “예? 그럼요? 쏴드려요? 아님 뭐 어떻게…….” “안아줘.” 왜 이럴까, 정말. 능글거리는 그의 모습에, 조금 망설이던 초비는 이내 도율의 허리춤에 제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가이딩 할게요.” “그래.” 대답과 동시에, 밝고 샛노랗게 타오르는 빛이 주변을 감싸 안았다.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위였지만, 그녀가 내뿜는 가이딩의 기운과 빛의 밝기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다. ‘진작 이렇게 할걸.’ 그 빛 속에서 눈을 감고, 초비를 힘껏 끌어안은 도율은 생각했다. ‘품위고 나발이고. 씹어 먹어버리고 싶네.’ 도율은 자신의 몸속 깊은 곳, 더 세세하고 은밀한 곳까지 휩쓰는 초비의 가이딩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린지. 이제 네 마음속에, 더 이상 내가 없어?” “야, 그거 들었어? 우리 아카데미에 황자 저하가 다닌대!” 빙의했다. 내용만 드문드문 기억나는 소설 속으로. “저, 정답은…… 3이, 입니다…….” 난 수학 선생님의 질문에, 말을 더듬는 그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드. 말더듬이. 그 아이를 칭하는 말이었다. 남들은 그 아이를 놀리며 피하기 바빴지만, 나는……. “안녕, 마틴. 난 린지 리트베르크야. 괜찮다면, 나랑 이번 수행 평가 조 같이 할래?” 이상하게 그 아이와 더 친해지고 싶었다. *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이었다. 마틴이 아카데미를 떠나고, 우리가 전서만 주고받은 지 한참이 지났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던가. 어느 순간 끊긴 전서에 서운했지만, 난 씩씩하게 인생을 살아 나갔다. 나중에 만날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노력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황실에 취직했고, 제1 황자 저하의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여태 단 한 번도 날 부르지 않던 제1 황자 저하의 호출을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가자, 익숙하고 또 잊을 수 없는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궁금했어. 네가 어떤 모습일지.” 황자 저하가 무언가를 내 손 위에 올려 두었다. 그건…… 내가 마틴에게 작별 선물로 주었던 물건이었다. “린지, 고개를 들어. 나를 봐.” 그 시절, 의문스럽던 아이. 나와 제일 가깝게 지냈지만, 알 수 없던 아이.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나는 결국 그 이름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마틴.” 황자 저하는,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한 그 아이였다.
“어제는 같이 호텔에 들어갔대.” 예브르의 모든 마드모아젤이 닿고 싶어 하는 남자. 하지만 감히 넘볼 수 없는 이본느 드보라의 남자. 바스티안 발리에르. 바스티안에게 새로운 여자, 아일린이 생겼다는 소문은 예브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월세방이 아닌 그냥 집 한 채를 선물해 주었다던데?” “불르바르에서의 하룻밤이라니, 그것도 최상위층에서……! 확실한 건, 드보라가의 그 마드모아젤보단 나아 보이는군.” “벨루르에서 제일 값비싼 드레스를 맞춰 주었다잖아. 일 년 치 예약이 다 차 있어서 쉽지 않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했냐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발리에르’의 이름 앞에서 불가능이란 없었어. 암, 그렇고말고.” 사람들을 쑥덕거리며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곧 발리에르 대공가와 드보라 백작가의 약혼은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누군가는 여유롭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 * *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도망치려면 지금 도망치세요. 나중에 무르겠다고 징징거리는 건 정말 질색이라.” 아일린은 제 앞에 내밀어진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 희고 매끄러운 표면 위로 정갈한 글씨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끊임없이 늘어진 조건들을 보던 그녀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런 아일린을 예술품 관람하듯 바라보던 바스티안은 남몰래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정말……. ‘잘 골랐단 말이야.’ 그런 바스티안의 시선을 알아챈 아일린은 언제나 같이 고고한 눈빛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4항은…….” “안 됩니다.” 바스티안은 시가의 끝을 잘라 불을 붙이며 입을 열었다. “하룻밤 스캔들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무슨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아일린을 비웃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던 바스티안은, 시가 연기를 짙게 내뿜으며 말했다.
빙의한 소설 속, 황궁에 어린이집이 새로 생겼다.근데 첫 교사가 원작에는 언급도 없는 엑스트라인 나?전생의 경험을 살려서 그저 먹고살고자 노력했을 뿐인데…….“흠흠-, 어쨌든 프레이야 선생님. 다음에 오도록 하죠. 이번에 브룬가에서 새로 나온 산딸기를 가지고 말입니다.”황실 제1기사단장인 그론트 브룬.“저도 따로 오겠습니다. 이번에 들여온 화장품이 있거든요.”황실 제2기사단장이자 무역 상단으로 황국을 사로잡고 있는 덴버 펜리르.“아, 저도 엘로디에 대해 상담할 게 있는 걸 깜빡했네요. 나중에 전서를 보내 약속을 잡도록 하죠.”마탑에서 제일 강하다는 네브 세이블.“선생, 너무하군. 아이삭은 되고 난 안 되고?”거기에 사람을 갈기갈기 찢는다는 아즈라엘 대공가 최고의 흑룡, 알렉 아즈라엘까지……!하루가 멀다하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학부모들 때문에 미치겠다!나, 이 소설 속에서 잘살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