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는 밤이었다.…집에 침입한 낯선 여자가 그를 제압해 버린 것만 빼면!“혹시… 경찰이에요?”“당신 머릿속의 경찰은 이런 이미지인 모양이죠?”경찰도 도둑도 아니라는 그녀는비밀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만으로대체 불가 톱 배우 천우강의 몸과 마음을단숨에 사로잡아 버렸다.그런데,“…도대체 어떻게 다시 만나냐고!”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고선온종일 제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그녀 때문에때아닌 상사병 비스므레한 것까지 걸려 버린 그.하지만 하늘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았으니…!“박태이 씨?”밤에 몰래 들어와 덮쳐 놓고신비감 폴폴 풍기며 사라져서 안달하게 하더니보란 듯이 절대 아니라던 경찰로 나타난 그녀.이 여자, 대체 뭐야?천하의 천우강을 겨우 다람쥐로,때론 드라큘라를 기다리는 미녀로 만들어 버리는장르 불문 케미 폭발 로맨스, <까마귀 우는 밤>
일에서는 워커홀릭, 사생활은 망나니.혜나가 보는 준원은 딱 이 정도였다.좀 더 덧붙이자면,미우나 고우나 모셔야 할 상사이자연봉의 운명을 같이하는 동지쯤…?척하면 척, 쿵하면 짝,그렇게 철저히 신뢰를 바탕으로 한바람직한 공생 관계를 이룩해 왔었는데언제부턴가 이 남자, 매사 시비에 짜증이다.“내 스트레스는 너 때문이야.”“머리는 왜 안 말리고 와? 정신 사납게.”갈수록 망나니 지분을 늘리고 있는 준원 때문에갈수록 인내심을 시험받고 있는 혜나.하지만 철두철미 완벽 그 자체였던 상사 놈이제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는 건 꽤 나쁘지 않았다.“…널 어떻게 할까, 백혜나.”어지간히 고민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면부딪쳐 보는 것이 진리. 그러니까…“키스, 해 보실래요?”예외는 없다 장담하던 그가그녀의 말 한 마디에 짐승이 되기까지「예외의 탄생」
“사귀는 건 분명 아니지.”“그러니까 말이야.”“하지만 완전히 다 오해는 아닌데.”“그러니까 말이… 뭐?”“어쨌든 난 그 정도는 널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완전히 오해인 건 아니지.”내내 이상한 동기애에 시달리던 윤서에게내내 넉살좋고 능글맞던 승준의 그 낯선 얼굴은완벽하게 새삼스러운 것이었다.말하자면, 그는 그녀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람이다.성격도 말투도 시선도 속도도, 무엇 하나 나란한 게 없었다.하지만 그가 이미 그녀에게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윤서는 모르고 있었다.“참고로 나는 아주 느려. 불씨가 붙는 속도도, 발화하는 속도도. 가끔은 불이 붙고 있는 것도 모를 만큼.”마냥 밝게만 보이던 그의 또렷한 눈에이제는 낯익기 시작한 무게감이 담겼다.“이제 알았으니, 더는 게으름 피우고 있을 수 없겠지.”잔물결이 파도가 되어 덮쳐 온 건한순간이었다.* 본 도서는 2015년 출간된 <인터셉트>를 재출간한 것입니다.
“갈수록 네가 귀여운데 어떡하냐, 강도희.”짝사랑하던 소꿉친구 재혁의 연애를 지켜보게 된 강도희. 재혁과 멀어지려던 그녀는 소문난 또라이인 학교 선배 원영과 자꾸만 얽히게 된다. 장난과 진심이 섞인 원영의 행동에 도희의 심장은 자꾸만 덜컹거리고 그에 대한 마음을 뒤늦게 깨달을 찰나, 원영은 그녀의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진다.“권력의 힘을 꼭 보여줘야겠나, 강 대리?”조부인 고 회장의 죽음으로 동화그룹의 새로운 후계자로 떠오른 원영은 9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발령받은 부서에서 도희와 재회하고, 서로에 대한 오해로 마음을 외면하는 두 사람. 그러던 어느 날 거래처에 재고실사를 나간 두 사람은 우연히 창고에 갇히게 되는데?
[단독선공개]그녀는 맹세코,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손목이 그어진 것도 모자라,다른 세계에서 남의 몸으로 깨어날 줄은…!“내 이름이 뭐죠?”“예부 상서 어른의 둘째 따님이신, 장설영 아씨이십니다.”그녀는 홍설영이다.태륜그룹 후계 다툼에서 우위에 설 정도로 지략가인 그녀에게음울하고 약해 빠진 열여덟 살 계집애가 성에 찰 리 없었다.거기다 하필이면 첩의 딸이라는 설정까지 같을 건 뭔지.하지만 아무것도 못 한 채 무력하게 죽어야 했던 홍설영과 달리이곳, 장설영의 삶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우연찮게 역모에 휘말려 버린 장설영과그 삶을 바꾸어 보려는 홍설영.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인 황자, 명왕.“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정은, 주는 것이 아닙니다.”“나는 분명히 말했다. 내 뜻과는 다르다고.”삶의 끝에서 시작된 새로운 삶.이번만큼은, 지켜 낼 것이다.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본에 숨을 불어넣는 압도적인 연기력.그 자체로 완벽해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을 만큼잔인한 재능을 가진 ‘천재 배우’, 차강은.그런 그녀가, 톱 배우 문승조의 열성 팬이라는 건 아무도 모른다.바로 옆집에 사는 문승조 본인조차도!집에선 자전거 헬멧을 쓰고 다니는 이상한 여자로,현장에선 가면을 쓰고 거리를 두는 불편한 상대역으로,그 미묘한 경계를 넘나들다 기어이 들켜 버린 강은.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궁금했어요. 카메라가 없을 때 차강은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그녀가 그를 바라봤던 것처럼그도 그녀를 바라봤다고 한다.“그런데 그 얼굴을 보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네. 빈틈이 없어.”처음 그를 인지한 그날, 그 순간처럼사정없이 날아와 파고들었다.“그래서 내가 당신을 좀 놀라게 해 볼까 하는데.”그래서 꼼짝할 수 없었다.결국 그가 제 입술을 집어삼킬 때까지.
남자 친구에게 차였어도 정연은 슬퍼할 새가 없었다.차인 이유가 됐을 정도로 회사 일이 바빴고,그 회사의 팀장 한주가 새로운 연애를 제안했기 때문에!“정말 야근 때문에 헤어졌습니까? 그럼 책임지죠.”“뭘 어떻게 책임을 지신다는…….”“나랑 합시다. 새로운 연애.”지방 발령을 내겠다는 둥결혼하지 못하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둥협박 아닌 협박에 내키지 않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그녀.서로 필요한 것을 채워 주는그저 평범한 계약 연애가 될 줄 알았는데.그가 자신을 진짜로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사람 얼굴을 왜 그렇게 보신 건데요?”“도대체 어디가 예쁜가 싶어서.”말은 그렇게 하면서 왜 멜로 눈빛을 쏘시냐고요!속내를 알 수 없는 숙맥직진남과의 계약 연애, 그 결말은?
귀신을 볼 수 있지만 쫓아낼 힘은 없는 기은호.이사한 집에서 귀신을 보고는 뛰쳐나오다1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난다.“그 집에서, 부, 불에 탄 여자가, 보였다고요.”귀신을 볼 수 있을뿐더러 쫓아낼 힘도 가지고 있는 백도형.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만과거 그녀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나 그런 일에 관심 없어.”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러니까 저더러 여기서 자고, 가라고요?”“나랑 자자는 얘긴 아니야.”“그건 당연하죠!”“왜 나랑 자지 않는 게 당연하지?”서로여서는 안 되지만,결국 서로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로맨스.
*이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콘텐츠입니다. 그녀는,그의 사춘기를 강렬하게 지배했었다.창문으로 흘러들어 온 바람,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손,가만히 맞춰 오던 눈동자.놀랍도록 짧은 시간이었다.이수현이 그의 심장을 휘어잡는 데 걸린 시간은.그녀의 집 앞에 찾아가는 게 전부였던열아홉의 새카만 밤을 건너마침내 그녀의 입술을 삼키었을 때,정욱은 깨달았다.이 순간을 위해 숨을 쉬었음을.그러니까 빨리“날 좀 더 원해, 이수현. 내가 널 안을 수 있게.”길티guilty;죄가 있는, 죄를 지은 것 같은,그럼에도 서로여야 하는, 두 사람에 대하여.
12년.인생의 반을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누구보다 가깝지만, 그 누구보다 멀기도 한.하진과 정에게 서로는 그런 의미였다.쉽게 사라지지 않을, 망쳐지지 않을,그래서 겹쳐지진 않더라도 어긋나지도 않을 오랜 친구.따듯한 바람이 불던 어린 봄날,해가 저물어 가는 오후의 음악실에서서로를 알아보고 들었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마음이었다.그러니 겨우 불안한 감정 따위에 질 순 없었다.때로 격한 욕심이 치밀어 오른다 해도,때로 갖고 싶어 미칠 것 같다 해도.하지만 12년.무심하게 흐른 시간만큼 켜켜이 쌓인 조급함이기어이 덮쳐 오고 말았다.“10년이 넘었는데도 변하질 않아, 내가. 더는 못 하겠다.”
강준에게 서연은 태양이었다.하늘 한가운데 높이 떠 있는 게 어울리는,너무나 아름답고 눈부셔 감히 욕심낼 수 없는 사람.그런데 어째서일까.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혔던 언젠가부터강준은 그녀에게 닿고 싶었다.그 작은 몸을 끌어안고 제 몸으로 품고 싶었다.“네가 하고 싶은 걸 해. 그게 네가 행복해지는 방법이야.”아무것도 모르면서,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기도 점점 버거워지는 것도 모르면서.그러니 오늘만. 딱 오늘 하루만.“당신이,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그럴 수만 있다면….”지금 당장 먼지처럼 사라져 허공에 흩어진다 해도,그는 행복할 것만 같았다.
비 오는 밤에 머리 풀고 나타났을 땐 귀신인 줄 알았고,기척 없이 숨어 다니는 걸 보면 현상 수배범인가 싶었다.아, 또 잠깐은 낮도깨비 같기도 했고.“매정하긴. 우리 사이에.”“우리 사이라니.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고용인과 피고용인?”“단기 계약이니 끝난 거 아닌가?”“이웃.”“이웃은 무슨. 며칠이나 살다 갈 거라고.”“그럼 그냥…… 쉽게 믿어지는 사이라고 해.”언제부턴가 소리 소문 없이 옆집에 스며든 여자는솜털처럼 가벼웠던 내 마음을 비집고자신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새겨 넣기 시작했다.그렇게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는지도 모르게.“나 어린애 아니야. 발정 난 개새끼지.”“진짜 개새끼가 되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나는 이미 파도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어쩌면 그녀가 처음 내 눈앞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이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콘텐츠입니다. 천한 짐승의 왕.신조차 외면한 전쟁의 악마.피의 가면을 쓴 잔혹하고 무도한 자.모든 이들이 그를 두려워했지만죽여 달라고 찾아온 저 계집만은 예외였다.“이제 나리께서 제 주인이십니다.뜻대로 하십시오. 데려가시든지, 여기서 죽이시든지.”체념이 깃든 얼굴로 담담히 바라보는 계집의창백한 뺨이, 새파란 눈빛이, 서늘한 외면이그의 피를 들끓게 했다.그토록 부정했던 짐승이 된 것처럼.개처럼 주인의 발밑에서 잠을 자고 깨는 하녀가 되겠다면그리 취급해 주면 그만인 것을.“물어라. 다시 개가 될 시간이다.”가면이 벗겨진 곳엔, 그보다 비린 본능만이 남았다.
푸릇했던 그 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삶이었다.덤으로 태어나 완전한 어둠조차 되지 못했던 나는빛이 물속 깊이 가라앉은 후에도그저 형체 없는 그림자일 뿐이었다.그런데 어째서 너만은,너만은 나를 보는 것인지.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이설득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그게 너라는 것이어째서 이다지도 안도가 될 수 있는지.서정한,너라는 바람이 분다. 너라는 바람을 타고 나는 어디든 갈 것이다.언젠가는 그 바람이 멈춘다 하더라도나는 기꺼이 네게 몸을 맡길 것이다.내게는 신기루처럼 희미한그 ‘행복’이라는 낯선 단어를 꿈꾸는 너를 위해서.
기억하고 싶은 모든 처음은 모두 너와 함께였다. 아무것도 몰랐던 열여덟의 여름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된 서른하나의 여름까지, 네가 없는 계절도 네가 켜켜이 배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랑 아는 사이 돼서 너한테 좋을 거 없어.” 무뚝뚝한 얼굴로 너는 그렇게 밀어냈지만 너랑 아는 사이였기에 그 무수한 날들을 견뎠다는 걸 너는 여전히 모르나 보다. 그러니 똑같은 헛수고를 다시 반복하는 거겠지. “남자 필요하냐고 물었어? 필요하다면, 내 남자 해 줄 거야?” 너는 서른하나의 나를 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볼 거라면. “너, 사람 미치게 하는 데 도가 텄지.” 네가 있는 지금, <그저 여명일 뿐>
그러니까 옆집 사람, 이었다.약속하지 않아도 마주칠 수 있는,안부는 물어도 인사는 하지 않는 그런.어느새 제 키를 훌쩍 넘어 올려다보게 되었어도,때론 알 수 없는 시선으로 가만히 바라볼지라도,기승효는 그러니까 옆집 사람, 이어야 했는데….“두근거려?”낯선 얼굴로 성큼 다가온 그가 물었다.“이러면?”점점 가까이어디로도 피하지 못하게결국, 숨을 쉬는 것도 잊도록.“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땡잡았다고 생각하게 될걸.”이 요물 같은 게 사람을 어떻게 홀리고 있는 거야!어느 날 갑자기, 그러나 필연적으로<사르르, 일상>* 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개정판입니다.
아아, 운명의 장난이란 이런 것이던가.반 이상은 타의로 회사를 나왔을 때도,고향 집으로 때아닌 피난을 왔을 때도,이현은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열일곱, 차마 이름도 붙일 수 없는서툰 감정과 함께 고여 있던 윤태오,그 애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그것도 웃통을 벗은 채로!“혹시, 옷 벗고 있는 거 좋아해?”친했지만 친구는 아니었고,멀었지만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이.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거리를 두는 윤태오도 여전했지만…“한이현…. 가지 마.”아무렇지 않게 들쑤시는 것도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사흘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와라. 나랑 자자.”그래도… 이건 전혀 예상 못 한 전개인데?잠자는 집 속의 윤태오를 위해서라면유리창을 깨고, 문을 부수어서라도그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된 이현의설렘뭉클발칙 로맨스, <미로 속을 걷다>
“난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결혼합시다.” 뭐라는 거야, 이 망나니 한량이? 차분하던 이영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태송그룹의 차남이자 무늬만 이사인 구교헌은 소문대로 또라이였다. 합작 사업을 위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청혼을 하다니!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영은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만사엔 관심 없어 보이던 남자가 사실은 철저한 계략가라면? 거기다… 이번이 처음 만난 게 아니라면? “부부 생활의 즐거움이 거래 조건이라면, 시중은 내가 들죠. 당신이 기뻐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대체 뭐라는 거야, 이 망할 남자가!
떴다 하면 장안의 기생들이 줄을 서고했다 하면 천하의 보화들을 휘두른다는풍월 상단의 단주, 박호태.그런 그를 어지럽게 하는 유일한 이가 있었으니,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눈앞에서 어른어른지나치게 어여뻐서 사람 환장하게 하는 여은섬이었다.본래가 아름다운 것을 숭배하는 기질을 타고나한 발 떨어져 감상하면 그만이라 여겼거늘,이상하게 은섬을 보면 갖고 싶었다.몽땅 핥고 빨고 깨물어 수치로 적시고 싶었다.“그 정도로는 부족해.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좋겠거든.”이것은 숭배가 아니다.탐하는 것이었다.“자네는 내가 어떤 사내인지를 몰라.”그럼, 어디 걷어차일 각오를 하고 덤벼 볼까?* 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개정판입니다.
“서은기. 그림 좋아해?” 은기는 혼란스러웠다. 둘러댄 이름으로도 바래지 않는 존재감과 볼품없는 차림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여유. 남자는 분명 저와는 이만큼의 접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림을, 그녀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그것을 그는 가장 스스럼없이 파헤쳐 버렸다. “…그런 거 관심 없는데요.” “이상하네. 그림 좋아하게 생겼는데.” 그때만 해도 은기는 몰랐다.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얼마나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지, 그리고… “그림 그려 달라고 안 할 테니까 오늘 여기서 자고 가.” 이렇게 슬쩍 건드리던 남자에게 “무서워? 그렇게 버린 것치고 나한테 너무 빨리 넘어올까 봐.” 이렇게 대놓고 홀리게 된다는 것도. 임파스토_그림을 그리며 너를 그리다.
아름답지만 비천한 하녀 루시엔. 그녀에게 삶이란 그저 견뎌야 하는 것, 죽음이란 익숙하고 무뎌진 일상 같은 것이었다. 그날, 우연히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처음엔 무심하고 오만한 사제, 그다음엔 몸이 약해 요양 중이라는 남작가의 자제.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신분이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칼로 사람을 벨 줄 아는 그는 절대 사제도, 유약한 귀족도 아니라는 것을. “그럼 내 방을 써요. 하루든 이틀이든 자고 가면 되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너 아무한테나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내가 기꺼이 방을 내주고 싶은 사람은 라르스 님뿐인데요.” 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차갑고 우아한 그 초록색 눈동자를 담은 순간부터 루시엔은 늘 가까이에 있던 죽음이 낯설어졌다. 살고 싶었다. 아니, 그가 살았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그게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이라 해도. “네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 루시엔. 그저 손안에 굴러들어온 행운이나 거머쥐라고.” 하지만 바로 그 점이 그를 화나게 한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나쁜 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다음엔 또 언제 볼 수 있는 건데. 말이나 해 주고 가든가! “걱정 마세요, 라르스 님. 말씀대로 손안에 굴러들어온 행운은 꼭 거머쥘 테니까.” 삶의 의지란 때론 사랑과 같이 격렬하게 피어오르나니, 「살아남은 너를 찬미하며」
* 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개정판입니다.그럼에도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두 번 다신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스스로 그물에 걸어 들어가는 꼴은 분명 싫은데도라진은 지금 휩쓸리기 직전이었다.모른 척 외면도 해 보고, 아는 척 경고도 해 보았지만“그건 어렵겠는데요. 전 누나랑 친해지고 싶거든요.”“…누나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아, 그럼 이름을 알려줄래요?”기다렸다는 듯이 울렁, 파고드는 직구도 모자라예상하지 못한 틈을 설렁, 건드리는 변화구까지.“어떤 면에서는 내가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도대체 어떤 면이?”“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이… 여우 같은 놈!그렇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어설픈 문턱에 걸린 듯 감출 수 없이,기어이 스며들어 고이기 시작한 정주에게.“지금, 뭐 하는 건데?”“…뭘 할 것 같은데요?”완만했던 일상이 문득 찌르르, 울렸다.
섬을 지배하는 건 파도만이 아니었다. 연산. 잔인하고 포악한 성정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위험할 정도로 야릇한 외모도 한몫했고. 비밀과 소문, 호기심과 두려움 위에서 완벽히 군림하고 있던 그의 세계가 툭, 깨어진 건 못지않은 비밀과 소문을 품은 어느 외지인 때문이었다. “페이스트리 같다, 너.” 나나. 사납게 일어선 파도를 잠재워주는 듯한 이름이었다. 나긋이 속살거리다 콱 찌를 것 같기도 했고. 단조롭던 생활에 깃든 그 선명한 열기를 연산은 거부할 수 없었다. 방심해 버렸다. “너 꼭 나 좋아하는 것 같아.” “혹시 그 입술만 보면 물어뜯고 싶은 게, 그래서 그러는 건가?” 손으로만 겨우 물던 입술을 “고나나. 나 환장하게 만들어서 어쩌려고 그래.” 기어이 물어뜯게 되었을 때, 연산은 인정해야 했다. 언제나 지배하는 것에 익숙했던 그는 이미 철저히 지배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뭐 저런 게 다 있어? 골칫거리 기획2팀의 팀장을 떠맡게 되었을 때 우경의 머릿속을 가장 강렬하게 스친 건 엑셀은 밟는 거 아니냐는 꼴통이자 복합기 AS는 인사팀에 맡기는 낙하산. 거기다… “연애하실 건가 봐요?” 근데, 너무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팀장의 사생활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또라이, 구정하였다. ‘참을 인’을 새기고 새기며 어떻게든 끌고 가려 했지만 ‘놀랄 노’만 깜찍하고 끔찍하게 돌아오는 상황. 역시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싶던 순간 고고하신 낙하산 님께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우경을 바라보는 눈빛이. “내 거다 생각하고 부디 마음껏 가지고 놀아요.” 아니 뭐, 뭐 이런 게 다 있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구름이 짙어지면 비가 내리고 어제가 있으면 오늘이 있듯이. 그러니 오늘의 구재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해진 것은 모두 그녀의 탓이다. 동생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하룻밤을 보내 놓고 없었던 일로 하자며 도망갔던 어제의 송백화 때문. “송백화가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내가 상관이 있으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오늘의 구재는 맑음. “송백화 씨가,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아니, 흐리고 비. “나 좀 봐, 송백화.” …안개를 동반한 천둥번개? 태풍이 휘몰아치듯 변화무쌍한 구재의 심기 안에 실은 순수하고도 강렬한 심지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오늘의 백화는 깨달을 수 있을까? ‘구재’불능인 줄 알았더니 ‘백화’난만하듯 활짝 피어난 순정에 대하여. 그래서, 오늘의 구재는? * 본 도서는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개정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