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소
서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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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총구가 향하는 곳

꿈도, 손도, 명성도 모두 잃었다. 사격장 폭발 사건으로 인해 ‘최연소 사격 국가대표’ 민수지는 불씨와 함께 사그라졌다. 화상으로 인해 흉하게 달라붙은 손가락은 더 이상 총을 쥘 수 없었다.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만 생계를 유지하던 어느 날. 뺑소니차에 치인 뒤 잘되었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차라리 이 끔찍한 생을 끝내고 싶었으니까. * * * 그런데, 뭐지? 눈을 떴을 땐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손에 탄환조차 없는 총이 쥐어졌다. …내 손에, 총이? 신기하게도 두 손도, 얼굴도 화상을 입기 전처럼 멀쩡했다. “네가 성녀라는 걸 증명해 보거라.” 신관을 공격하는 마물을 향해 총을 겨누고, 그대로 탄환을 쏘아 보낸 것은 본능이었다. 탄환이 없던 총에 모여든 하얀빛은 그대로 마물의 미간을 꿰뚫었다. 재가 흩날리듯 마물이 소멸하자 주변에 있던 모두가 무릎을 꿇고 찬양했다. 새로운 성녀가, 드디어 우리를 구원하러 왔다고. 그리고 그 사이로 아름답게 눈매를 휜 남자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좋은 물건을 찾았다면서?” 분명 그녀를 직시했으면서도 ‘물건’이라 일렀다. 다정하게 웃고 있지만, 차가운 눈빛을 하고서.

이런 환생은 저도 사양입니다

100년 전, 조국을 망하게 만든 황제놈이 날 멋대로 환생시켰다.그것도, 황제 옆에서 날 위협하던 가문의 딸이라고!?이게 다 그 어린 황제 블룸버그가 날 집착하다 못해 ‘끝의 맹세’를 걸었기 때문이란다.단지 나를 사랑해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다.“마법서에서는 서로 같은 생에 환생하지 못한다면 환생을 반복할 거라더군요. 서로가 만날 때까지.” 환장하겠네. 이런 더러운 경우가 있나!그래, 이번 생에는 우리 꼭 다시 만나자.그때는 네 멱살을 잡고 이유를 물어봐야 하니까.왜 날 맘대로 환생시켰는지!*“난 아직도 당신이 날 안아주던 손길을 잊을 수 없어.”아. 잠시만.“당신이 날 새롭게 태어나게 했어.”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정말 미안하지만, 난 그냥 아무렇게나 한 말인 것 같은데……! 아예 기억도 없다고!그 미친 황제놈을… 내가 만들었다고요…?